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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심심한 사과' 논란, '쓰는 능력'을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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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인터넷상에서 ‘심심한 사과’를 놓고 새삼 공방이 벌어졌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올린 사과문 한 줄이 발단이 됐다. ‘…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 이를 두고 “난 하나도 안 심심해”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무슨 심심한 사과?” 같은 댓글이 달리면서 누리꾼 사이에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순우리말 ‘심심하다’(지루하고 재미없다)만 알고 한자어 ‘심심(甚深)하다’(마음의 표현이 깊고 간절하다)는 몰라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문해력은 ‘읽는 능력’ 외에 ‘쓰는 능력’ 포함
이를 두고 ‘새삼’이라고 한 것은 이런 논란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로 문해력(文解力)이란 관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우리나라가 ‘세계적 발명품’인 한글 덕분에 문자 해독률은 높아도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문해력’이란 말 자체도 알아듣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지금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 웹사전)에는 표제어로 올라 있지만 초판(1999년) 때만 해도 이런 말은 없었다. 우리 입에 오르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문해력(literacy)은 한마디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받아들인다. 사전에서도 그렇게 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문해력이 자칫 ‘읽는 능력’이 다인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문해력을 얘기할 때 대개 독해 수준을 따질 뿐 ‘쓰는 능력’은 간과한다.

문해(文解), 즉 ‘글을 풀어내고 깨닫는다’는 것은 읽고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잘 쓰고 다듬는 것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커뮤니케이션 흐름으로 보면, 메시지 작성과 수신이 잘 어우러져 일치하는 상태를 말한다. 발화자는 전하고자 하는 의미에 딱 들어맞게 메시지를 구성하고, 수신자는 이를 100% 해석해 온전하게 내용을 받아들인다. 이럴 때 ‘커뮤니케이션 성공’이라고 한다. 반대로 어느 한쪽이라도 문해력이 뒤져 오류가 생기면 ‘실패’를 초래한다. 그런데 우리는 문해력을 말하면서 ‘쓰는 능력(메시지 구성)’보다 주로 ‘읽는 능력(독해)’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동안 불거진 문해력 논란을 살펴보면 대개 그런 범주에 속한다.
공공언어 영역에선 쉬운 말 우선해 써야
지난해 어느 고등학교 수업시간. 교사가 영화 ‘기생충’의 가제(假題)를 설명하면서 ‘가제’의 뜻을 물어보자 “랍스터(가재) 아닌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는 현실은 그 일단에 불과하다. 역마살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주인공을 설명할 땐 “역마살은 어느 부위인가요?”라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설마 삼겹살과 역마살의 ‘살’을 같은 말로 본다는 것인가?

2020년 언론에서 광복절 휴일을 ‘사흘 연휴’라고 보도하자,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3일 쉬는데 왜 사흘이라고 하냐”는 반응이 나온 것도 같은 종류다. 고유어 ‘사흘’을 ‘4흘→4일’로 착각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인터넷을 달군 ‘금일 공방’도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한 대학에서 과제 제출일이 ‘금일까지’였는데 이를 금요일로 이해한 학생이 시한에 맞추지 못했다는 ‘웃픈’ 일화다. 금일(今日)은 순우리말로 ‘오늘’이다.

모두 어휘력의 빈곤을 드러내는 사례다. 하지만 어휘력 측면만 봐서는 문해력의 절반만 파악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애초 ‘가제’라고 하지 않고 ‘임시 제목’이라고 했으면 오해의 소지는 없었을 것이다. ‘금일’ 대신 ‘오늘’이란 일상의 말을 썼다면 의사소통도 매끄럽고 글도 더 편해지지 않았을까? 마찬가지로 ‘심심한 사과’도 입말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든 표현이다. ‘깊은 사과’가 더 좋은 어휘 선택이다.

읽는 능력과 함께 메시지를 만드는 능력은 문해력을 구성하는 양대 요소다. ‘읽기 쉽고, 알기 쉽게’라는 글쓰기 일반 원칙은 여기서 접점을 찾는다. 그렇다고 ‘심심한 사과’를 버릴 것까지는 없다. 한자어든 문어체든 다 우리말을 풍성하게 해주는 어휘군이다. 다만 공공성, 대중성이 강한 분야에서는 쉬운 말을 우선으로 쓴다는 원칙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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