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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놀자] 영수증 글씨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건 화학물질의 요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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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여름, 오래된 문서를 정리하던 중 문서 내용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놀라서 종이를 유심히 들여다봤더니 글씨의 색은 사라졌지만 글씨 자국은 남아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문서 작성에 사용한 볼펜은 ‘열 감지성 잉크’를 사용해 만든 지워지는 볼펜으로, 볼펜 끝에 달린 지우개로 잉크를 문지르면 잉크 색이 검은색에서 투명하게 변한다.


열 감지성 잉크의 재료는 ‘류코(leuco·흰색의, 무색의) 염료’ ‘현색제(顯色劑·developer)’ ‘변색 온도 조정제’로 구성돼 있다. 낮은 온도에서는 류코 염료와 현색제가 결합해 검은색으로 나타난다.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변색 온도 조정제가 활성화돼 현색제와 류코 염료가 분리되고 변색 온도 조정제와 결합한다. 이때 잉크는 류코 염료의 원래 색인 투명한 색으로 변한다. [그림 1] 참조

사실 볼펜 끝에 달린 지우개로 글씨를 지운다기보다 지우개로 문질러 마찰열을 발생시켜 글씨의 색을 변화시킨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공교롭게도 지워지는 볼펜으로 문서를 작성했고, 문서를 보관해둔 곳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잉크 색이 흐릿하게 변한 것이었다.

지워지는 볼펜의 잉크에 쓰이는 ‘류코 염료’는 우리 생활에 다양하게 이용된다. 영수증 용지나 놀이공원 입장권, 공연 티켓, 팩스 용지 등에 사용되는 ‘감열지’에도 류코 염료를 이용한다. 감열지는 열을 가하면 검은색 잉크가 나타나는 종이다. 감열지 앞면에는 투명한 색의 류코 염료와 현색제, 증감제가 결합하지 않은 채 골고루 섞인 물질이 발라져 있다. 현색제는 류코 염료와 결합하면 색을 나타내게 하며, 증감제는 현색제가 반응하는 온도를 낮춰주는 물질이다.

감열지에 일정 온도 이상의 열을 가하면 현색제가 녹으면서 현색제와 류코 염료가 결합해 검은색이 나타난다. 감열식 프린터기는 이 원리를 이용해 감열지에 글씨와 바코드 등 원하는 정보를 표시한다. 감열식 프린터가 아니더라도 감열지로 만든 영수증을 손톱으로 긁으면 긁는 모양대로 검은색 선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손톱으로 긁은 부분에 마찰열이 발생해 현색제가 녹으면서 류코 염료와 결합해 검은색으로 나타난다.


택배를 보낼 때 손으로 직접 주소를 써서 붙이는 택배 운송장 용지에도 류코 염료가 사용된다. 운송장 용지는 ‘노카본지’라는 종이로 특별한 두 장의 종이가 겹쳐 있다. 첫 번째 종이의 아랫부분에는 류코 염료를 넣은 매우 작은 크기의 캡슐(0.001㎜)이 발라져 있다. 두 번째 종이의 윗부분에는 현색제가 발라져 있다. 첫 번째 종이 위에 볼펜이나 연필로 글씨를 쓰면, 종이를 누르는 압력에 의해 류코 염료가 들어 있는 캡슐이 터지며 두 번째 종이의 현색제와 류코 염료가 만나게 된다. 류코 염료는 현색제와 결합하면 검은색으로 변하므로 첫 번째 종이에 쓴 글씨와 똑같은 모양이 글씨가 적힌 복사본을 얻을 수 있다. [그림 2] 참조

그렇다면 이름이 왜 노카본지(no-carbon paper)일까. 노카본지가 발명되기 전에는 종이 뒷면에 ‘카본(carbon·흑연)’을 바른 카본지를 사용해 글씨를 복사했다. 우리가 흔히 ‘먹지’라고 부르는 종이인데, 현재도 간이영수증지 등에 사용되며 두 장의 종이가 겹쳐 있다. 첫 번째 종이의 뒷면에 흑연가루가 발라져 있으며, 연필이나 볼펜 등으로 첫 번째 종이에 글씨를 쓰면 압력에 의해 두 번째 종이 윗부분에 흑연이 옮겨붙어 동일한 글씨가 써진다.

흑연은 3개의 탄소 원자가 공유 결합해 육각형의 판상 모양으로 묶인 구조로 탄소 원자 간 공유결합은 강하지만, 얇은 판상 형태의 흑연층 간 결합은 매우 약하다. 따라서 압력을 가해 흑연층을 밀면 바깥쪽에 위치한 흑연 층이 밀려 떨어지게 된다. 흑연의 이와 같은 성질을 이용해 만든 것이 연필이다. 연필은 나무심 안에 흑연 기둥이 있는 필기구로 글씨를 쓸 때 바깥쪽에 위치한 흑연층이 밀려 떨어지며 종이 표면에 옮겨 붙어 글씨가 나타난다. 카본지는 노카본지에 비해 값은 저렴하지만, 흑연층이 떨어져 손에 옮겨붙어 손이 더러워질 수 있기 때문에 노카본지에 비해 불편하다.

온도, 압력과 같은 조건에 따라 현색제와의 결합이 바뀌어 색이 변하는 류코 염료의 성질을 이용한 생활용품은 학용품, 감열지 등 우리 생활에 널리 쓰이고 있다. 이와 같이 화합물의 성질을 이용한 다양한 물건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준다. 우리 주변의 모든 물질은 원소와 화합물로 이뤄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이 사용한 물건들에 숨어 있는 화학 원리를 찾아보자.
√ 기억해주세요
류코 염료는 온도, 압력 등의 조건에 따라 현색제와의 결합이 달라지며 색이 변하는 물질이다. 류코 염료를 이용한 생활용품에는 지워지는 볼펜, 영수증 등에 사용되는 감열지, 노카본지 등이 있다.

유가연 구리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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