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금융권 협약체결이나 전산 시스템 구축 등의 준비절차를 거쳐 10월부터 새출발기금 신청을 받는다고 28일 밝혔다. 새출발기금은 정부가 3조6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총 30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일종의 배드뱅크다. 연체가 90일 이상인 부실차주는 순부채(부채-재산가액)의 0~90%를 감면받을 수 있다.
○“지원 대상 30만~40만명”
부실우려 차주한테는 금리 감면과 장기 분할상환 등의 혜택이 부여된다. 연체가 30일 미만일 경우 연 9%의 채무조정 금리가 제공된다. 연체 30~90일 차주에겐 이보다 낮은 이자율이 적용되는데, 상환기간을 짧게 설정할 수록 금리가 더 저렴해지는 구조다. 금융위 관계자는 “예를 들어 상환기간이 3년 이하면 연 3%대 후반을, 5년 이상이면 연 4%대 후반 금리를 적용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새출발기금 협약에 가입한 6500여개 금융사가 보유한 모든 종류의 대출(담보·보증·신용 무관)에 대해 채무조정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주택구입 등 목적의 대출 같은 코로나와 무관한 채무거나 할인어음, 무역금융, 특수목적법인(SPC) 대출, 사적채무 등은 제외된다. 정부는 채무조정 횟수를 1회로 제한하고, 조정한도도 총 15억원(담보 10억원, 무담보 5억원)으로 설정했다. 수십억원의 빚을 진 기업까지 지원하는 게 정책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수용해 한도를 반으로 줄였다.
권대영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자영업 가구의 평균 부채보유액이 1억2000만원인 점을 고려할 때 대부분의 자영업 차주가 새출발기금 대상이 될 전망”이라며 “대략 30만~40만명이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회복위원회가 기존에 채무조정 제도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새출발기금을 새로 조성하는 이유는 개인이 아닌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맞춤형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개인의 신용대출 위주인 신복위는 담보 및 보증부 대출 비중이 높은 소기업 법인을 지원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미 발생한 부실채무뿐 아니라 앞으로 부실 가능성이 높은 차주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새출발기금의 특징이다.
○연체 30일 미만, 9% 조정금리 적용
28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개인사업자와 법인 소상공인이 새출발기금 대상자다. 코로나 피해 사실을 입증하려면 재난지원금·손실보상금을 받았거나 금융사로부터 대출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를 이용했어야 한다. 팬데믹이 터진 2020년 4월 이후 폐업을 해버린 차주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부동산 임대업이나 사행성 오락기구 제조업, 법무·회계·세무 같은 전문직종 사업자는 제외된다.이 가운데 1개 이상 대출에서 3개월 이상 장기연체가 발생했다면 부실차주로 분류된다. 부실차주가 보증·신용대출(담보대출 제외)에 대해 채무조정을 신청할 경우 최대 90%까지 원금 감면을 받을 수 있다. 단 총부채가 아니라 순부채에 대해 빚 탕감이 이뤄진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재산이 총부채보다 많을 경우 원금 감면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소득 대비 순부채 비중이나 경제활동 가능 기간, 상환 기간 등을 고려해 감면율이 결정된다.
부실차주가 담보채무에 대해 조정을 신청하거나 부실우려 차주의 경우엔 원금 감면은 받을 수 없다. 대신 금리 할인과 장기 분할상환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부실우려 차주란 △폐업자 및 6개월 이상 휴업자 △만기연장·상환유예 이용 차주 중 추가 만기연장이 어려운 차주 △세금 체납으로 신용정보관리대상에 등재된 차주 △신용평점 하위차주 또는 고의성 없이 상당기간 연체가 발생한 차주 등을 일컫는다.
연체가 30일 미만인 부실우려 차주한텐 연 9%의 채무조정 금리가 적용된다. 연 9%를 초과하는 대출 보유분에 대해 이자율을 연 9%로 깎아준다는 것이다. 연체일수가 30~90인 경우 적용되는 금리 수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금융위는 은행권의 대출금리와 새출발기금의 조달금리 등을 반영해 추후 결정할 예정이다. 다만 상환기간이 짧을 수록 낮은 조정금리를 제공해, 차주가 가급적 대출을 빠르게 갚게끔 유도할 계획이다. 부실우려 차주 등에겐 최대 3년의 거치기간과 최대 20년의 장기 분할상환도 주어진다.
○채무조정 정보, 2년간 등록
그동안 새출발기금을 둘러싸고 도덕적 해이 우려가 많이 제기됐다.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은닉재산이 추구 발견될 경우 채무조정을 무효로 처리하기로 했다. 원금조정을 받을 경우 2년간 채무조정 이용 정보를 전 금융권에 공유하는 등의 신용 패널티도 주어진다. 이 기간에 신규 대출이나 신용카드 발급 등이 제한될 전망이다. 고의적으로 대출을 늘린 후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실행한지 6개월이 지나지 않은 부실우려 차주의 신규대출은 채무조정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향후 1년간 신청을 접수하되, 코로나 재확산 여부와 자영업자의 잠재부실 추이 등을 감안해 최대 3년간 새출발기금을 운영한다는 게 금융위의 방침이다. 이 기간에 단 한차례만 채무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다만 부실우려 차주로 신청을 했다가 상황이 악화돼 부실차주로 재신청하는 것은 가능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부가 20여년간 축적한 노하우를 발휘해 고의로 연체하는 경우 등을 가려내겠다”고 밝혔다.
새출발기금은 오는 10월부터 온라인 플랫폼(새출발기금.kr)이나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무소 등 오프라인 창구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새출발기금.kr에 접속해 사업자등록번호 등 차주정보만 입력하면 지원대상 해당 여부를 수비게 확인할 수 있다. 신청시 약 2주일 내 채무조정안이 마련되고, 채권매입 등의 절차를 거쳐 2개월 안에 채무조정 약정이 체결될 전망이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