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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사된 에스토니아 유명 작곡가…그의 특별한 30년 인연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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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1993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만난 한국과 에스토니아의 두 청년은 음악에 흠뻑 빠져있었다. 밴드를 만들어 힙합과 재즈, 클래식을 결합하는 형식적 파괴를 시도했던 에스토니아 출신 지휘자는 당시 파슨스디자인스쿨에 다니던 한국인 아트 디렉터와 함께 비디오 아트와 결합한 클래식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둘은 '포스터 마피아'로 불리던 공연 홍보 대행사를 쓸 돈이 없어 자정이 넘으면 소호 거리 곳곳에 포스터를 직접 붙이고 다녔다. 다음날 포스터가 떼어지면 자정 넘어 다시 붙이는 작업이 여러 날 반복됐다.

29년이 지난 후 이 둘은 나란히 서로의 나라에서 민간 외교관이 됐다. 주인공은 주에스토니아 한국 명예영사 크리스티안 예르비와 주한 에스토니아 명예총영사 장석재다. 예르비는 "지난 세월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함께 혁신을 꿈꾸고 도전해 온 결과"라며 "앞으로 30년은 양국의 기업 교류를 돕고 개인적으로도 디지털 실험을 현실화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공유사무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오랜 친구이자 연인처럼 얘기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당초 1시간을 예정했던 인터뷰는 2시간 30분을 훌쩍 넘겼다. 10여 년 전 전 핀란드 헬싱키에서 '면세' 맥주를 사기 위해 페리를 타고 에스토니아 탈린을 여행한 적이 있는 기자 본인의 추억까지 소환되면서 30년째 이어진 두 사람의 우정에 얽힌 대화가 이어졌다.

민간 외교관이 된 기업가와 지휘자
두 사람의 본업은 지휘자와 연쇄 창업가다.

1972년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태어난 예르비는 1980년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뉴욕 맨해튼 음대와 미시간 주립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LA 필하모닉 부 지휘자를 거쳤다.

'클래식을 새롭게 해석하는 지휘자'는 그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는 클래식 음악가이지만 오케스트라의 '유니폼'(획일성) 대신 각자의 개성을 강조한다. 그는 "사용자 경험을 높이는 사용자 친화적인 클래식 음악을 만들고 싶다"며 "개개인이 우주처럼 조화롭게 존재하는 것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모든 삶이 음악"이라며 "우리는 자주 순간에 살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사는데 곡을 연주하다 보면 그 순간에 살게 된다"고 강조했다.


1994년 뉴욕에서 만든 클래식 힙합 재즈그룹 '앱솔루트 앙상블'은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밖에 '발틱 시 필하모닉', 음반 제작사 선빔의 내부 밴드인 '노딕 펄스'도 창설했다. 지금까지 60개가 넘는 앨범을 출시했으며, 2020년에 나온 싱글 앨범 '노딕 이스케이프'는 애플뮤직과 스포티파이에서 월간 스트리밍 100만회 이상 기록했다.

그는 에스토니아의 음악 명망가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 네메 예르비는 평범한 오케스트라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진정한 마에스트로의 면모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클래식 지휘자로 꼽히는 파보 예르비가 그의 형이다. 누나 마리카 예르비 역시 플룻 연주자로 활동 중이다. 그의 가족은 2011년 고국에서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에스토니아 고유의 정서적 문화적 특징을 담아낸 음악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장석재 대표는 디자인을 전공한 연쇄 창업가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공업디자인을 전공했다. 1998년 뉴욕 현지에서 멀티미디어 기획사 '피디아'를 창업한 것을 시작으로 2006년 일본에서 실시간 가상 주식 거래 플랫폼 운영사 주빌리랩, 2014년 멀티플렉스 극장용 소프트웨어 관리업체 포스밸류를 연쇄 창업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일본 게임 캐릭터 회사 코코네의 한국 대표를 맡은 이후, 현재는 에스토니아에 거점을 둔 코코네 유럽 대표를 맡고 있다. 코코네는 캐릭터를 꾸미고 즐기는 'CCP 서비스'로 일본에 안착한 벤처기업으로 한게임 재팬·NHN재팬 대표를 지낸 천양현 회장이 2009년 창립한 회사다.

20대를 뉴욕에서 함께 보낸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한국과 에스토니아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예르비는 2014년 이후 미국에서 에스토니아로 근거지를 옮겼고 장 대표를 에스토니아로 초청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관심사는 한국과 에스토니아의 문화, 기업환경으로 옮겨갔다.

예르비는 "결혼할 때 문화적으로 비슷한 사람과 하지 않느냐"며 "한국과 에스토니아는 문화적 역사적 공통점이 많아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한다"고 강조했다. 30년째 이어진 두 사람의 우정도 문화적 유대감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장 대표는 2017년부터 에스토니아 진출을 희망하는 국내 기업을 지원하는 컨설팅그룹 'K 챌린지'에서 고문 역할을 맡아 에스토니아와의 외교적 교류를 돕고, 에스토니아에 한국 기업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한 덕분에 2020년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관이 문을 연 이후, 지난해 3월 명예 총영사로 임명됐다. 이후 지난 8월 주핀란드 천준호 한국대사는 예르비를 주에스토니아의 한국 명예영사에 선임했다.

태극기를 이해하는 에스토니아인
에스토니아 올림픽위원회 위원이기도 했던 예르비는 2018년 평창 올림픽 때는 '올림피즘 오브 파이브 링스' 공연을 감독 지휘한 것이다. 장고 연주가 김덕수 원광디지털대 석좌교수를 중심으로 세계 10여개국의 예술인들이 '평화의 울림'이라는 주제로 만든 무대였다.

예르비는 "한국의 전통 음악과 에스토니아 음악은 매우 비슷하다"며 "우주를 향한 '의식'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실제 에스토니아 민속 악기인 칸넬(kannel)은 우리의 거문고와 비슷한 소리를 낸다.

그는 에스토니아 사람들에게 한국을 소개할 때면 언제나 태극기에 비유한다. "태극 무늬는 한국인의 정신, 흰색 바탕은 우주를 상징한다. 태극 무늬를 보면 처음과 끝이 연결돼 있는데, 처음과 끝이 같다는 것은 우주적 조화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에스토니아 국기 역시 민족의 정신과 유산을 의미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파란색은 하늘, 검은색은 땅, 그 사이 흰색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 갈 때 자욱하게 지면을 덮은 안개"라며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국기 안에 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자연을 믿는다"며 "우리 자체가 자연의 연장선"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가장 강력한 수출품으로 '문화'를 꼽았다. 그러면서 "K팝, K뷰티, K푸드는 혁신적이면서 지역적"이라며 "요즘의 국제화는 지역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문화는 음식, 역사, 매일 사람들이 일상에서 즐기는 모든 것의 '풀 패키지'"라며 "경제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강하지만, 한국이 강한 이유는 문화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겸손하지만 삶을 즐기는 문화
에스토니아는 발트해 연안에 자리 잡은 작은 국가다. 인구수는 130만여명, 면적은 4만5228㎢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에스토니아는 국가 모습을 갖춘 직후인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신성로마제국(독일), 스웨덴, 러시아제국 등 주변 강대국의 지배를 받았다. 1940년 옛 소련의 16번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편입됐다가 1991년 독립했다. 인구의 30%가량을 러시아인이 차지하지만, 강력한 반러 정책을 펼치고 있다.

예르비는 "독립 이후 에스토니아의 상황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와 비슷할 것"이라며 "러시아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모든 행보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50년 전 석탄 산업밖에 없던 에스토니아가 이렇게 현대화될 줄 아무도 몰랐다"며 "30대 급진적인 젊은 지도자들이 '디지털 국가'를 목표로 혁신을 주도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에스토니아는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와 함께 ‘발트 3국’에 포함되지만 실제로는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와 더 가깝다. 반면 보호주의 무역 정책을 펼친 리투아니아나 폴란드계로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라트비아와는 오히려 차별성이 크고 언어와 문화도 다르다. 에스토니아어와 핀란드어는 80%가량 비슷해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소비에트 연방 체제에서도 핀란드 TV 방송이 허용됐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러시아의 영향이 크지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럽 진출의 교두보, 에스토니아
2014년 에스토니아를 처음 방문한 장 대표는 "에스토니아는 한국 기업이 유럽연합(EU) 시장으로 진출하는 가장 완벽한 교두보"라고 강조했다.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디지털화돼 있어 외국인이 살거나 사업을 하기에 불편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인건비는 스웨덴 대비 약 3분의 1 수준이며, 법인세가 없다. 잉여이익은 현지에 재투자해야 하는 제약도 없다. 여기에 전자주민증 도입 등 EU의 경제정책 시험 무대이기도 하다. 130만명이라는 작은 나라가 인구 대비 기준 유럽 최대의 유니콘(기업가치 1억달러 이상 비상장 회사) 기업 수를 자랑하는 이유다.

장 대표는 "한국은 미국 시장에 너무 의존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북유럽과 독일까지 10개국의 인구는 1억명에 이른다"며 "2000년대처럼 지금 미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너무 비용이 많이 들지만, EU 시장은 여전히 밸류에이션 매력이 크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 관점에서 한국과 에스토니아는 비슷한 점이 많다. 장 대표는 "사업 첫날부터 글로벌화, 수출을 생각해야 한다"며 "에스토니아도 이웃 국가 중에서 가장 작은 국가여서 지정학적, 외교적 관계가 한국과 유사해 비슷한 사업적 접근법을 가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토니아의 한국 기업 진출은 가시화되고 있다. 장 대표는 "한 농업 테크 분야 중견기업이 에스토니아 공장을 설립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특히 코코네가 유럽 사무소를 탈린에 설립한 것처럼 콘텐츠 분야 스타트업의 유럽 진출 전진 기지로 최적의 장소라고 강조했다.


에스토니아는 1991년 독립 이후 '디지털 국가'를 내걸었다. 유럽내 인구당 스타트업 창업수, 유니콘기업 수, 스타트업 투자 1위 국가다. 2010년 이후 35억유로 규모의 벤처투자금이 유입됐다. 2005년 스카이프를 시작으로 올해 인증솔루션 기업 베리프, 디지털 커스터머 솔루션 기업 글리아 등 10개의 유니콘이 탄생했으며, 지난 8월 기준 에스토니아내 스타트업은 1400여개에 이른다. 타르투대학과 탈텍이 IT 인재 양성을 이끌고 있으며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10년간 코딩이 의무 교육이다. 예르비는 "스카이프를 시작으로 유니콘 기업이 쏟아지다 보니 코더들이 필요했다며 음악가 운동선수여도 코딩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르비는 양국의 문화적 유대감이 협력을 이끌어낼 원동력으로 봤다. 그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과는 달리 에스토니아와 한국은 겸손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며 "에스토니아인들도 한국인들처럼 열심히 일하는 동시에 삶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한국 스타트업과 기업들을 향해 넓은 해외 시장으로 나가라고 강조한다. 이들 역시 뉴욕 맨해튼에서 '실험과 도전' 정신을 배웠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20대엔 정답이 뭔지 모르던 시절로, 모든 것을 실험하던 때였다"며 "실험적인 스타일을 추구하고 그 자신감으로 하버드대에서 멀티미디어를 가르치고 또 창업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예르비는 "밖에 안 나가면 실수를 안 하는데 그럼 아무것도 못 배운다"며 "내가 지금 50세인데 다음 30년은 실험적인 것을 실제 실행하는 시기로 삼을 것"이라며 또 다른 여정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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