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시대였다. 희망도 꿈도 없는 길고 긴 암흑의 터널이었다. 절망만이 가득하던 그 시대에 내가 택한 것이 마라톤이었다. 한시라도 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은 1983년 71세의 나이에 펴낸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다. 그 자서전인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휴머니스트·사진)이 39년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나왔다. 올해는 손기정 탄생 110주년, 서거 20주기를 맞은 해다. 출간일인 8월 9일은 그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날이기도 하다.
손기정의 마라톤 실력은 독보적이었다. 1935년 올림픽 마라톤 예선을 겸한 메이지신궁경기대회에서 2시26분42초로 공식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이듬해 열린 베를린 올림픽에선 2시간29분19초2라는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벅찬 감격도 잠시 시상식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비극적이었다. 일장기와 함께 기미가요가 울려 퍼졌다.
그는 “나는 그때까지 내 우승의 표지로 일장기가 오르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했다. 해외에 나와 대회를 치른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마라톤 우승은 나의 슬픔, 우리 민족의 슬픔을 뼈저리도록 되새겨주었다. 나라가 없는 놈에게는 우승의 영광도 가당치 않은 허사일 뿐이었다.”
증보판은 초판에 없던 사진 100여 장을 새로 실었다. 그의 외손자인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의 회고를 20쪽가량 덧붙였다. 이 사무총장은 “서울 올림픽 개막까지 1년도 더 남은 어느 날, 할아버지는 나에게 이제부터 새벽에 같이 달리기를 하자고 하셨다”며 “올림픽 개막식의 성화 봉송 주자가 될 것을 예상하고, 당당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한국인 손기정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고 했다. 손기정기념관은 10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특별 전시회를 연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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