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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칼럼] '기술동맹시대' 한·일 협력이 절실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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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일본 도쿄를 찾았다. 2년 반 만에 다시 찾은 일본. 입국 전 일본 방역당국이 요구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채취한 샘플로 코로나19 검사를 해야 했고, 결과 확인서를 디지털 앱에 입력하고 승인받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한국 시스템이 10차선 고속도로라면, 일본은 좁은 시골길이었다. 그 시골길이 한 방향 1차선이라는 것은 일본 현지 공항에 도착한 뒤 알게 됐다.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은 한 줄로 서서 공항 반대편 구석에 설치된 임시검역소까지 먼 길을 걸어가야 했다. 검역서류 뭉치를 한 다발 받아 들고 다시 온 길을 거꾸로 한 줄로 걸어야 드디어 입국심사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코로나가 디지털 대전환을 가속화했다고 했지만, 일본은 다른 세상에 머물러 있었다. 일본은 여전히 아날로그 사회였다. 디지털 시대의 문법인 속도·적응·임기응변은 그 사회에선 무리·변덕·원칙을 저버리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은 바다를 사이에 둔 이웃이지만, 디지털 대변혁시대에 양국의 인식과 문화 차이는 더욱 극명해지고 있다. 한국은 일본을 추월할 태세지만 일본은 이를 애써 무시하는 분위기다.

올 2월 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1세기 세계 역사의 전환기적인 사건이었다. 러시아의 침공은 2016년 이후 본격화하고 있는 미·중 패권 경쟁을 본격적인 신냉전으로 몰아넣었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21세기 대국으로의 화려한 부활을 꿈꾼다.

시진핑은 그가 조우한 첫 번째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에게 “광활한 태평양을 양분하자”고 노골적으로 야심을 드러냈다. 그의 두 번째 상대인 도널드 트럼프에겐 “한국은 오래전부터 중국의 일부였다”고 역사를 왜곡했다. 중국은 남중국해를 그들의 내해라고 주장하면서 인공섬을 만들고 속속 군사 기지화해 국제 질서를 무력화하고 있다. 20세기 식민지 시대가 역사 속으로 저문 이후 등장한 아시아의 신생 독립국 가운데서 냉전에서 살아남고 세계화 시대를 거치면서 번영한 나라들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이들 아시아 국가에 노골적인 영토적 야심을 숨기지 않는 강성 권위주의 중국이 지배하는 아시아의 미래는 험난한 도전이다. 그 때문에 미·중 패권 경쟁은 강 건너 불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생존과 번영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시진핑의 세 번째 상대인 조 바이든은 ‘가치 동맹’을 내세운다. 세계화 시대에 완성된 세계의 공장 중국으로 완결되는 글로벌 공급망은 미·중 신냉전과 양립할 수 없다. 바이든은 민주주의 국가 간의 결속을 강화해 핵심 분야 공급망을 미국에서 시작해 미국에서 끝내고 싶어 한다. 민주주의 기술 동맹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결전장은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다.

미국 기술과 중국 시장을 연결하는 전략으로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강국으로 성장한 한국은 갈림길에 섰다. 미국은 제조업 강국 민주주의 국가들의 미국 투자를 필요로 한다. 보조금이 유인책이다. 그 보조금은 공짜가 아니다. 미 의회는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의 보조금을 받으면 10년간 중국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전기차는 북미지역에서 생산해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당사자인 한국이 제외된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가치를 내세우는 미국은 그들의 국내 정치를 위해 가치 공유 동맹국들엔 일방통행한다. 차이나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해 결성된 민주주의 기술 동맹에서 한국은 아메리카 리스크도 감당해야 할 판이다. 한국은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한국 혼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일본과의 적극적인 협력 및 소통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번 여름 다시 찾은 일본은 한국이 과연 가치를 공유하는 민주주의 국가인지 의심하고 있었다. 국가 간의 합의를 정부가 바뀌었다고 무시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임 정부의 사과를 번복하는 일본은 얼마나 다른가. 근시안적인 상호주의의 함정을 탈출하지 않으면 바닥으로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는 문을 열 수 없다. 한·일 간의 협력과 소통 없는 민주주의 기술 동맹은 공허하다.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고 있는 일본을 디지털로 전환한 한국이 먼저 포용할 수는 없을까. 그래야 아시아의 자유민주주의는 21세기에도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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