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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중앙은행이 딜레마에 빠졌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황급히 올리는 과정에서 경기가 식을 조짐을 보이자 다시 완화적 통화정책을 꺼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달러 강세 때문에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긴축을 하면서도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시장엔 자금을 쏟아부어야 한다. 인플레이션과 싸우면서 경기와 환율까지 신경 써야 하다 보니 정책 엇박자가 날 가능성도 커졌다.
미국의 긴축 ‘마이웨이’
블룸버그통신은 28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Fed)이 긴축의 영향을 완전히 평가하기 전에 기준금리를 잇따라 인상하면서 필요 이상의 경기 둔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Fed의 통화정책이 경제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Fed가 아직 그 파급 효과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경제가 현재까지는 Fed의 조치에 꽤 탄력적으로 버텨왔지만 수요 냉각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애플이 판매 부진 때문에 아이폰14 증산 계획을 철회한 것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하지만 Fed 인사들은 여전히 강한 긴축을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연방은행 총재는 이날 “Fed가 연말까지 추가로 1.25%포인트의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는 11월과 12월 두 번 남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75%포인트와 0.5%포인트 인상 조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연말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4.25~4.5%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Fed는 강도 높은 양적긴축(QT)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보유한 국채와 주택담보부증권(MBS) 규모를 매달 475억달러씩 줄이기로 했지만, 실제로는 한도의 절반 정도만 매각하고 있다. 한꺼번에 채권을 내다 팔면 미 국채금리 상승세에 기름을 부을 수 있어서다. 소비자들의 주택 대출이자 부담이 커지는 것을 우려해 MBS는 오히려 매입하고 있다.
각국 ‘갈지자’ 정책 잇따라
‘물가 잡기’에 사활을 건 한국은행도 사면초가에 빠진 모습이다. 지난 7월 사상 첫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까지 단행한 뒤 원·달러 환율이 치솟고 채권시장도 ‘발작’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한은이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물가, 성장과 함께 ‘자본유출입을 비롯한 금융 안정 상황’을 고려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도 이런 고민을 반영한 것이란 분석이다. 한은은 금리를 올리면서도 지난 28일 3조원 규모 국채 단순 매입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2조원 규모 긴급 국채 바이백(조기상환)과 함께 국채시장 안정을 위해 총 5조원을 투입하는 것이다.영국 중앙은행(BOE)도 이날 정부 감세 정책으로 혼란에 빠진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장기 국채를 사들이기로 했다. 앞서 지난 7월 유럽중앙은행(ECB)은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면서도 리스크가 커질 위험이 있는 회원국의 국채를 사주기로 했다. 변속보호기구(TPI)를 신설해 국채금리가 폭등하는 국가의 채권을 매입해주는 형태다.
일본과 중국은 전체적으론 통화 완화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외환시장엔 적극 개입하고 있다. ‘킹달러’ 현상으로 자국의 통화가치가 급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중국 인민은행은 28일부터 외환위험준비금 비율을 0%에서 20%로 높였다. 앞으로 금융회사들이 위안화 선물환을 사고팔 때 거래액의 20%를 위험 증거금으로 인민은행에 무이자로 예치해야 한다.
22일 일본은행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기존의 초저금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동시에 엔화 매입·달러 매도로 외환시장에 개입하기로 결정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일본은행이 엔화 매입·달러 매도 형태로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은 1998년 6월 이후 24년 만이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중앙은행은 물가와 환율, 경기에 대한 부담을 같이 떠안고 있다”며 “한은도 지금까지는 물가를 중시해왔지만 앞으로는 환율 방어와 경기 중 무엇을 우선으로 할지 선택의 기로에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조미현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