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 이토 히로부미는 자신이 생의 종착역에 도착한 것을 몰랐고, 안중근은 이토의 얼굴을 몰랐다. 그날 아침, 안중근은 움직이는 표적을 따라 걸으며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의 불확실성 사이에서 조준선을 정렬하고 또 정렬했을 것이다. 집안의 장남이자 세 아이의 아빠이며 천주교 신앙인인 자신을 지우고 오직 표적만이 선명하도록. 설령 총구가 흔들리더라도 자신은 절대 흔들리지 않도록.
김훈 작가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 어떤 이야기는 끊임없이 새로 쓰여야 한다. 변하지 않는 역사적 사실과 오래도록 전해져야 할 신념 사이에서 우리는 그들을 먼지 쌓인 역사 책의 한두 문장 속에 묻어두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렸다는 것, 아니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쳤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아득한 역사 속의 인물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이야기 속의 누군가가.
소설가 허남훈(2021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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