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Meta)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2015년 8월 자신이 보유한 페이스북 주식을 매각해 마련한 320억달러(약 37조5360억원)의 99%를 ‘찬-저커버그 이니셔티브’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주식 대량 매각으로 기업 지배권을 상실할 우려가 있어 페이스북 자본 구조를 재정비하기로 했다. 주식을 클래스 A, B, C 세 종류로 나눠 자신은 클래스 A 주식을 소유하기로 하고, 전체 주식의 15%만 가져도 54%에 달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이 안건은 이사회 승인을 받았고, 소액주주 4분의 3 이상이 반대했지만 주주총회를 통과했다.
식품상업노동조합 등 소액주주연합은 이사들이 회사의 이익보다 저커버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안건을 승인함으로써 이사의 신인의무(fiduciary duties)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면서, 이사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특히 일부 이사가 저커버그에게 종속돼 독립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이사회 결의가 무효라고 다투었다.
미국 델라웨어주 대법원은 지난해 9월 23일 원고 주장을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을 찾아봤다. 이사 중 넷플릭스 창업자 헤이스팅스를 보자. 넷플릭스는 페이스북과 광고 계약을 맺고 있고, 양사는 현재 및 잠재적인 미래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헤이스팅스는 저커버그와 함께 동일한 재단에 거금을 기부하기도 했고, 페이스북 사용자 데이터 접근권까지 부여받았다. 법원은 이런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 이것만으로 사외이사 헤이스팅스가 독립성이 없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저커버그의 절친이자 멘토인 틸은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 중 한 명이며, 저커버그 다음으로 오랜 기간 페이스북 사외이사로 재임하면서 페이스북의 비즈니스 전략과 방향 설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틸이 파트너로 있는 벤처캐피털 회사인 파운더스펀드는 페이스북과 거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법원은 이런 주장만으로는 틸이 저커버그에게 종속돼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음은 모건스탠리 이사 보울스다. 모건스탠리는 페이스북 주식 재분류와 관련 용역을 수행해 200만달러 이상을 받는 직접적인 혜택을 얻었다. 페이스북은 보울스에게 회사의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이사 의무정년 면제’ 조항을 적용해 그가 70세 이후에도 사외이사가 될 수 있는 특혜를 줬다. 법원은 그러나 보울스가 개인적 이득을 얻지는 않았다면서 보울스가 저커버그에게 종속돼 있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한국 기준으로는 위 페이스북 사외이사들은 모조리 결격이다. 우선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따라 사외이사는 ‘동일인 관련자’에 포함돼 선임과 동시에 그가 지배하는 회사가 해당 기업집단에 자동 편입된다. 그가 경영하는 회사는 각종 신고 의무가 생기고, 중소기업이면 그 혜택도 사라진다. 친족과 가계도, 주식 보유 현황, 자금거래 내역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하고 관리·감독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 틸 같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 기업의 사외이사가 될 수 있겠는가. 공정위는 시행령을 개정해 이 부분을 손본다고 한다. 두고 보자.
이게 끝이 아니다. 상법 시행령에는 사외이사 결격사유가 수십 가지나 나열돼 있다. 세계에 유례가 없다. 상장회사 회계감사·세무대리·법률자문·경영자문 등 자문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과 해당 회사와의 거래 잔액이 1억원 이상인 자, 해당 회사에서 6년을 초과해 사외이사로 재직한 자 등은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 페이스북 사외이사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재직했다. 법무부와 공정위는 그간 경제민주화를 빌미로 세상에 없는 해괴한 규제로 가득 채운 상법, 공정거래법 및 그 시행령을 조속히 개정해 오랜 폐단을 청산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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