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정리 및 매각 규모는 2009년 금융위기와 2011년 국제회계기준 도입을 계기로 증가했으나 2016년 이후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부실채권 시장에서 중소 투자자가 사업을 철수하고 부실채권 전문 투자회사 중심으로 과점 체계가 형성됐으나, 2020년 하반기부터 새로운 플레이어의 진입과 함께 기존 업체의 사업 확장이 이뤄지고 있는 양상이다.
○경제 불확실성…NPL 시장 확대 예상
과거 경제위기 땐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나 규모가 경제성장률과 반대로 움직였던 패턴을 보였지만, 코로나19 기간 은행의 대출 부실은 오히려 축소된 모습을 보였다. 대내외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최근에도 국내 은행들의 부실채권 비율이나 신규 부실채권 규모는 역대 최저치를 경신 중이다.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12.9%에서 코로나19를 겪은 2020년 말에는 0.65%로 낮아지고, 2022년 3월 말 0.4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신규 발생 부실채권 규모도 2013년의 3분의 1 수준(10조8000억원)에 불과했다.표면적으로는 금융회사 건전성 지표가 개선된 결과지만, 실상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금리 인하 등 위기 대응 조치의 영향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공급망 문제, 원자재 상승, 환율 및 자산 가격 변동성 확대 등으로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시장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대출금리 상승 기조에 따라 한계기업과 취약 자영업자 등을 중심으로 상환 능력이 크게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은 2021년 말 960조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 대비 40.3% 증가했다. 전체 가계 대출의 5% 수준인 취약 차주 대출도 금리 상승기를 맞아 문제가 될 수 있다.
금융사에서는 손실 흡수능력 제고를 위해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고 있으나, 올해 9월 이후 코로나19 금융지원 및 완화 조치가 종료되면 그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잠재 부실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 금융사의 대손비용 증가나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할 경우 부실자산을 정리·매각하면서 현재보다 부실채권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 심화…다양한 리스크 요인 고려해야
부실채권 시장의 성장 가능성으로 다양한 플레이어가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지만 특별히 고려할 요인이 있다. 첫째, 부실채권 매각 규모가 예상보다 많이 증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부실채권 매각 규모는 경기 변동에 따른 부실채권 발생 규모뿐만 아니라 은행의 건전성 관리 역량 수준이나 정책적 요인 등에도 영향을 받는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새출발기금의 채무조정 프로그램 세부 정책 방향을 모니터링하고, 2009년 일부 카드사의 부실채권 매각 사례 등을 참고해 제2금융권에서 발생하는 부실채권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제2금융권에서 매각되는 PF채권, 무담보채권과 같이 복잡한 권리관계, 담보가치 변동성이 높은 부실채권에 대한 가치 산정 및 관리 역량이 부실채권 투자자들의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전략도 고민해야 한다.둘째, 사업성 확보를 위한 매입률과 회수율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은행의 부실채권 매각 물량이 감소하면서 부실채권 투자자 간 부실채권 매입 경쟁이 높아지고 있다. 2022년 상반기에는 매입률(미상환원금 잔액 대비 매입가율)이 100%를 초과하는 경쟁입찰도 나왔다. 부실채권 매입률 상승은 투자기업에 수익성 하방 요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적정 밸류에이션 산정이 필요하다. 아울러 NPL 담보 가치 및 채권 회수 기간과 회수율 등이 부동산 경기 등에 밀접하게 연관되는 만큼 국내 부동산 경기가 조정되는 시점에서 자본관리 능력, 회수율 저하 가능성과 같은 부담 요인에 대한 분석과 선제 대응에도 힘써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2배를 웃도는 민간 부채 수준에서 글로벌 금리 인상 본격화로 각 경제주체의 채무 부담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채무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되면 부실채권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대내외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속 부실채권 시장의 기능과 역할 확대가 예상되는 만큼 위기와 기회를 살펴보고 선제적인 전략을 정비할 시점이다.
김정환 삼정KPMG 재무자문부문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