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아트페어’를 주최하는 프리즈가 지난해 5월 한국 진출을 선언하자 국내 화랑가가 크게 술렁였다. “해외 자본이 국내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다. 미술시장은 철저하게 승자 독식의 논리로 돌아간다. 외국 갤러리들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들고 오면 토종 화랑에 집중했던 국내 컬렉터들의 시선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국내 미술 거래시장이 고사할 수 있다는 걱정까지 나왔다.
프리즈 서울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개막을 1주일 앞둔 지금은 기우였다는 반응이 대세다. ‘프리즈 효과’로 세계 미술계의 이목이 한국으로 쏠리면서 국내 미술시장의 파이가 커졌기 때문이다. 토종 화랑들은 해외 갤러리들에 기죽지 않고 ‘단군 이래 최대 미술장터’라는 아트페어 위크에서 실속을 챙기고 있다.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국내 화랑들의 실력이 해외 유수의 갤러리 못지않은 수준까지 성장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알게 모르게 한국 미술계의 기획력과 네트워크가 급성장한 덕분이다.
KIAF서 벌어지는 ‘별들의 전쟁’
다음달 2일 개막하는 한국 최대 아트페어 KIAF는 프리즈의 위세에도 굴하지 않고 늠름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프리즈 서울에 나오는 쟁쟁한 해외 갤러리들에 밀리지 않기 위해 제대로 칼을 갈았다. 164개 갤러리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 A·B홀과 그랜드볼룸 등 1층 전체를 수놓는다. 기간은 9월 6일까지. 프리즈(5일)보다 하루 늦게 폐막한다.국내 미술시장을 선도하는 한국의 대형 갤러리들은 국가대표 작가들을 대거 선보이기로 했다. 국제갤러리는 김환기의 전면점화 대작 ‘Tranquility 5-IV-73 #310’을 간판으로 내세웠다. 가나아트는 한국 전위미술의 선구자 김구림의 대작 ‘Yin and Yang 9-S, 131’을, 갤러리현대는 아방가르드 선구자이자 최근 세계 미술계에서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이건용의 신작 ‘Bodyscape 76-3-2022’를 펼친다. 리안갤러리도 이건용의 신작 ‘Bodyscape 76-1-2022’를 내건다. 학고재갤러리는 백남준의 ‘로봇’을 준비했다.
전통 있는 중견 갤러리들이 가져오는 국내 작가 작품 라인업도 만만찮다. 국내 1세대 화랑인 동산방화랑은 자개를 캔버스에 붙여 ‘고목 회화’를 그리는 박희섭 작가를 소개한다. 이화익갤러리는 화려한 색채와 붓터치로 인기를 끌고 있는 김미영의 작품을, 웅갤러리는 최근 유럽에서 인기가 급상승 중인 장광범의 작품을 출품할 예정이다. 주영갤러리는 한국 채색화 거장 박생광의 작품을 가져온다.
KIAF에 나오는 해외 갤러리들의 면면도 프리즈에 밀리지 않는다. 탕 컨템퍼러리 아트가 갖고 올 아이웨이웨이 신작은 벌써부터 컬렉터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크리스티 로버츠 갤러리는 영국의 개념미술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을, 갤러리 콘티뉴아는 애니시 커푸어와 앤터니 곰리 등 세계 미술시장을 주름잡는 두 조각 거장의 작품을 선보인다. 왕케핑과 로랑 마틴 로(10 찬서리 레인 갤러리), 미노루 오노다(안네 모세리-말리오 갤러리) 등 아시아 거장들의 이름도 화려하다.
한국 작가들을 내세운 해외 갤러리들도 눈길을 끈다. 벨기에의 악셀 베르보르트 갤러리는 김수자 작가를, 프랑스의 바지우 갤러리는 이응노·박인경 부부와 아들인 이융세의 3인전을 통해 가족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한다. 메이크 룸은 한국의 젊은 작가 유귀미를 소개할 계획이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창의적인 큐레이션과 신선한 분위기, 정체성이 확고한 작품들로 프리즈에 뒤지지 않는 아트페어를 열 것”이라며 “매출 목표는 전년의 세 배인 2000억원”이라고 말했다.
편견 날리는 ‘젊은 위성페어’ 키아프 플러스
행사장 부스는 한정돼 있지만 참가를 원하는 갤러리는 많다. 이럴 때의 해법이 ‘위성 아트페어’(위성페어)다. 위성페어에 참여하는 갤러리의 규모나 이름값은 본행사에 비해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갤러리스트들의 열정, 패기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특색 있고 참신한 작품들이 나온다는 점 때문에 본행사보다 더 인기 있는 위성페어도 적잖다. 홍콩 아트 바젤의 ‘아트 센트럴’, 스위스 아트 바젤의 ‘스콥 바젤’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위성페어가 흥행하는 경우가 드물다. 위성페어를 ‘2류’로 보는 편견 때문이다.
올해 시작하는 KIAF PLUS(키아프 플러스)는 이 같은 편견을 날리기 위해 한국화랑협회가 야심차게 기획한 위성페어다. 코엑스에서 자동차로 9분 거리, 도보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대치동 학여울역 세텍(SETEC) 1, 2, 3전시실에서 열린다. 기간은 9월 1일부터 5일까지로, 개막과 폐막 모두 본행사보다 하루 이르다.
키아프 플러스는 KIAF와의 차별화를 위해 ‘참신함’을 내세웠다. 유망 신진 작가들이 참여하는 건 물론이고 미디어아트와 대체불가능토큰(NFT) 등 신기술을 가미한 작품이 대거 출품된다. 11개 국가 및 지역에서 참가하는 73개 갤러리가 부스를 차리는데, 이 가운데 대부분은 설립 5년 미만의 젊은 갤러리다.
엘리제레 갤러리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작가 타니아 말모레호를 소개한다. 실린더는 트리스탄 피곳을, 희수갤러리는 리오 지를 내세웠다. 갤러리 반디트라소의 조애리 작가와 갤러리 스탠의 샘바이펜 작가, 김현주갤러리의 테즈 킴 작가도 주목할 만하다. 일반 대중에게는 아직 이름이 덜 알려졌지만 ‘미술시장 유망주’로 평가받는 작가들이다.
NFT 분야의 하이라이트는 ‘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 클럽(BAYC)’ 전시다. 갤러리현대 계열의 NFT 플랫폼인 에트나가 주축이 돼 준비한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BAYC NFT의 저작권을 통해 파생된 ‘지루한 골프클럽 코리아 NFT’ 작품이 처음 공개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