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도 그렇다. RM이 다녀간 미국 전역의 주요 미술관은 그의 동선을 쫓아온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다. 이달 초 열린 아트페어 ‘프리즈서울 2022’에서도 영국 런던에서 온 운영진이 RM과 찍은 사진을 지금도 온라인 광고로 반복해 올리고 있다. ‘RM이 다녀간 아트페어’라는 게 하나의 권위이자 상징이 된 셈이다. 그래서 전시 기획자들은 준비하는 전시를 개막도 하기 전에 이런 고민에 빠진단다. ‘과연 우리 전시에도 RM이 와줄까?’
돈 있으면 그림이나 살까?
미술계에서 커지고 있는 RM의 파워를 두고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어쨌든 미술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수십 년간 갤러리와 평론가들이 소수의 컬렉터, 미술 애호가들과 향유하던 언어를 RM은 단숨에 모두의 취향으로 확대했다”는 긍정적 시각이다. 또 하나는 우려와 허탈감이다. “팬덤에 의해 무턱대고 그림을 사고, 취향에 상관없이 ‘RM이 선택한 작가’라서 좋아한다는 건 미술 시장의 단기적 거품일 뿐”이라고 말이다.
여기엔 28세의 아이돌 그룹 출신 가수에게 던지는 상식적 의구심이 깔려 있다. 미술 컬렉터의 기본인 ‘안목과 취향’이라는 문제 말이다. 그동안 미술 컬렉팅을 바라보는 시각이 ‘극소수의 부자가 부리는 사치’라는 통념도 작용한다. 그 사이에는 물론 ‘탈세를 목적으로’라는 보이지 않는 어둠의 글자도 숨어 있다. 본질적 질문을 던져본다. RM은 왜 그림을 살까. 그가 그림으로 얻는 행복은 뭘까. RM이 미술품 애호가이자 컬렉터라는 사실이 알려진 건 불과 2년 전. 생일날 미술관에 가고 그런 일상을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면서 대중에게 처음 알려졌다. 그는 BTS의 멤버로 국내외 투어를 하는 동안 ‘나의 본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미술관을 찾았다고 한다. 모네와 쇠라의 그림을 시카고의 한 미술관에서 보고 숨이 멎어 쓰러질 것 같은 ‘스탕달 증후군’을 경험했다고도 한다.
예술 후원의 판 바꾼 RM
RM의 행보에 대중이 열광하는 건 그가 단지 스타여서가 아니다. 부를 가진 이들의 아트 컬렉션이 어제오늘 일이던가. 하지만 20대에 큰돈을 번 다른 연예인과 비교하면 충분히 신선하다. 스타의 재산 규모가 알려질 때마다 흘러나오던 기사들은 주로 ‘강남 ××빌딩 소유’, ‘럭셔리카 OO대 보유’ 등이었다. 그런데 RM은 집 대신 그림을 샀고, 차 대신 조각을 샀다.무엇보다 그의 언어는 쉽다. ‘평범한 개인 김남준’의 계정으로 운영되는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그림이나 미술관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나 분석이 없다. 그저 그림 한 장과 본인의 (주로 뒷모습) 사진이 전부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동영상에 성실하게 자신의 하루를 기록하고 공유하며 ‘함께 감상하는 그림’ 문화를 만들었다. 기존 컬렉터들이 비밀리에 작품을 소장하거나 굳이 대중에게 알리려 하지 않았던 것과 대조된다.
전시회 방명록도 늘 화제다. ‘저도 심플하게 살고 싶습니다. 장욱진 짱.’(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방명록), ‘김창열 선생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싸랑함다!’(김창열미술관 방명록)처럼 나이에 어울리는 자신의 언어를 사용한다.
RM 없이도 성공하는 미술관
RM의 미술 사랑이 단기적인 거품에 그칠 것이라는 건 기우다. 그는 돈 자랑을 하는 게 아니라 한국 근현대 미술을 위주로 컬렉팅한다. 추상화의 거장 윤형근, 요절한 화가 손상기, 꽃의 화가 김종학, 달동네를 그리는 작가 정영주, 정물화의 대가 도상봉, 영원을 조각한 권진규 등이 그의 소장품 목록에 들어 있다. 후원자로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자신의 생일에 맞춰 9월마다 문화예술 분야에 1억원씩을 기부했다. 3년째다. 절판된 미술 서적을 도서관용으로 재발행해 어려운 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한 도록을 만들어달라며 국립현대미술관에 기부했고, 지난해와 올해에는 국외에 있는 문화재재단에 쾌척했다.이제 미술계가 고민해야 할 건 ‘RM이 없는 세상’이다. 그가 사지 않아도, 그가 오지 않아도 대중이, 팬들이 열광할 만한 전시를 기획하고 쉬운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다.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일 말이다. RM의 후대에도 인정받을 업적이 하나 있다면 이전 세대가 만들어놓은 통념, 그러니까 미술 컬렉팅이란 본래 폐쇄적이고 은밀하게 해야 하는 ‘부자만의 놀이’라는 것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