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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칼럼] WTO 체제 자유무역의 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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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활짝 피었던 장밋빛 자유무역은 시들고, 세계를 덮치는 불확실성의 격랑이 날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묻지마 자유무역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상대국의 인도주의 기준, 즉 인권 등을 고려해 무역을 하겠다.” G7(주요 7개국) 통상장관 회의에서 독일의 R 하벡 장관이 한 말이다. 상대국의 인권 문제를 간과한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친러·친중정책으로 에너지에서 러시아에 발목을 잡히고, 무역에서는 차이나 늪에 빠진 독일의 뒤늦은 후회다. 미국은 신장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으로 면화 등 수입을 규제하고, 유엔은 아예 위구르 인권보고서를 발표해 인권과 무역을 연계시키고 있다. 중국의 ‘전기차 굴기’를 정밀타격하는 미국은 인플레감축법으로 미국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고, 중국제 소재·부품이 들어간 배터리를 쓰면 친환경차 혜택을 받을 수 없게 했다. 세계자유무역의 기수였던 미국의 놀라운 자국보호주의다. 이 정도면 국가가 무역과 글로벌 경영에 개입하는 관리무역(managed trade)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이다.”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차별에 대한 우리 정부 고위층의 초기 반응이었다. 좀 현실과 동떨어진 대응 방안이다. 미·중 패권전쟁 이후 미국은 WTO를 사실상 버렸다. ‘어렵게 만들어 놓았더니 WTO가 엉뚱하게 중국만 좋은 일 시킨다’는 것이다. FTA 같은 지역주의도 더 이상 워싱턴의 주요 관심이 아니다. 지금 미국이 구상하는 새로운 국제질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국가들과의 ‘가치동맹’이다. 그래서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협의체)를 만들었고 반도체 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국제질서의 혼란스러운 변화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정부는 미국의 가치동맹에 적극 참여하고 반도체, 배터리 등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고리를 장악하고 있는 우리 기업의 높아진 대외협상력을 잘 활용해야 한다. 즉,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꼬인 매듭을 풀어가는 것이다.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전기차 배터리의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말한 것은 이 같은 민·관 협동전략이 성과를 본 좋은 예다.

그리고 기업은 이윤 극대화뿐만 아니라 정치적 리스크라는 외생 변수까지 고려한 복합경영 전략을 짜야 한다. 우선 급한 것이 발등에 떨어진 차이나 리스크 관리다. 지금 ‘애플 쇼크’로 난리다. 아이폰 생산을 중국에 올인한 애플이 아이폰14의 증산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 경제 침체 탓도 있지만 차이나 리스크를 잘 관리하지 못한 애플의 탓이 더 크다. 중국의 외국기업은 점진적으로 생산기지를 동남아시아나 인도로 옮기는 ‘차이나+One’ 전략을 쓰고 있다. 미국이 블랙리스트에 올린 중국 기업과도 잘못 거래하면 낭패다. 중국 기업의 숨은 정체(!)를 확인하지 않고 섣불리 거래한 많은 외국 기업이 법적 제재를 받고 있다.

다음은 정부 역할의 변화다. 과거 정부는 자국 기업의 글로벌 경영에 대해 거의 방관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180도 변해 정부 개입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인권, 공급망 안정 등을 이유로 기업 경영에 정부가 적극 개입하고 있다. 지난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자마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은 것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는 앞으로 우리 기업이 헤쳐 나가야 할 정부와의 파트너십이라는 복합경영의 새로운 과제를 말해주고 있다.

배터리의 핵심 부품을 거의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기업으로선 공급망 개편도 시급하다. 한·캐나다 정상회담에서 배터리 핵심 광물 협력을 논의하고 국내 기업은 발 빠르게 캐나다 광물업체들과 손잡고 있다. 공급망 다변화는 배터리 소재 하나에 그치지 않고 미·중 패권전쟁이 격화될수록 계속 범위가 확대될 것이다.

지금 세계가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다음달 중순에 열리는 공산당 대회 이후 베이징의 변화다. 국제관계 개선을 위해 유럽 정상을 초청하는 등 늑대 외교에서 한발 물러설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차이나가 점점 경제보다는 이념을 우선하는 과거 마오주의로 뒷걸음질치고 있다”고 우려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국제질서가 급변할 때 위기와 기회가 같이 소용돌이친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기회의 파도를 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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