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초판이 출간된 도널드 노먼의 <디자인과 인간 심리(The Design of Everyday Things)>는 디자이너라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힌다. 당겨야 하는지 밀어야 하는지 헷갈리는 문고리, 어떤 스위치를 돌려야 원하는 화구에 불을 켤 수 있는지 알기 어려운 가스레인지 등 잘못된 디자인이 가져올 수 있는 일상생활의 혼란과 불편을 잘 정리했다.
<유저 프렌들리>는 그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구글 수석디자이너인 클리프 쿠앙과 달버그디자인 공동 창업자인 로버트 패브리칸트가 같이 썼다. 이들은 노먼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시인한다. 책 제목 ‘사용자 친화적인’이란 말도 노먼이 대중화한 ‘사용자 중심 디자인’에서 따왔다. 하지만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니다. 스케일이 더 커졌고, 더 다양한 사례를 담았다. 저자들은 “사용자 친화적 디자인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한다.
노먼이 지적한 대로 사용자 친화적이지 못한 디자인은 혼란을 불러온다. 개인의 불편, 기업의 판매 부진 정도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잘못된 디자인은 끔찍한 사고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1979년 3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발생한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그런 예다. 그날 1100개의 다이얼과 게이지, 스위치 상태 표시등 그리고 600개가 넘는 경고등으로 가득한 제어실에 수많은 경고가 한꺼번에 울렸다. 원자로 내 열이 계속해서 올라갔다. 직원들은 수차례에 걸쳐 경고등을 확인했지만,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나중에 파악된 바로는 냉각수 부족이 원인이었다. 제어실에선 쉽게 알 수 없었다. 실제로는 원자로 내 냉각수가 줄고 있었지만 계측기에는 수위가 올라가는 것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압력방출 밸브의 미세한 누출로 냉각수가 끓어오른 탓이었다. 계측기는 거품을 내며 끓어오르는 냉각수를 수위가 오르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것을 본 엔지니어들이 냉각수 펌프를 끄면서 문제가 더욱 악화했다. 노심이 완전히 녹아내리기 30분 전 가까스로 냉각 시스템을 재가동했다. 피폭자와 사망자를 한 명도 내지 않은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사실 제어판을 잘 확인했다면 쉽게 문제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백 개의 경고음이 동시에 울리는 상황에서 차분하게 이를 확인할 순 없었다. 또 경고등마다 빨간색은 14가지, 녹색은 11가지 각각 다른 의미를 지녔다. 비용 절감을 위해 원자로를 쌍으로 만들고 제어실 한 곳에서 이를 통제하게 한 것도 혼란을 키웠다.
좋은 디자인은 인간과 기계의 소통을 돕는다. 그 한 가지 방법이 피드백이다. 이를테면 식빵을 토스터에 넣고 레버를 내렸을 때, 토스터는 ‘딸깍’ 하는 소리를 낸다. 그러면 우리는 토스터가 일을 시작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신호가 없다면 우리는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지 못한 채 찜찜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요즘 자동차에 많이 쓰이는 주행보조장치나 앞으로 나올 완전 자율주행차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아우디 A7은 운전자가 컴퓨터에 운전대를 넘겨줄 때 전면 유리를 둘러싼 표시등의 색이 변하면서 주도권의 전환을 알려준다. 자동차가 차선을 변경할 때는 화면 속 타이머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무슨 동작을 할지 예고한다. 콘솔에는 주변 차량이 보여진다. 컴퓨터가 주변 차량을 잘 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덕분에 운전자는 안심할 수 있다.
또 중요한 요소는 ‘단순화’다. 저자들은 “기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해져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훨씬 더 단순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1953년 출시된 하니웰의 원형 온도조절기가 대표적이다. 그전까지 온도조절기는 보통 긴 직사각형 숫자판에 작고 복잡하게 생긴 조작부가 딸려 있었다. 반면 하니웰 제품은 숫자에 맞춰 다이얼을 돌리기만 하면 됐다. 워낙 직관적인 덕분에 지금도 쓰이는 디자인이다. 심지어 네스트라는 스타트업이 내놓은 인공지능(AI) 스마트 온도조절기도 다이얼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이 책이 <디자인과 인간 심리>를 뛰어넘는 명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디자인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통찰보다는 일반 독자의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비중을 뒀기 때문이다. 대중 도서로서 장단점이 명확한 편이다. 디자인 책인데도 사진이나 그림이 거의 없는 점은 아쉽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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