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용기 수출회사 네스필러PKG는 2011년 새로운 기능이 적용된 아이디어 제품을 개발했다. 하지만 수출입 과정에서 추가되는 물류비용과 2.5~3%의 관세 부담 탓에 해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듬해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구원투수가 됐다. 수출품의 관세가 0%가 되자 가격 때문에 구매를 망설였던 바이어들의 주문 계약이 몰려들었다. 이 업체는 한·유럽연합(EU) FTA를 활용해 유럽 시장에도 진출하는 등 해외 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높인 결과 2010년 97억원이던 매출을 지난해 233억원으로 끌어올렸다.
3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우리나라 전체 교역에서 FTA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77.3%였다. FTA 교역 비중은 칠레와 첫 FTA를 맺은 2004년 0.6%에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북미, 유럽, 중국 등 주요국과 FTA 협정을 체결한 만큼 이들 국가로 진출하려는 기업의 FTA 활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특히 자금력과 인력이 부족해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중견기업들은 FTA 협정과 관련 제도를 활용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 확산 등 어려운 대외 환경 가운데서도 중소기업들이 FTA를 활용해 돌파구를 찾은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배선 뭉치인 ‘와이어링하네스’가 좋은 사례다. 대부분 국내 자동차 부품 업체는 와이어링하네스를 중국 생산기지에서 수입해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중국산 와이어링하네스 공급이 끊기면서 완성차 업체가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자동차 부품 중소업체 A사는 베트남에서 와이어링하네스를 생산한 덕분에 코로나로 인한 물류 봉쇄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1차 가공품을 베트남에 수출해 현지에서 완제품으로 조립한 다음 국내로 다시 수입하는 게 원가 절감 효과가 가장 크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8%에 달하는 관세가 걸림돌이 됐다. A사는 한·베트남 FTA 규정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와이어링하네스에 관세 0%를 적용받는 방안을 마련했다. 한국과 베트남 기업 간 제조공정에서 이뤄진 교역은 한 나라의 교역이라고 보고 원산지를 ‘역내산’으로 인정해주는 특례 규정을 활용하면 됐다.
FTA는 협정마다 세부 내용이 다르고, 다루는 내용도 방대하기 때문에 자신의 사업에 유리한 조항을 찾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FTA에 관해 잘 모르거나 잘못 활용해 피해를 본 사례도 여럿 있다. 한 국내 식품회사는 2014년 GMO(유전자변형작물) 대두(콩)가 포함된 라면을 터키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수출했다가 13t 전량을 폐기 처분했다. GMO 농산물 및 GMO 재료를 사용한 식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터키의 시장 진입 조건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FTA 활용도에 따라 글로벌 경쟁에서 성패가 갈릴 수 있는 만큼 이를 위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중소·중견기업의 FTA 수출 활용률은 60.5%로 조사됐다. 대기업(82.8%)에 비해 22.3%포인트나 활용률이 낮았다. 송 의원은 “기업들이 FTA 환경 변화에 신속,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외 상황을 상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