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가 소득세를 인하하고 아동수당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한다. 고공행진하는 물가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부 장관은 10일 기자회견에서 과세표준 구간을 상향하는 내용의 인플레이션 정산법을 제정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소득세를 내지 않는 과세표준 구간의 연간 소득 하한선을 1만347유로(약 1384만원)에서 내년 1만632유로(약 1422만원), 2024년에는 1만932유로(약 1462만원)로 단계적으로 올린다. 최고 세율이 적용되는 과세표준 구간의 연간 소득 하한선도 상향한다. 현재의 5만8597유로(약 7839만원)에서 내년엔 6만1972유로(약 8290만원)로, 2024년에는 6만3515유로(약 8496만원)로 높인다.
매달 지급하는 아동수당도 늘릴 계획이다. 독일 정부는 첫째와 둘째 자녀에게 매달 주는 아동수당을 8유로씩 인상해 내년에는 각각 227유로를 지급할 방침이다. 재정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정부가 더 걷게 될 세금으로 마련한다.
이번 조치는 독일의 가파른 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달 독일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7.5% 상승했다. 같은 기간 에너지 가격은 35.7%, 식료품 가격은 14.8% 올랐다.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이 높아지면 개인이 정부에 내는 소득세가 줄어들어 가처분소득이 늘어난다.
경제 성장이 둔화됐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말 독일 연방통계청은 독일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전 분기 대비 0%로 정체됐다고 잠정 추정했다. 이는 0.1% 증가를 예측한 전문가들의 추정치를 밑돈다. 지난 1분기 증가율이 0.8%로 확정 집계된 데 비해 성장세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물가 급등, 공급망 애로 등으로 인한 타격이 컸다는 평가다. 올 하반기 글로벌 경기가 악화할 것이라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인하되는 소득세는 100억유로(약 13조4000억원)에 달한다. 1인당 평균 소득세 부담은 192유로 줄어든다. 린드너 장관은 “코로나19에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물가가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일상 생활비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번 조치로 4800만 명이 혜택을 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으로 인한 중산층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조세 수입 감소는 불가피해졌다. 로이터통신은 독일 정부의 조세 수입이 내년엔 올해에 비해 101억유로 줄고, 2024년엔 175억유로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독일 정치권 일각에서는 ‘부자 감세’라는 비판도 나온다. 연소득 2만유로(약 2686만원)인 경우 감세 혜택은 115유로(약 15만4000원)에 불과하지만 6만유로(약 8058만원) 이상 고소득자는 470유로(약 63만1200원)가량의 더 많은 혜택을 받게 된다는 주장이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