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도 없이 대중 여론에 따라 이런 조치를 취해도 되는 것입니까?”
한 경영계 고위 관계자는 22일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총괄하는 수탁자책임위원회(수탁위)가 지난 7월 비공개회의를 거쳐 방탄소년단(BTS) 소속사인 하이브를 ‘중대성 평가 대상 기업’으로 선정했다는 사실을 전해주면서다.
올해 6월 14일 BTS가 단체 활동을 중단할 가능성을 내비친 ‘눈물 회식’이 유튜브로 공개되면서 하이브 주가가 급락한 것이 계기가 됐다. 중대성 평가 대상 기업 선정은 국민연금이 배당 확대부터 심한 경우 임원 해임,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할 수 있는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할 대상을 선정하는 첫 번째 절차다. 위법행위를 했거나 국민연금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지표를 위반한 경우 등이 대상이 된다.
하이브 주가 급락으로 주주들이 손실을 본 것은 사실일지라도 하이브는 공시 위반 등 위법행위를 하거나 ESG 평가지표를 위배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부 수탁위원이 “하이브에 대해 예상하지 못한 우려가 생겼다”는 주장을 폈고,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하이브는 인명 사고 발생 등으로 수사 대상이 된 다른 8개 기업과 함께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타깃이 됐다.
수탁위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총괄하는 막대한 권한을 쥐고 있지만 전문성과 지배구조의 적정성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영계 추천 3인, 노동계 추천 3인, 지역가입자 추천 3인이 다수결로 주주권 행사 여부를 정하는 구조여서다.
경영계와 노동계 의견이 갈리다 보니 정부가 지명한 시민단체 추천 인사가 포함된 지역가입자 측이 ‘캐스팅보트’를 쥔다. 이번 하이브의 중대성 평가 대상 기업 선정 사례처럼 여론에 휘둘리거나 심한 경우 특정 단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 구조다.
국민연금은 이렇게 허술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수탁위에 주주대표소송 권한까지 넘기는 방안을 이르면 23일 재논의할 예정이다. 주주소송을 적시에 하겠다는 이유로 전임 정부 때부터 추진된 안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나섰지만, 국민연금은 이 방안을 강행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관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수탁위의 권한을 국민연금법이 규정한 대로 검토·심의기구로 명확히 해야 한다. 주주대표소송 등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맡도록 정비해야 한다. 상반기 77조원의 평가손실을 낸 국민연금이 실험을 계속할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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