환율 폭등에 환손실 ‘직격탄’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상당수 항공사가 막대한 영업이익을 내고도 완전자본잠식 위기에 처한 이유는 재무제표에 영업외비용으로 분류되는 외화환산손실 탓이다. 항공사들은 달러로 돈을 빌려 항공기 구매·리스 대금을 지급한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분기별 부채의 원화평가액도 늘어 회계상 손실로 분류된다. 외화차입금의 이자 비용, 리스료 등도 달러로 지급해야 하다 보니 환율 상승의 후폭풍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구조다.올 상반기 말 기준으로 아시아나항공은 4조8863억원의 외화부채를 안고 있다. 티웨이항공(3442억원) 에어부산(4852억원) 진에어(3128억원) 등 저비용항공사(LCC)도 수천억원에 달하는 외화부채를 떠안고 있긴 마찬가지다.
막대한 달러 빚을 낸 항공사들은 환율 급등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올 하반기 들어 석 달간 원·달러 환율은 10% 상승했다. 이 여파로 아시아나항공은 3585억원의 환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티웨이항공은 334억원, 제주항공은 278억원의 환손실을 입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진에어와 에어부산도 3분기에 각각 238억원, 794억원의 환손실을 볼 전망이다.
잇달아 유상증자 추진 ‘비상’
문제는 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내년 초까지 환율이 달러당 1500원 선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아시아나항공의 영업이익을 뒷받침해온 항공 화물사업 호황이 예년만큼 지속될지도 미지수다. 코로나19 여파로 뱃길과 육로가 막혀 나타난 이례적 호황이었던 만큼 장기간 지속되긴 어렵다는 시각이다.화물사업 호황조차 누리지 못한 LCC들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상반기까지 모든 LCC가 영업적자를 본 상황에서 환손실까지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하반기에 여객 수요가 회복되지 않으면 완전자본잠식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항공사들은 부랴부랴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나섰다. 제주항공은 오는 11월 32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계획 중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세 번째다. 진에어도 유상증자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상장사인 아시아나항공 티웨이항공 에어부산 진에어는 연말 기준 완전자본잠식이거나 50% 이상 부분자본잠식이 2년 이상 지속되면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연말 기준 50% 이상 부분자본잠식이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연말까지 완전자본잠식만 피한다면 상장폐지 대상은 아니다”며 “다만 50% 이상 부분자본잠식이라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리스계약 불똥 튀나
항공업계와 금융권에선 완전자본잠식이 불러올 항공기 리스발(發) 여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항공사의 완전자본잠식은 중대한 재무적 요인으로 분류돼 항공기 리스계약상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될 수 있어서다. 계약마다 차이가 있지만 리스사가 EOD를 발동하면 항공사는 미상환 원리금을 빨리 갚아야 하거나 항공기를 조기 인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아시아나항공은 에어버스 등과 37대, 11조원 규모의 항공기 리스계약을 체결 중이다. 2020년 아시아나항공이 완전자본잠식을 눈앞에 뒀을 당시 EY회계법인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HL7744, HL7625 등 11대의 리스 항공기 계약에 EOD 조항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아시아나항공이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고 환율로 인한 완전자본잠식이 회계평가 과정에서 발생한 만큼 리스사들이 EOD 행사에까진 나서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각에선 리스사들이 계약조항을 내세워 자신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LCC는 원리금 미상환을 우려하는 채권자들의 압박이 더 거세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아직 3분기 실적이 집계되지 않았지만,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환손실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리스계약 내용은 비밀유지조항으로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차준호/이상은/김익환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