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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칼럼] 뒤늦은 재정준칙이 성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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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재정준칙(fiscal rule)을 제정한다. 이미 100개가 넘는 국가들이 다양한 형태의 재정준칙을 운용 중이다. 겉보기엔 우리나라가 늦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씁쓸한 생각이 든다. 늦은 이유는 그동안 재정준칙의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재정준칙은 정부 스스로 손발을 묶어 자의적이고 방만한 재정운용을 사전에 제어하고 이를 통해 재정건전성 유지에 대한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강화하기 위함이다. 다른 방법을 통해 충분한 신뢰가 형성돼 있다면 굳이 재정준칙을 제정해 운용할 필요가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재정건전성에 관한 한 늘 우등생이었다. 때로는 재정이 할 일을 통화정책에 떠넘기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건전 재정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한 결과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구축했다. 강건한 재정건전성이 1997년 외환위기 극복과 국가신용도 상승에 핵심적인 기여를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재정준칙의 필요성을 소환한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에 따른 국가 부채 급증이다. 2016년 36% 수준이던 국가채무비율(GDP 대비)은 2021년 47%로 크게 높아졌다. 전례 없는 국가채무 급증 추세로 국민과 시장의 신뢰에 금이 간 결과 이제는 재정준칙을 통해서라도 신뢰 보강이 필요한 처지에 놓인 것이다. 재정준칙을 제정하기로 한 이상 득과 실을 면밀히 따져 우리 실정에 맞는 준칙을 설계해야 한다. 재정정책, 특히 분배·복지정책은 태생적으로 정치적이다. 재정정책보다는 덜하나 통화정책도 예외는 아니다.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재정준칙과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진 것을 우연이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재정준칙 설계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 재정준칙의 목표를 어떤 재정변수를 대상으로 어느 수준에서 설정할지에 대한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다. 재정지출, 재정수입, 재정수지, 국가부채 중 어느 변수에 상한 혹은 하한을 설정할지는 정치경제적 배경과 행정 역량 등에 따라 국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준칙에서 정한 목표치가 한계치가 아니라 일상적인 목표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한 예로, GDP 대비 3% 이내의 재정적자 목표가 상시적인 재정적자를 허용하는 빌미가 돼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복수의 재정변수를 대상으로 준칙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준칙(rule)과 재량(discretion)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평소에는 재정준칙이 재정건전성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적극적인 재정의 역할이 요구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치명적인 족쇄가 될 수 있다. 재정준칙의 득과 실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많은 국가들이 경제위기나 예상하지 못한 충격에 대비해 재정준칙에 예외조항(escape clause)을 두고 있다. 2020년부터 지난해의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국면에서 30개 이상의 국가가 예외조항을 발동해 재정투입을 추진했으며, 일부 다른 국가들은 재정준칙을 일시 유예하거나 목표치를 조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예외조항의 존재는 그 자체로 재정준칙의 신뢰도 보강 효과를 잠식할 위험이 있다. 예외조항을 두되 발동 요건을 투명하게 제시해 남용을 방지해야 한다.

셋째, 재정준칙이 설정한 목표에서 이탈할 경우 사후적으로 교정하기 위한 조정 메커니즘이 제시돼야 한다. 성실한 집행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충격이나 불확실성으로 목표를 벗어나는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목표 궤도를 이탈한 재정정책을 다시 목표 범위 내로 복귀시키는 방안과 시한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재정준칙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잘 설계된 재정준칙도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제대로 집행되지 않거나 정치적 압력에 취약한 족쇄라면 무용지물이다. 2010년 국가 부도 위기를 겪은 그리스도 당시 재정준칙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의 국제통화기금(IMF) 조사 결과도 많은 국가에서 재정준칙이 구조적이고 큰 폭의 국가 부채 증가를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못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정부의 강력한 집행 의지와 국민의 상시적 감시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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