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통해 상품을 파는 이른바 ‘라방(라이브방송)’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판매 상품 수는 TV 홈쇼핑의 20배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거래액은 7개월 만에 두 배로 불었다. TV 홈쇼핑에 접근하기 어렵던 소상공인의 방송 문턱을 크게 낮추면서 커머스업계 지형을 흔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7월 셋째주(18~24일) 주요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2개사(네이버 쇼핑라이브, 그립)의 판매 아이템은 1만 개에 육박했다. 네이버 쇼핑라이브는 2458개사의 5731가지 상품을, 그립은 1372개사의 4030가지 상품을 판매했다. 같은 기간 TV홈쇼핑 3사(롯데·GS·현대홈쇼핑)에서 549가지 상품을 판매한 것과 비교하면 20배가량 많다. 이승엽 부경대 교수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다.
전자상거래 대세된 '라방'
이들 두 라이브커머스 플랫폼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는 3830곳으로, 홈쇼핑 3사(363곳)의 10배 수준이었다. 이 교수는 “라이브커머스 판매자 대부분은 소상공인이나 개인사업자”라며 “중국 미국 등에서 농부 어부 등이 라방을 통해 물건을 파는 사례가 확산하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대·중견기업 위주인 TV 홈쇼핑 대신 소상공인과 개인들이 라이브커머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TV 홈쇼핑은 매체 특성상 한 채널에 한 개의 방송만 할 수 있지만, 라이브커머스 플랫폼은 동시다발로 여러 건의 라이브 방송이 가능하다. 부수현 경상대 심리학과 교수는 “라이브커머스는 판매자와 소비자 간 상호작용을 통해 매장에서 직접 쇼핑하는 듯한 현장감을 주는 게 강점”이라며 “소비자는 실시간 채팅창을 통해 다른 사람의 반응을 참고하면서 구매를 결정한다”고 했다.
라방은 전자상거래가 활발한 중국에선 이미 대세로 자리잡았다. ‘왕훙(인플루언서)’을 내세운 라이브커머스로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가 크게 늘고 있다. 중국 인구의 4분의 1가량이 라이브커머스를 경험했다.
국내에서도 성장세가 가파르다. 라이브커머스 데이터 전문 스타트업인 씨브이쓰리에 따르면 국내 15개 라이브커머스 플랫폼의 월 거래액은 올 1월 390억원에서 지난달 750억원으로 증가했다.
소기업과 개인 비중이 90%
라이브커머스 플랫폼을 통해 상품을 파는 회사 10곳 중 9곳은 규모가 작은 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TV 홈쇼핑 판매자 대부분(81.9%)이 대기업 또는 중기업인 것과 대비된다. 휴대폰만 있으면 누구나 플랫폼을 통해 상품을 판매할 수 있어 TV 홈쇼핑에 진출하기 힘든 소상공인들의 중요한 판로로 자리잡았다는 분석이다. 다만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선 라이브커머스 판매자들이 상품 설명을 과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불만도 나온다. 2일 라방바 데이터랩의 데이터 수집 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8월 주요 15개 라이브커머스 플랫폼을 통해 송출된 ‘라방(라이브방송)’ 수는 누적 19만 건에 달한다. 월간으로 보면 지난 1월 1만2000건에서 지난달 기준 2만8000건으로 불었다. 하루에 1000개에 가까운 라방이 진행되고, 그 이상의 상품이 팔리고 있는 셈이다. 라이브커머스는 라이브 스트리밍과 전자상거래의 합성어로, 온라인상에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상품을 사고 파는 것을 말한다.
이들 플랫폼에서 진행된 라방의 월 조회 수는 1월 31만 건에서 지난달 60만 건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월 거래액은 같은 기간 390억원에서 750억원까지 늘었다. 라방바 데이터랩을 운영하는 씨브이쓰리의 김세훈 매니저는 “조회 수로 단순 계산해보면 상반기 기준 하루에 약 1800만 명이 라방을 시청한 셈”이라며 “이제 라방은 온라인 커머스 시장의 대세”라고 했다.
라이브커머스는 판매자가 플랫폼을 통해 동영상을 송출하고, 주문도 직접 받기 때문에 부가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다. 많은 인력과 제품 구성이 있어야만 방송이 가능한 TV 홈쇼핑보다 문턱이 훨씬 낮다. 이승엽 부경대 교수의 조사 결과(7월 18~24일 방송 기준) 네이버 쇼핑라이브 판매자의 84.6%, 그립 판매자의 99.5%가 소기업 또는 개인사업자였다. TV홈쇼핑 3사 평균(18.1%)보다 소기업·개인 비율이 높다.
라방 딱 3번에 매출 500% 증가
라이브커머스가 TV 홈쇼핑에 진입하지 못하는 지역 소상공인들의 판로를 뚫어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라이브커머스 판매자의 비수도권 비율은 TV 홈쇼핑보다 최대 3.7배 더 높았다. 대도시가 아닌 중소도시?군 소재 기업의 비율도 홈쇼핑의 2배나 됐다. 이 교수는 “라이브커머스가 지역 골목상권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수현 경상대 교수에 따르면 지난 5~6월 지역 소상공인들을 위한 라방 마케팅을 진행한 결과 단 3회의 방송만으로 매출은 최대 547% 증가했다. 부 교수는 “성공적인 라이브커머스는 사장님이 직접 출연한 경우가 많았는데 제품에 대한 지식과 열정, 스토리텔링 등이 소비자에게 신뢰를 준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매출이 전혀 없던 쇼핑몰이 137만원의 매출을 거두기도 했다. 최보름 서울시립대 교수는 “오프라인 소상공인들이 온라인 전환을 하면 첫 매출을 올리는 데 시간이 걸리는데, 라이브커머스를 활용하면 홍보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AI 셀럽도 출연
고속 성장 중인 시장인만큼 라방 플랫폼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현재 업계 1위 플랫폼은 거래액 기준 62%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네이버 쇼핑라이브다.TV 방송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홈쇼핑 회사들도 앞다퉈 라이브커머스에 나서고 있다. 현대홈쇼핑의 H몰은 거래액 기준 2위(점유율 13%) 라방 업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 쇼핑이 원톱인 가운데 홈쇼핑 업체들도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라이브커머스에 인공지능(AI)와 NFT(대체불가능토큰) 등을 접목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라방 전문 플랫폼 그립은 지난달 30일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여에스더 박사를 닮은 AI 휴먼과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했다. 안현정 그립 부대표는 “AI 출연과 같이 새로운 시도를 적극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홈쇼핑은 인기 캐릭터 ‘벨리곰’의 NFT 약 1만 개 발행하고 NFT를 소유한 고객들에게 라이브커머스 할인 쿠폰을 지급한다.
다만 아직 일부 소비자들은 라이브커머스의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라방에 대한 소비자 불만 1위는 ‘잦은 방송 끊김’(51.4%)이었다. 이어 ‘객관적 자료 없이 절대적 표현(최고 최대 제일 등) 사용’(45.0%), ‘상품 성능과 효능 과장’(41.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고은이/이시은/김종우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