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꿈을 얼마 전 경기 남양주 해비치컨트리클럽(CC) 서울 아웃코스 4번홀(파3)에서 이뤘다. 화이트 티에서 4번 아이언으로 힘 빼고 쳤더니 160m를 날아 홀에 쏙 들어갔다. 평소 꿈꿨던 첫 홀인원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동반자가 그날 처음 만난 사람이란 것만 빼면. 골프와 인연을 맺은 지난 10년 동안 그렇게 염원했던 홀인원은 하필이면 일하러 간 취재 라운드에서 나왔다. 김민수 해비치CC 대표와 골프장을 함께 돌며 이 코스에 담긴 스토리를 취재하던 차였다. 친구들이라면 “한턱 쏘라”며 난리를 피웠겠지만, ‘초면’인 김 대표 입에선 연신 어색한 덕담만 나왔다. “(홀인원 한 사람이 통상 하는 것처럼) 오늘 저녁식사와 다음 라운드 대접하겠습니다. 날짜 주세요”라고 몇 번을 얘기해도 김 대표는 “오늘 저녁은 선약이 있습니다. 다음 라운드는 천천히 잡아보죠”란 답만 내놨다.
그렇게 시작된 어색한 동석. 1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캐디가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의 주인공인 해비치CC의 ‘얼굴’ 12번홀(파4·인코스 3번홀)입니다.”
○오거스타GC 빼닮은 벙커
시그니처홀이라 그런지, 그동안 지나쳐온 홀보다 해가 잘 드는 느낌이었다. 그린 바로 앞에 40m 길이로 뻗어 있는 큼지막한 벙커는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얬다. 지난 4월 미국 남자골프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취재차 방문했다가 운 좋게 직접 라운드했던 오거스타내셔널GC의 벙커가 떠올랐다.
정말 그랬다. 모래가 아니라 석영(산소와 규소 원자로 구성된 광물)으로 벙커를 채운 오거스타GC처럼 이곳도 모래입자 크기로 쪼갠 백운석을 벙커에 담는다고 했다. 김 대표는 “모래가 아니라 돌조각이라 비가 많이 와도 배수가 잘된다”고 했다.
그린 앞에 자리잡은 워터해저드의 색깔도 여느 골프장과는 달랐다. 짙은 검은색 물은 거울을 닮았다. 그 안에 하늘과 구름이 담겨 있었다. 오거스타GC는 워터해저드가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녹색을 띠도록 염료를 탄다. 조화로운 풍광을 위해서다. 해비치CC의 ‘검은 물’의 정체도 염료였다.
이 홀은 블랙 티 387m, 블루 티 365m, 화이트 티 344m, 시니어 티 295m, 레이디 티 271m로 세팅돼 있다. 드라이버를 들자 캐디가 말렸다. 이날 화이트 티는 평소보다 10m 정도 홀과 가까운 곳에 놓였다. “워터해저드까지 230m예요. 살짝 내리막 경사여서 드라이버가 잘 맞으면 빠질 수 있습니다.”
드라이버로 230m 나갈 정도로 ‘아주 잘 맞는’ 건 흔치 않다는 걸 잘 알기에 그냥 드라이버를 들었다. 정타로 맞은 공은 해저드 10m 앞 페어웨이에 멈춰 섰다.
○난도보단 ‘절경’으로 으뜸이 된 홀
멀리서 봤을 때는 분명 워터해저드 빛깔이 검정이었는데, 가까이 가니 에메랄드빛이었다. 김 대표는 “에메랄드빛을 지키기 위해 염료뿐 아니라 미생물을 없애는 제품과 자외선 차단제도 넣는다”고 했다. 바닥이 보이는 투명한 물은 아니었지만, 한눈에 봐도 깨끗했다.이 홀은 ‘에메랄드 해저드’와 바로 옆에 있는 ‘백운석 벙커’를 넘겨야 그린에 닿도록 설계됐다. 캐디는 “해저드 너비는 80야드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시각적으로 편해서인지 그리 위협적이진 않았다. 이 홀은 핸디캡 12번으로 어려운 편은 아니다. 김 대표는 “이 홀이 해비치CC의 얼굴이 된 건 어려워서가 아니라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했다.
홀까지 남은 거리는 115m. 피칭 웨지로 풀스윙하면 닿는 거리다. 그린 오른쪽을 겨냥했다. 오른쪽이 높은데다 홀 왼쪽으로 공간이 넓은 점을 감안했다. 살짝 감기긴 했지만, 공은 그린에 잘 올라갔다. 2퍼트, 파였다.
시그니처홀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해비치CC를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다친다. 해비치CC는 어렵기로 소문난 골프장 중 하나다. “다른 골프장보다 10타 이내로 더 치면 잘 친 것”이란 얘기가 회원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한다. 남촌CC와 라데나CC 등을 설계한 1세대 골프장 설계가 김명길 씨가 밑그림을 그렸다.
한 회원은 “페어웨이가 좁고 긴 편(최대 전장 6649m)이라 공략하는 게 쉽지 않다”며 “좋은 점수를 내려면 코스 곳곳에 심어놓은 나무와 벙커, 워터해저드 등 장애물을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티잉 에어리어에는 켄터키블루그래스를 심었고, 페어웨이와 러프에는 중지·야지를 섞었다. 그린은 벤트그래스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