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자회사인 KBS미디어텍 소속 근로자를 방송 제작 과정에서 사용한 것은 불법파견에 해당되므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특히 불법파견 사건에서 원청(KBS)과 하청(KBS미디어텍)에 공동불법행위를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불법파견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배상 채권은 소멸시효가 10년이므로 10년치 임금 차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단도 함께 나와 눈길을 끈다.
서울남부 지방법원 제13부(재판장 홍기찬)는 지난 23일 KBS미디어텍 근로자 232명이 KBS와 KBS미디어텍을 상대로 청구한 '근로에 관한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KBS미디어텍은 KBS 방송제작 지원 위해 2009년 설립된 자회사다. 원고 근로자들은 "KBS의 지휘명령을 받으며 근로를 제공했으므로 KBS의 불법파견이 인정되기 때문에 KBS는 자회사 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하라"고 청구했다.
또 파견 근로자임을 이유로 정규직 근로자와 임금에서 차별적 처우를 했으므로, 이는 파견법상 차별금지 의무를 위반한 불법행위라는 주장과 함께 임금 차액 등 230억을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뉴스진행, 뉴스영상편집, 스포츠중계, SNG밴(방송차량) 운용, 오디오녹음, 보도CG, NLE(영상 이펙트), 편성CG, 특수영상제작 등 업무 별로 불법파견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바람에 판결문은 93페이지에 이르렀다.
법원은 사운드 디자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무 분야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대표적인 '뉴스 진행' 부문에 대해서는 "KBS미디어텍 근로자들은 보도 정보 시스템 계정을 부여 받았고, 방송 시간 임박해서는 구두나 카카오톡으로 수시로 수정 지시를 받았다"며 "회의 개최 때도 KBS 근로자들과 함께 참석했고 카카오톡 대화방에도 포함돼 있으며, 휴일근로를 분담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KBS의 직접적인 지휘·명령을 받았다는 판단이다.
사실상 KBS의 뉴스 진행 과정에 자회사 근로자들이 편입돼 있다고도 봤다.
법원은 "(미디어텍 근로자들은) 정규직 근로자의 관리감독 아래서 업무수행의 재량이 거의 없었다"며 "취재기자들이 취재를 마치면 원고 근로자들이 큐시트, 자막, 예고를 작성하고, 이후 최종적으로 뉴스가 방송되는 제작과정 전체가 연동돼 있기 때문에 역할별로 업무가 독립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KBS는 파견 근로 2년을 경과한 날로부터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손해배상의 범위(임금)와 관련된 '비교대상' 근로자에 대해서는 원고 근로자들이 주장한 '4직급'이 아닌 '7직급'으로 인정했다.
법원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KBS의) 직원을 찾기 어렵다"며 "KBS와 KBS미디어텍은 채용 방식과 절차가 다르고 책임 영역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며 이 같이 판단했다.
이에 따라 KBS미디어텍에서의 임금이 KBS 7직급 보다 높은 직원들의 손해배상 청구는 일부 기각됐다.
이번 재판에서는 소멸시효도 쟁점이 됐다. 회사는 불법파견 채권은 임금채권이므로 단기 3년의 소멸시효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파견법 위반이라는 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권은 임금채권과 달라 10년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 경우 3년치가 아닌 10년치 임금 차액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발생한다.
이번 소송 결과로 인해 KBS는 물론 KBS미디어텍도 근로자들에게 '원래 KBS 소속이라면 받았어야 할 임금' 총액에서 'KBS 미디어텍에서 실제로 받은 임금'의 차액을 지급해야 하는 의무를 공동으로 지게 됐다.
근로자 대리 맡은 류재율 법무법인 중심 변호사는 "불법파견 사건에서 하청업체와 원청업체 모두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최초의 사례"라며 "원청업체가 설립된 2009년부터 10년 동안의 임금 차액 전부에 대하여 그 금액을 손해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급효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진석/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