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 커진 김대기
윤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실부터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짚어보고 있다”며 인적 쇄신을 예고한 뒤 한 달이 흘렀다. 이 발언 직후 조직·인사개편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비서관급 이하 직원 50여 명이 권고사직 형식으로 대통령실을 떠났다.그 사이 대통령실 분위기는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김 실장의 위상이다. 한 달 전만 해도 여권에서조차 “오래 못 버틸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왔지만, 김 실장의 대통령실 내 입지는 공고해졌다는 평가다. 김 실장은 이날 조회에서도 “진짜 리스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다”며 “‘짱돌’은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른다”며 기강을 다잡았다.
김 실장의 위상 강화는 대선 공신인 권성동·장제원 의원 등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들의 퇴조와 궤를 같이한다. 대통령실의 한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내부 회의를 하다가도 윤핵관들에게 종종 전화를 걸어 상의했는데, 최근에는 이런 모습을 좀처럼 볼 수가 없다”고 귀띔했다. 오히려 김 실장을 비롯한 참모들 조언에 더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이날 직원 조회도 “어수선한 대통령실의 위기를 다독일 필요가 있다”는 김 실장의 판단으로 열렸다. 윤 대통령은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8일 사무실을 돌면서 전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찾아 격려했다.
조직 개편에서도 김 실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 직후 전격 임명된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과 추석 연휴 직전 발표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김 실장이 평소 칭찬을 아끼지 않던 인사들이다.
의사결정 빨라졌다
대통령실 의사 결정도 빨라졌다. 오는 19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치러질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국장에 참석하기로 한 결정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실은 당초 이 기간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이런 계획은 지난 9일 윤 대통령이 영국대사관을 방문한 직후 바뀌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고인이 1999년 남편인 필립 공과 함께 한국을 찾은 뒤 한국에 애틋한 정을 느꼈다는 얘기를 듣고 대통령이 곧바로 영국행을 결정했다”고 전했다.두 달여 전부터 추진된 대통령의 순방 일정을 불과 열흘을 앞두고 바꾸는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 권력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방한 당시 윤 대통령과의 만남 여부를 놓고 참모진이 우왕좌왕했던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지난 5일 밤 초대형 태풍 힌남노 대응을 위해 윤 대통령이 철야하기로 한 결정도 전광석화처럼 내려졌다.
사라진 구설수·설화(舌禍)
윤 대통령의 한 참모는 “취임 100일 기자회견 전후로 대통령의 생각과 발언들이 진중해졌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내부 참모들과 회의에서도 발언 횟수를 줄이고 불필요한 말을 삼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모들에겐 “대통령이 꼭 알아야 할 일만 보고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도 신중해진 모습이다. 다만 인사 쇄신과 내부 감찰 등의 여파로 복지부동하는 내부의 분위기는 일부 남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