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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칩4' 참여에 중국이 또?…머리 아픈 삼성·SK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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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활한 공급망을 수호하고 내정간섭을 하지 말자."

지난 9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장관은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왕 장관은 "중국으로선 관련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국익에 기초해 판단할 거란 설명을 진지하게 경청했다"면서도 "독립자주를 견지하며 외부 장애에 영향을 받지 말 것"이라며 한·미 관계를 우회적으로 직격했습니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반도체 기술동맹 '칩4'에 참여하는 게 사실상 공식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을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은 것입니다.
한국, '칩4' 예비회의 참여 결정
'내정 간섭', '독립 자주'와 같은 단어가 등장하긴 했지만, 외교가에선 예상보다는 반발 수위가 낮았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한·중 외교장관회담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 관영매체들은 칩4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해왔습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회담 직전 "한국이 부득이 미국의 소그룹에 가입해야 한다면, 한국이 균형자 역할을 하기를 국제사회는 기대한다"는 사설을 싣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 측 설명을 경청했다"는 왕 장관의 발언이 오히려 수위가 낮았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것이죠.

정부는 지난 7일 칩4 예비회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미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달 말 혹은 다음달 초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이 회의는 향후 칩4의 세부 의제나 협력 수준 등이 구체적으로 조율될 전망입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칩4 참여 여부에 확답을 내놓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칩4 관련 움직임을 공식화한 것입니다.


물론 아직 대통령실은 정부가 향후 칩4에 본격적으로 참여할지 여부는 예비회의 결과에 달려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일 기자들과의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에서 칩4 참여 여부를 묻는 질문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관련 부처와 잘 살피고 논의해서 우리 국익을 잘 지켜내겠다"고 답했습니다.

칩4는 미국이 자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을 통해 중국을 배제시키기 위한 사실상의 기술 동맹 구상입니다. 반도체 설계에 강점이 있는 미국이 반도체 생산 능력을 갖춘 한국과 대만, 소재·부품·장비 역량을 갖춘 일본을 하나로 묶으려 하는 것이죠. 중국은 미국이 처음 '칩4' 구상을 내놨을 때부터 자신들을 겨냥한 것이라며 강력 반발해왔습니다. 중국은 마찬가지로 자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경제협력체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대해서는 이같이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IPEF가 대중(對中) 견제 협력체로 역할을 하기엔 구속력이 약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란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실제로 지난 5월 한국이 IPEF 참여를 발표했을 때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칩4에 대해 지금까지 중국이 보이는 태도는 달랐습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 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을 배제한 작은 그룹을 만드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칩4'를 할 거면 중국까지 포함해 '칩5'를 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中, 회담장 코앞서 실탄 사격훈련
칩4 관련 시계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한·중 외교장관회담이 열렸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외교 수장이 중국을 직접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회담은 베이징이 아닌 산둥성의 칭다오에서 열렸습니다. 코로나19 대확산 이후로 수도의 방역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이번에도 베이징에서 회담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베이징 외의 수많은 지역 중 칭다오가 선택된 데에 대해서 외교부는 중국 측의 배려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올해가 한·중 수교 30주년인데 산둥성이 한국 교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성(省)이고, 박 장관이 지난 2012년부터 5년 간 산둥대학교에서 명예교수로 재직했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시기와 장소 모두 매우 공교롭습니다. 중국 군당국은 지난 6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칭다오에서 불과 150㎞ 떨어진 롄윈강 앞바다에서 실탄 사격 훈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실탄 사격 훈련은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중국의 군사훈련의 일환입니다. 중국 군 당국은 이번 훈련 일정을 마침 중국 외교부가 박 장관의 방중 일정을 발표하는 날 발표했습니다. 한·중 외교장관회담에 이어 중·네팔 외교장관회담도 칭다오에서 열렸다고는 하지만 개운하지 않은 구석이 있는 것입니다.


중국의 오묘한 회담 위치 선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한국 외교장관이 마지막으로 중국을 찾은 것은 지난해 4월이었습니다. 정의용 당시 외교부 장관은 대만에서 불과 200㎞ 떨어진 항구 도시인 샤먼에서 왕 장관과 회담을 했는데요. 샤먼은 1958년 중국의 기습 포격을 받았던 일명 '대만의 연평도'라 불리는 진먼다오와 불과 4㎞ 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곳입니다. 이 때문에 양안 관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입니다.

심지어 당시 정 전 장관이 공항에서 회담이 열리던 호텔까지 가는 길에는 '일국양제 통일중국'이라는 거대한 선전 간판이 서있었습니다. 같은날 미국에서는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가 개최됐는데, 갓 출범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만 문제에 강경한 모습을 취하자 '약한 고리'인 한국의 외교수장을 일부러 대만 코앞으로 불렀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공교롭게도 1년만에 중국에서 열린 양국 외교장관회담이 회담 위치를 놓고 뒷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불똥 튈까

다시 칩4 얘기로 좀 넘어가보겠습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한국의 칩4 참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칩4에 참여하는 것이 사실상 확실시됐다 하더라도, 칩4의 범위가 어떻게 될지, 한국의 칩4 참여에 대해 중국이 보복 조치에 나설 것인지, 보복 조치에 나선다면 어느 정도 수위가 될 지에 대해 전혀 예측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경제 전반이 그렇지만, 반도체 업계의 대중 수출 의존도는 매우 큽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 1280억달러 가운데 대중국 수출액이 502억달러였습니다. 전체의 39%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30%가 넘습니다. 두 회사 모두 중국에 엄청난 생산 라인을 갖고 있는데, 칩4 참여로 인해 장기적으로 이 생산기지들을 타국으로 옮겨야 한다면 여기에는 막대한 비용이 불가피합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이미 지난 6월 중국 우시 공장의 생산시설 확장에만 약 2조4000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투자했습니다. 다롄의 낸드플래시 공장은 지잔해 말에 인텔로부터 인수한 곳인데, 여기에도 향후 수 년간은 장비를 투입해야 합니다.


미국은 칩4에 대한 포석의 일환으로 지난달 29일 '반도체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은 기업들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립할 경우 390억달러를 지원하고 25%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의 방안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업들 입장에서 대규모 반도체 생산라인을 미국으로 옮기기엔 경제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칩4 참여에 대해 중국이 경제보복 조치에 나설지 여부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습니다. 보복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하는 측에서는 "중국 역시 한국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직접 보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세계 반도체 D램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삼분하고 있는데, 중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미국 기업인 마이크론이 중국을 위해 공급량을 늘릴 가능성은 제로이기 때문입니다.

보복 조치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측에서는 "반도체 업계를 직접 겨냥하진 않더라도 다른 업종에 보복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지난 8일 칩4 예비회의 참여 소식이 전해지자 주식시장에서 불똥은 소비재 업종에 튀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이 전 거래일 대비 2.71% 떨어졌고, 전날 횡보세를 보였던 LG생활건강과 코스맥스도 다음날 각각 2.37%, 2.89% 떨어졌습니다.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태풍 속에서 칩4는 '태풍의 핵'이 되는 양상입니다.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은 참여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고, 최대 교역국인 중국은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 당시를 떠올리게끔 하며 불참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제 관건은 외교 당국이 이 고차방정식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달려있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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