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8월 07일 16:4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투자 시장을 시계추로 비유한다면 기계적인 움직임보다는 심리적인 반응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캐피털 회장은 ‘팬뮤어하우스 대담(Conversation at Panmure House)’이라는 제목으로 투자자들에게 전달한 메모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대담은 사회자가 막스 회장에게 그간 작성한 메모와 저서 등에 대해 질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투자 시장의 지나친 출렁임은 시장 참여자들의 과도한 심리적 반응에서 비롯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투자 시장을 시계추에 비유해 설명했다. 사이클이 반복적으로 오르내리는 것처럼 시계추도 좌우로 끊임없이 흔들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다. 그는 “시계추는 일종의 ‘무드 스윙’(Mood Swing)”이라며 “투자 시장이라는 시계추가 작동하는 방식은 '기계적'이 아닌 ‘심리적’ 혹은 ‘행동적’이다”고 말했다.
사이클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그는 ‘초과’와 ‘조정’의 반복으로 사이클이 형성된다고 봤다. 즉, 대중의 심리가 평균적인 수준을 유지하기보다 ‘낙관적’ 혹은 ‘비관적’으로 급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투자자들이 열정적으로 주식을 매수할 때 주가가 과도하하게 상승하기 시작한다”며 “반면 모두가 ‘주가가 너무 높다’고 판단하면 다시 하락장으로 빠르게 돌아선다"고 했다. 사이클을 형성하는 원인이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반복되는 사이클 속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변화를 민감하게 살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는 “미국 작가인 마크 트웨인의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지만, 일정한 운율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며 “1년 혹은 10년 단위의 사이클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미묘한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투자를 위해 갖춰야할 능력을 묻는 질문에는 “미래를 내다보는 이해력과 정성적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을 확보해야 뛰어난 투자자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액티브 투자 등 적극적인 투자의 가치에 대해서 강조했다. 그는 “인공지능을 통해 지수를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투자 방식 등은 일종의 무임승차로 볼 수 있다”며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투자자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겠지만 시장 최상위에 있는 능동적 투자자들을 이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1995년 막스 회장이 만든 오크트리캐피털은 1600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굴리는 초대형 자산운용사다. 그가 투자자들에게 전송하는 ‘메모’는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도 “메일함에 막스의 메일이 있으면 그것을 가장 먼저 읽는다”고 말할 정도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아래는 막스 회장이 오크트리 고객들을 대상으로 작성한 메모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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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최근에 패트릭 쇼타너스 에든버러 경영대학원 교수로부터 인지경제학 창립 심포지엄에 참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 심포지엄은 위대한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가 말년을 보낸 팬뮤어 하우스(Panmure House)에서 열렸으며 심포지엄의 주제는 쇼타너스 교수가 주창한 학문 분야인 ‘시장 심리 가설(MMH)’이었습니다. 저는 한 시간 동안 인터뷰 영상을 촬영했으며 이 영상을 5월 24일 심포지엄에서 상영한 후 생방송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고 난 후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녹화된 인터뷰의 대화록을 생성했습니다. 저는 독자의 이해를 돕고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본래의 의미에는 변화를 주지 않고) 문구를 편집했습니다. 내용이 대폭 추가된 경우에는 괄호로 표시했습니다.
완전하게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지만(실제로, 제가 강세장 각운(Bull Market Rhymes)에서 다룬 내용들도 일부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한곳에서 전부를 설명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므로 오크트리 고객들과 공유하는 것이 올바른 처사인 것 같습니다. 이 대담에서 뭔가 가치 있는 것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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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쇼타너스: 안녕하세요, 하워드. 먼저 이번 노변 대담을 통해 심포지엄에 참가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지금까지 회장님이 작성하신 메모들 그리고 투자자들과 공유하신 그 밖의 다양한 견해들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참가자들을 위해, 몇몇 질문들에 대해서는, 특히 인지적인 관점에서, 배경 설명을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MMH 회원들의 질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제임스 클루니입니다:
회장님은 글에서 시계추 개념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팟캐스트에서 국제 정세에 그 개념을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시계추라고 하면 일견 기계적인 모델로 보이는 것이 사실인데 중요한 사실로서 회장님은 심리학, 그 중에서도 특히 감정 기복을 뜻하는 무드 스윙에 이 개념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은 회장님이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대비는 가능하다(You Can’t Predict. You Can Prepare)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자연발생적인 ‘시장 심리’와도 잘 들어맞습니다. 그래서 제 질문은 과연 시계추가 어떠한 방식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기계적이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계추가 평균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계적인 작용은 아니므로 예측이 어렵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까요?
HM: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패트릭. 이 주제에 대해 토론할 수 있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알고 계시는 것처럼, 이는 제가 천착하는 주제이며 다른 누군가와 그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입니다. 시계추는 오늘 우리가 토론할 여러 가지 주제들을 대변하는 좋은 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것은 아이디어입니다. 그것은 개념입니다. 앞뒤로 흔들리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아이디어입니다. 무엇인가 진동을 하고 무엇인가 중앙점을 중심으로 등락을 거듭합니다. 이것이 전체적인 개념입니다.
절대로 기계적이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물리학에서 말하는 시계추에는 정해진 속성이 있으며 그로 인해 그 거동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하는 대상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알고 계시는 것처럼, 저는 2018년에 마지막으로 펴낸 책 『하워드 막스 투자와 마켓 사이클의 법칙』에서 시계추에 관한 내용을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저는 런던 소재 린셀 트레인(Lindsell Train)의 닉 트레인으로부터 쪽지를 하나 받았는데 “하워드, 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시계추가 아닙니다. 그 움직임은 규칙적이지 않습니다.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등락 속도에 차이가 있으며 정도에도 차이가 있습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닉, 점심이나 같이합시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 번에 런던을 방문했을 때 그를 마주보고 앉아 시계추의 정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정의에 따르면 시계추는 기계적이므로 예측이 가능하고 물리학 법칙에 의해 좌우됩니다. 또 다른 정의에 따르면 시계추는 스윙입니다.
패트릭, 앞서 제게 질문할 때 ‘무드 스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셨는데 무드 스윙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편이 지금 이 질문의 목적상 훨씬 유용하리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오늘 오전에 토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개념은 과학이 아니므로 일관적이지 않으며 반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주된 전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S: 또 다른 회원인 러셀 내피어 역시 기계적 측면에 관한 연관된 질문을 던졌습니다. 서로가 거북한 동반자로서 신고전학파나 신케인스학파 경제학과도 연대를 맺고 있는, 기계적 경제학이라고도 불리는, 주류 경제학은 어떤 면에서는 시장을 중앙에서 조종하고 계획하며 운전할 수 있는 일종의 로봇으로 여기고 취급합니다. 그와는 달리, 당연히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주장하는 가설로서, 만약 시장을 인간의 집단적인 심리가 확장된 실체로 여기고 그에 수반되는 단점들까지도 인정한다는 가정하에 회장님이 지금까지 투자를 해오는 동안 시장 심리 연구에 가장 적확했던 경험담 두 건을 소개해줄 수 있으신지요?
HM: 마지막 문장에 언급된 두 건의 경험담에 관한 러셀의 질문은 제 답변을 지나치게 제한할 것입니다. 그래서 괜찮으시다면 범위를 더 넓히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대한 제 답변이 오늘 토론 전체에서 핵심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러셀이 말한 것을 논하면서 서두에서 경제를 기계적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저는 그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질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기계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물리학 법칙이나 자연 법칙에 의해 좌우되고 과학에 해당하며 매번 동일한 작용이 일어나고 반복이 가능할 뿐 아니라 연구와 일반화가 가능하다는 함의를 품게 됩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실제로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경제학자가 아니며 경제학이 ‘암울한 과학’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힘주어 상기시키곤 합니다. 저는 경제학이 과학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지만 만약 과학이라면 물리학처럼 A를 행했을 때 반드시 B를 얻지 못한다는 점에서 암울한 분야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에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C를 얻으며 때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대한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은 “전자에게 감정이 있다면 물리학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방에 들어가서 전등 스위치를 켜면 불이 들어옵니다. 반드시 불이 들어옵니다. 왜냐하면 스위치를 켤 때마다 전자가 스위치에서 전등으로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깜빡 잊고 이동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전등에서 스위치로 이동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파업에 돌입하거나 저임금을 불평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처럼 제가 생각하기에 경제학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과학은 전적으로 인과성과 예측가능성에 관한 학문이며 A가 일어나면 B가 틀림없이 일어납니다. 경제학에서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A가 일어나면 대체로 B가 일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래서는 과학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 이제 경제학이 아닌 투자에 이 개념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투자의 인적 측면, 혹은 이론과 실제의 차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강연의 제목은 위대한 철학자의 명언에서 따온 것입니다. 아실지 모르지만(여러분은 대부분 미국인이 아니므로 모를 수도 있습니다) 요기 베라의 명언입니다. 요기 베라는 1950년대에 프로야구팀 뉴욕 양키스의 위대한 포수였습니다. 현역 시절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야구 선수였지만 오늘날에는 그가 한 말들, 혹은 그가 하지 않은 말들로 더 유명합니다(그는 “내가 했다고 하는 말의 절반은 실은 내가 한 말이 아니다”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아무튼 그는 “이론적으로는 이론과 실제에 전혀 차이가 없지만 실제적으로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질문에 대한 제 답변의 핵심이 그의 명언에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추구하는 작업의 핵심입니다, 또한, 이것이 여러분이 추구하는 작업의 핵심인 동시에 이 심포지엄에 참가하신 동료 연구자 분들이 추구하는 작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 그리고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들은 만물이 작동할 것으로 예상되는 방식입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이며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교사가 “… 하지만 항상 그렇게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큰 틀이며 이론상의 모형입니다. 반드시 그런 것만은 절대로 아닙니다”라고 한마디 덧붙인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열쇠입니다. ‘기계적’이라는 단어로 경제를―혹은 시장을―표현하면 만물이 작동할 것으로 예상되는 방식을 규정하게 됩니다. 만물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은 ‘심리적’이거나 ‘행동적’입니다. 그 둘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투자 경력의 상당 부분을 제가 55년 전에 시카고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배운 지식과 졸업 후에 시장에서 경험한 현상 간의 접점을 찾는 데 할애했습니다.
저는 시카고대학교에서 효율적 시장 가설 등의 개념을 처음 접했습니다. 저는 무척 운이 좋았습니다. 그러한 개념들은 제가 생각하기에 1962년부터 1964년까지 대부분 시카고대학교에서 발전했습니다. 제가 입학한 것이 1967년이었으니 정의상 저는 그런 학문을 처음으로 배운 학번에 속했으며 제게 상당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시카고학파가 행동을 좌우해야 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행동에 참고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이 지식과 이후에 제가 목격한 현상 간의 접점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저는 철저하게 정성적이고 실용적인 와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철저하게 정량적이고 이론적인 시카고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시카고대학교의 교수들은 대부분 정성적이고 실용적인 학문 혹은 ‘현실 세계’를 하찮게 여겼습니다. 저는 증권가격연구센터(CRSP)의 공동 소장이었던 제임스 로리가 개설한 투자 과목을 수강했습니다. 그의 강좌는 두세 주에 한 번씩 현업 투자자를 초빙해서 경험담을 듣곤 했는데 그런 행동은 시카고대학교에서는 이단시됐던 까닭에 학내에서 ‘로리의 스토리’라는 비아냥을 사고 있었습니다. 기말고사는 딱 한 문제였습니다. “여러분은 시카고대학교에서 이론을 배웠다. 그 지식을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저는 이 물음이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말에 저는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지, 알파?(What's It All About, Alpha?)라는 제목으로 메모를 작성했습니다. 여러분은 <알피(Alfie)>라는 제목의 영화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마이클 케인이 주연을 맡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오래 전의 일로 아마도 40~50년 전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가는 디온 워윅이 부른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지, 알피?’였습니다. 훌륭한 곡이었습니다. 저는 이 노래의 제목을 ‘알파’로 바꾸고 시카고학파의 이론, 그 중에서도 특히 효율적 시장 가설과 현실 세계와의 접점을 주제로 다룬 메모의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저는 이 메모에서 수많은 투자자들의 결집된 행동으로 인해 주가는 ‘적정’해지며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위험 조정 수익률만을 기대할 수 있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에 대한 제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또한, 저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시장이 작동할 것으로 예상되는 방식이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저는 그 메모의 결론부에서 만약 여러분이 효율적 시장 가설을 무시한다면 능동적 투자 결정이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리라는 점에서 크게 실망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이 가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투자자가 될 수 없을 것이며 능동적 성공을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진실은, 만약 존재한다면, 그 중간 어디쯤엔가 존재하며 그것이 제 믿음입니다.
PS: 러셀의 입장을 공평하게 변호하자면, 경제가 기계적이며 그것이 주류 경제학의 정의라는 배경 설명 부분은 [러셀의 질문이 아니라] 제가 추가한 내용입니다. 그 문제에 관한 한 러셀과 제 의견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론으로서의 기계적 경제학과 관련하여 회장님은 메모 투자자 심리 분석(On the Couch)에서 초기에 효율적 시장 유형의 자산에 직접 노출됐던 경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참석자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효율적 시장 가설은 합리적 기대 가설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효율적 시장 가설에 따르면 비합리성이 일말이라도 존재할 경우 희석되어 균형점에 도달하므로 시장은 합리적입니다[즉 집단이 범하는 실수는 개인이 범하는 실수보다 작아집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회장님은 시장에서 관찰할 수 있는, 앨런 그린스펀과 로버트 실러가 ‘비이성적 과열’이라고 명명했던 비합리적인 현실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개인에게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집단으로 행해질 경우 위태롭게 비합리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통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의 첫 번째 질문은 과연 우리가 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냐입니다. 예를 들어, 비합리성이라는 것이 단순한 의미론의 영역인지, 아니면 엄연히 실존할 뿐만 아니라 집단의 행동으로 인해 경제 체제를 실제로 위협할 수 있으며 필연적으로 희석되어 균형점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한 문제인지에 관한 의문입니다.
HM: 패트릭, 제가 보기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효율적 시장 가설에 대한 제 견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효율적 시장 가설에 따르면 현명하고 다수이며 컴퓨터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정보로 무장하고 의욕에 넘치면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동시에 A를 B로 기꺼이 대체할 의사가 있는 수많은 투자자들의 결집된 행동으로 인해 주가는 적정해지며 그러한 이유에서 공정한 위험 조정 수익률을 예견합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이 가설의 정의입니다.
하지만 효율적 시장에 요구되는 속성들을 나열할 때면 완전 경쟁 시장과 더불어 시장 참가자들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슬쩍 포함시킨다는 점에서 문제에 봉착합니다. 투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점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경제인’은 부를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이 모든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매번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무드가 달라집니다. 이러한 무드는 적정한 가격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따라서 모든 참가자의 결집된 행동으로 인해 특정한 시점의 가격이 그러한 참가자 집단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적정한 수준에 근접한다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효율적 시장 가설의 정의입니다. 가격이 집단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적정한 수준에 근접하므로 오류―이론에서는 ‘비효율’이라고 표현하지만 저는 단순히 ‘실수’라고 생각합니다―를 찾아서 시장의 수익률을 뛰어 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때로는 가격이 너무 높습니다. 때로는 가격이 너무 낮습니다. 하지만 가격은 그 대상물에 대한 투자자 전체의 집단적 지성을 반영하므로 그러한 실수를 포착해서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개인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능동적 투자가 일관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능동적 운용사가 제가 해석하는 효율적 시장 가설하에서 시장을 뛰어 넘는 수익률을 올리는 것은 모든 자산이 항상 적정한 가격에 도달하는 강형 효율적 시장 가설하에서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제 해석이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메모에서―아마도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지, 알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2000년에 400달러였던 주가가 2001년에는 2달러로 추락한 주식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 두 가격이 모두 ‘적정’했을 가능성이―제가 보기에는 거의 희박하지만―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주가가 단순하게 당시의 일치된 의견을 반영했을 뿐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 비즈니스는―‘이 비즈니스’라는 표현은 경멸 조로 들리므로 자제해야 합니다―비효율이 시장의 작용에 의해 차익거래를 통해 해소될 거라는 견해는, 제가 생각하기에 현실을 반영하는 중요한 핵심 요소 중 하나를 무시하고 있는데 집단 히스테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시장은―경제도 마찬가지지만 시장이 특히 그러합니다―집단 히스테리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는 ‘투자자 심리 분석(On the Couch)’에서 “현실 세계의 일들은 ‘아주 좋다’와 ‘별로 좋지 않다’를 반복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투자 세계에서는 인식이 ‘완벽’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라고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한 문장을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저는 사실이라고 믿습니다―여러분은 오류를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무엇도 완벽하지 않으며 그 무엇도 절망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시장은 모든 것을 완벽과 절망으로 이분하며 여기에 오류가 존재합니다.
제가 언급한 책 『하워드 막스 투자와 마켓 사이클의 법칙』(모두가 한 권씩 구입하리라는 희망에서 책 제목을 계속해서 거론할 생각입니다)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저는 사이클을 추종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사이클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대여섯 차례 중대한 사이클을 몸소 겪었습니다. 저는 그에 관해 생각해왔습니다. 사이클은 제가 하는 일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책을 3분의 2쯤 완성했을 무렵에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이클은 왜 존재할까요?
앞서 언급한 짐 로리 증권가격연구센터(CRSP) 소장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60년 전에 1928년부터 1962년까지 S&P 500 지수의 연 평균 수익률이 9.2%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로 상황이 호전되면서 지난 90년 동안 S&P 500 지수의 연 평균 수익률을 확인해 보면 10½%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매년 10½% 수익률을 일정하게 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어떤 때는 20% 상승하고 어떤 때는 20% 하락하는 이유가 뭘까요? 실제로―저는 메모에서 이 사실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수익률이 8%와 12% 사이를 기록했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평균 수익률이 10½%라고 한다면 10½%를 중심으로 수익률이 몰려 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앙에서 벗어나서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은 집단 히스테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물론 교수님께서 기계적이라고 표현했고 다른 많은 전문가들 역시 기계적이라고 표현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와 주류 경제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학은 항상 합리적이고 객관적이지만은 않은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론적으로는 투자자에 비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상태에 더 근접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아무튼 저는 사이클의 원인을 ‘초과와 조정’으로 설명합니다. 장기 추세 또는 ‘정규’ 분포가 존재합니다. S&P 500 지수의 장기 추세를 가정해 봅시다. 때때로 투자자들은 과도하게 흥분합니다. 투자자들은 과도하게 열성적으로 주식을 매수합니다. 주가가 상승합니다. 주가는 지속이 불가능한 시점까지 연 10½%를 초과하여 상승합니다. 그러다가 모두가 “아니야, 주가가 너무 높다고 생각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추세선을 향해 하락 조정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인간 심리의 본질을 감안할 때 당연히 주가는 추세선을 뚫고 초과하여 하방 조정을 계속합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아니야, 주가가 너무 낮아”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추세선을 향해 움직이다가 추세선을 뚫고 초과하여 상승합니다.
이처럼 초과와 조정이 사이클의 원인이라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초과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심리에서 나옵니다. 사람은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이었다가 일순간에 지나칠 정도로 비관적으로 돌변합니다. 지나칠 정도로 탐욕스러웠다가 일순간에 지나칠 정도로 공포에 휩싸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어수룩했다가 일순간에 지나칠 정도로 의심이 많아집니다. 아, 그리고 중요한 요인으로서 지나칠 정도로 위험을 감수하다가 일순간에 지나칠 정도로 위험을 회피합니다.
PS: 인지 분야에 관심이 많은 참석자들을 특히 고려해서 이 주제를 좀더 확장하자면, 회장님은 심리적 인과성이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저의 다음 질문은 기본적으로 수정 경제학의 일환으로 향후의 연구를 촉진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회장님은 9월 팟캐스트 방송에서 ‘투자자 심리 분석(On the Couch)’ 메모를 언급하면서 인과성과 더불어 그 복잡성을 지적하신 바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의견에 동의하며 연구 과정에서 그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앨런 그린스펀은 그 유명한 ‘비이성적 과열’ 연설에서 자산 시장과 경제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언급한 바 있는데 제가 여기서 한 구절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판단하기에는, 전자의 심리적 요소와 후자의 물리적 요소로 구성되는 이원성과 주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지과학에서 심리적 인과성은 상당한 논란성과 복잡성을 갖지만 그럼에도 인지과학은 이 문제를 진정으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처럼 회장님은 그러한 배경에서 소로스의 재귀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으며 회장님이 방금 전에, 그리고 메모에서도 이미 시사한 것처럼 가격과 심리를 거의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리먼 사태를 둘러싸고 실존에 근접할 정도로 본말이 전도되는 위태로운 상황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제 첫 번째 질문은, 우리가 또 다른 심리적 편향을 식별하거나 또 다른 퇴행을 경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판단에 동의한다는 전제하에, 회장님은 보다 중대한 통찰을 얻기 위해 특히 실물 경제와 금융 경제로 구성되는 두 영역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인지과학자들이 어떤 분야를 연구하기를 원하시느냐는 것입니다.
HM: 이러한 문제들의 핵심에 도달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심포지엄 참석자 여러분이 저보다 훨씬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척 많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여러분이 무드와 야성적 충동 그리고 비이성적 과열을 정확히 어떻게 정량화하는지는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섭니다. 패트릭, 『하워드 막스 투자와 마켓 사이클의 법칙』에서도 언급한 것으로 기억하지만 제가 늘 하는 말로, 만약 제가 매수를 고려하는 주식에 대해 딱 한 가지만 알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주가에 낙관론이 얼마나 반영되어 있느냐입니다.
여러분이 TV를 켜고 앵커가 전하는 금일 주식 시황을 듣고 있으면 주가는 펀더멘털의 결과물이며 주가 변동은 펀더멘털 변동의 결과물이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그런데 매번 TV에서는 “시장이 X로 인해 상승했다”라거나 “시장이 Y로 인해 하락했다”고 말합니다. 저는 늘 “나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는데 저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저런 사실을 알아내는 거지?”라고 묻곤 합니다. 저는 심지어는 상황이 벌어진 사후에도 시장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원인을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내는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펀더멘털이 전부라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자산의 가격은 펀더멘털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한 펀더멘털을 평가하는 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또한, 자산 가격의 변동은 펀더멘털의 변동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한 펀더멘털을 평가하는 방식의 변화에 달려 있습니다. 이처럼 사실과 태도로 이뤄집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태도의 변화를 포착할 수 있는 모든 연구는 중요성을 갖습니다.
그렇다면 야성적 충동의 정량화는 어떨까요? 저는 제 첫 번째 책 『투자에 대한 생각』에서 다소 익살이 가미된 부분에 ‘가난한 자의 시장 평가를 위한 길잡이’라는 코너를 삽입했습니다. 세로단 하나에 문항을 열거하고 또 다른 세로단에도 문항을 열거했는데 어느 쪽 문항이 시장의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말해 주는지를 비교해 보면 시장을 지배하는 심리가 낙관론인지 아니면 비관론인지 알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구체적인 문항들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거래가 완판되는가, 아니면 계속 팔리지 않고 남아 있는가? 헤지펀드 운용사 관계자가 TV에서 환영받는가? 칵테일 파티에서 누구 주변에 사람이 몰리는가? 언론에서 “우리는 달까지 간다”라고 말하는가, 아니면 “땅밑으로 추락한다”고 말하는가? 저는 이런 문항들을 정량화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이 문항들은 제가 사이클에서 현재 우리가 위치한 지점을 파악할 때 귀 기울여 듣는 중요한 사항들입니다. 또한, 저는 사이클에서 현재 우리가 위치한 지점이 다음에 나아갈 지점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대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저의 두 번째 책 『하워드 막스 투자와 마켓 사이클의 법칙』의 제목을 정할 때 제가 책을 쓰면서 생각했던 가제는 『사이클에 귀를 기울이다』였습니다. 이는 사이클에서 현재 우리가 위치한 지점으로부터 신호를 포착한다는 의미에서 ‘귀를 기울이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순종한다는 의미에서 ‘귀를 기울이는’ 것을 뜻합니다. 출판사 측에서는 제목에 마켓 사이클의 법칙을 숙달할 수 있다는 함의를 담으면 판매 부수를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실용적인 투자자로서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럼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러셀 내피어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으니 제 임무를 아직 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유형의 상황을 실제로 목격한 경험담을 두 가지 소개해달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을 먼저 받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소개하고자 하는 두 건의 경험담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7년 봄에 바닥을 향한 경주(The Race to the Bottom)라는 제목으로 메모를 작성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무렵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광풍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였으며 훗날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진 대화재를 일으킨 장작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2006년 가을에―2006년 11월이나 12월이었을 수도 있습니다―영국에서 차로 이동하던 중에 파이낸셜타임스를 읽고 있었는데(운전을 하면서 신문을 읽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뒷좌석에 타고 있었으므로 신문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기사 중에 영국 은행들은 역사적으로 소득의 3.5배에 해당하는 모기지 대출을 차주들에게 제공해왔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XYZ 은행이 소득의 4배까지 대출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하자 ABC 은행에서 “아니다, 우리는 5배까지 허용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신용 기준을 완화해서 대출을 늘리는 그런 식의 대출 경쟁은 바닥을 향한 경주로 보였습니다. 저는 시장이, 기꺼이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르는 사람에게 대출 기회나 주식 또는 채권 매수 기회가 돌아가는, 경매장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미술품 경매처럼 같은 돈을 지불하고 가장 적은 대가를 얻는 구조였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 가장 낮은 신용 기준과 취약한 대출을 기꺼이 감수하는 은행은 경매에서 승리하고 대출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바닥을 향한 경주였습니다. 저는 자본 공급자의 손에 지나치게 많은 돈이 풀리고 그들이 혈안이 되어 돈을 굴리려고 할 때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무드가 문제였습니다! 물론 그 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제 2007년 2월에서 2008년 10월로 시점을 이동해 보겠습니다. 리먼 브라더스가 2008년 9월 15일에 파산하자 시계추가 움직이면서 아무런 걱정도 없던 사람들이 공포에 질립니다. “위험한 자산일수록 수익률이 높으므로 위험을 감수하면 할수록 벌어들이는 돈도 늘어난다”는 논리로 위험을 벗처럼 여기던 사람들이 이제는 “위험 감수는 돈을 잃는 행동에 불과하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빠져 나가야겠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시계추가 움직이자 당연히 낙관론이 붕괴됐으며 S&P 500 지수가 폭락하고 채권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신용이 역대 최저 수준에 도달했던 날이었던 2008년 10월 10일을 전후하여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부정론의 한계(The Limits to Negativism)라는 제목의 메모를 작성했습니다. 저는 마진콜로 인해 청산될 위험에 처한 레버리지 펀드의 레버리지를 줄일 목적으로 약간의 자금을 조성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고객들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더 많은 자금을 모았습니다. 펀드의 부채를 자본 대비 4배에서 2배로 낮췄습니다. 마진콜이 일어날 수 있는 지점에 다시 근접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부채 비율을 2배에서 1배로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아니요, 이제 더 이상은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고객을 만났습니다. 저는 “꼭 하셔야 합니다. 이 투자는 선순위 담보대출이고 과거에 선순위 담보대출의 부도율은 거의 무시할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안전한 수단이며 연 26%의 레버리지 수익률을 올릴 잠재력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고객은―이 경험담이 장황하게 느껴진다면 여러분에게는 죄송하지만 그럼에도 흥미로운 실례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제게 “만약 부도가 발생하면 어쩌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 채권보다 후순위인 고수익 회사채의 과거 부도율은 연 1%입니다. 그러니 26%에서 시작해서 1% 부도율을 제하더라도 여전히 25%가 남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이 고객은 “만약 그보다 더 나쁘면 어쩌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전체 고수익 회사채 시장의 부도율은 연간 4%이므로 상계하면 여전히 22%가 남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고객은 “만약 그보다도 더 나쁘면 어쩌나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우리가 경험한 최악의 5년 부도율은 7½%였습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19%가 남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고객은 “만약 그보다도 더 나쁘면 어쩌나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과거에 가장 나빴던 해가 13%였습니다. 그런 해가 8년 동안 계속 반복된다고 해도 여전히 13%가 남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고객은 “만약 그보다도 더 나쁘면 어쩌나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혹시 주식이 있으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고객은 “네, 주식이 아주 많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하이일드 채권 부도율이 앞으로 매년 13%를 넘는다면 그런 환경에서 고객님의 주식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 미팅을 마치고 나서 사무실로 달려가서 부정론의 한계(The Limits to Negativism)라는 제목으로 메모를 작성했습니다. 저는 그 메모에 투자자는 아무 말이나 믿지 않는 회의론자가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썼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좋다”고 말하면서 과도한 낙관론을 경계하는 것을 회의론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관론이 과도한 상황에서라면 “사실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회의론자입니다. 제가 앞에서 언급한 투자자는 하방 한계를 뚫고 내려가지 않는 시나리오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투자자의 경우에는 부정론의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시장의 다른 참가자들, 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참가자들이 과도하게 부정적이고 과도하게 위험을 회피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순간, 천성적으로 보수적인 성격인 저와―부실채권 펀드를 운용하고 있으며 그 역시 천성적으로 보수적인 성격인―제 파트너 브루스 카쉬는 자산 가격에 과도한 비관론, 공포, 위험 회피가 반영됐다[즉 적정한 가격보다 낮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순간부터 미친 듯이 돈을 쓰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기계적 측면이 아니라 심리입니다. 때때로 물밀 듯이 밀려와서 초과를 일으키는 시장 사이클을 유도하는 집단 히스테리입니다.
PS: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무드를 정량화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씀하신 부분을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바로 그 점이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는 엑셀이나 매트랩 같은 분석툴을 이용하여 분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혹은, 예를 들어, 회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시장의 온도를 측정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가 지각한다면 계측이 가능합니다. 식당에서 분위기를 가늠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거의 정성적인 측면으로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이런 능력을 타고나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상이한 방법과 상이한 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무드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시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사람들은 시장 심리를 거론하면서 변동성지수나 풋/콜 비율 등의 수치를 참고하여 그러한 심리를 파악하려고 하지만 저는 회장님이 그런 수치를 시장 무드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수치는 시장 무드가 아닙니다.
HM: 그런 수치는 징후나 증상에 해당하며 모두가 같은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A와 B는 상승하는데 C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A와 C는 상승하는데 B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신뢰할 만한 지표라고 볼 수 없음이 분명하며 기계적 관점에서 다룰 수도 없습니다. 다만, 저는 지난 메모에서―2015년에 작성한 위험에 대해 다시 재고하다(Risk Revisited Again)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탁월한 투자자는 미래의 주가 이동을 좌우하는 확률분포의 형태를 보다 정확하게 감지하므로 기대수익률이 확률분포도상의 왼쪽 꼬리 부분에 도사린 잠재적인 부정적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여부를 보다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다고 썼습니다. 패트릭, 저는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거기에 측정이나 기계적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저는 코로나19로 인해 몇 달 동안 아들과 함께 집안에 격리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은 가족과 함께 우리 집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제 아들은 낙관론자입니다. (본인은 낙관론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현실론자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당연히 모든 낙관론자는 자신이 현실론자라고 생각하고 모든 비관론자는 자신이 현실론자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아들은 낙관적 경향이 있습니다. 아들은 기술 투자자이자 벤처투자자이며 벤처캐피털 펀드를 운용하고 뛰어난 수익률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분야에 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들이 저와의 대화에서 피력한 의견은 제가 2021년 1월에 가치 있는 어떤 것(Something of Value)이라는 제목의 메모에 반영했는데 이 메모는 제가 지난 30년 동안 작성한 메모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아들은,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정보와 이해가 너무나도 광범위하고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현재에 관한 즉각적으로 입수 가능한 정량적 정보”에 의존해서는 탁월한 수익률을 거둘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이는 효율적 시장 가설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현재에 관한 즉각적으로 입수 가능한 정량적 정보”를 똑같이 갖고 있다면 탁월한 투자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다른 그 무엇을 가져야만 합니다. 만약 제 아들의 판단이 옳다면 탁월한 투자의 원천이 되는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요? 두 가지 요인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적절한 단어인지는 모르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더 나은 이해력입니다. 남보다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보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그것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명심하십시오, 그가 하는 말은 현재에 관한 즉각적으로 입수 가능한 정량적 정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어의 정의상 미래에 관한 정보란 존재할 수 없지만 남보다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보는 사람들이 존재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탁월한 실적의 원천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은 정성적 정보를 처리하는 탁월한 능력입니다. 명심하십시오, 그가 무익하다고 말하는 정보는 현재에 관한 즉각적으로 입수 가능한 정량적 정보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정성적 정보는 어떨까요? 정성적 정보에는 무드가 포함되며 지금 우리는 시장 무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집단의 심리와 더불어 심리가 지나치게 위축되어 있으므로 매수에 유리한 기회라거나 심리가 지나치게 고조되어 있으므로 매도나 공매도에 유리한 기회라는 판단을 내리는 감이 남보다 뛰어날 수 있습니다. [무드에 추가하여, 정성적 정보에는 경영진의 역량, 기업의 효과적인 제품 개발 기술력, 건실한 회계 체계도 포함됩니다.]
탁월한 투자자라면 최소한 위의 두 가지 요인 중 어느 하나, 혹은 둘 다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탁월성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래를 내다보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시장 무드[그리고 다른 정성적 요인들]를 탁월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이 둘 다 “별로 많지 않다”라면 능동적 투자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실패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PS: 다음 질문은 방향을 다소 달리하겠습니다. 투자는 무수한 딜레마와 난제를 제시합니다. 구체적으로, ‘역사는 각운을 맞춘다’는 믿음처럼 현상이 거의 동일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은 ‘이번에는 다르다’는 믿음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습니다. 회장님은 이 논쟁에서 대체적으로 어느 편에 서시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HM: 마크 트웨인이 남긴 것으로 널리 알려진 경구 중에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각운을 맞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신봉합니다. 트웨인은 사건의 원인이 다르고 사건의 결과가 다르며 그 형태가 다르다는 점에서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되풀이되는 일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호황이 수년간 지속되면 사람들의 위험 회피 성향이 약해집니다. 위험 회피 성향이 약해지면 위험한 일들을 벌이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경제가 하향 국면으로 접어들면 그런 일들이 막대한 손실을 일으킵니다.
둘째: 사람들이 만족감을 느끼고 상황이 얼마 동안 순조롭게 흘러가면 레버리지 이용이 늘어납니다. 그러다가 궁극적으로 힘겨운 시기가 오면 생존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레버리지가 높아지고 결국 힘겨운 시기가 도래하면 붕괴하게 됩니다.
셋째: 단기 차입이 장기 차입보다 이자가 낮으므로 델타를 극대화할 목적으로 장기 프로젝트에 단기 차입을 이용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하지만 기일이 도래해서 단기 부채를 차환해야 하는 시점에 힘든 시기가 도래하고 시장이 폐쇄되면 차환이 불가능하므로 도산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시간을 두고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매번 똑같은 것은 아니며 때에 따라서는 원인도 다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런 상황이―대부분 심리와 관련하여―각운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ETF, 알고리즘 펀드, 인덱스 펀드, 선순위 담보대출, 고수익 회사채 등 구체적인 시장 역학, 자금 조달 형태, 증권의 형태는 계속해서 변합니다. 이러한 수단들은 혁신적입니다. 금융 문제에 대응하는 사람의 심리를 반영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적 성향 그 자체는 세월이 흘러도 각운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수님이 언급하신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을 제가 처음으로 접한 것은 1987년 10월 11일이었습니다. 그날 뉴욕타임스에 ‘이번 시장 사이클이 다르지 않은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는 사람들이 이번에는 다르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으며 제가 방금 언급한 각운이나 가치평가 규범 같은 역사적 규범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근거로 이 주장을 거론하는 세태를 지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애니스 월리스가 쓴 이 기사는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녀는 “알고 있는가?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현 상황은 궁극적으로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과 똑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라고 예측했습니다. [당시에 상황이 다르다는 주장은 과도하게 고평가된 증시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됐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기사는 다우산업지수가 하루 만에 22.6% 폭락한 ‘검은 월요일’로부터 불과 8일 전에 실렸습니다.]
월리스는 “세상이 실제로 변하는 기간은 전체의 약 20%이다”라고 한 존 템플턴 경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저는 지난 2년 동안 작성한 또 다른 메모에서 기술의 편재성과 급격한 혁신 속도를 감안할 때 세상이 실제로 변하는 기간은 전체의 20%를 넘는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러니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인생을 걸지는 마십시오. 하지만 변화, 그 중에서도 특히 시기를 예측하는 자신의 능력에 인생을 거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PS: 존 템플턴은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말은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이다”라는 명언도 남겼습니다.
HM: 맞습니다. 따라서 둘 사이의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언급한 심리적 혹은 행동적 현상들은―확증 편향을 포함해서 다양한 편향에도 적용됩니다―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연 단위로, 십년 단위로, 사이클 단위로 반드시 반복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변화 역시 존재하며 정보 처리의 변화나 기술 제품의 변화처럼 기계적 영역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PS: 메모 사람이 빠진 투자(Investing Without People)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회장님은 기본적으로 기계적 투자, 보다 구체적으로는 수동적 투자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한 구절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분석, 가격 발견, 자산 배분 작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한다면 아무런 생각 없는 거품 또는 붕괴와 마찬가지로 수동적 투자로 인해 시장 가격의 적정성이 폐기될 것입니다.” 회장님은 기계적 투자가 시가총액, 매도/매수 호가, 모멘텀 같은 시장의 내부적 요소만을 이용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실물 경제로부터 나오는 정보의 전달을 왜곡하거나 무시한다는 점에서 정보의 효율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그 결과로서 과학자의 통찰을 시작으로 발명가의 발명을 거쳐 기업가의 혁신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금융 시장이 그러한 대상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으로 종결되는 경제 시스템을 관통하는 발견의 사슬을 감안할 때 초단타매매, 추세 추종, 스마트 베타 그리고 회장님이 언급하신 수동적 투자를 당연히 포함하는 투자 전략의 확대로 인해 시장이 갈수록 기계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면 미스터 마켓과 실물 경제의 괴리가 더욱 심해질 위험성, 다시 말해서 사슬이 취약해지면서 끊어질 가능성이 존재하는지요?
HM: 패트릭, 저는―특히 지수 연동 투자 같은―수동적 투자를 일종의 히치하이커나 무임승차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동적 투자의 결함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 1천 명의 투자자가 능동적 투자를 통해 정보를 걸러 내고 기업의 미래를 예측하며 주가의 공정성을 고심한 결과물이 시장 가격입니다. 또한, 제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러한 가격은 모두가 기업과 미래의 가치를 평가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집단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최선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인덱스 펀드를 운용하는 투자자 10명이 등장하면서 단순하게 시장 가격에 주식을 매수합니다. 그러한 가격이 공정하거나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일 가능성이 높은데 굳이 펀더멘털 분석에 그 모든 노력과 비용을 기울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수동적 펀드 운용사는 기업의 펀더멘털이나 주가의 공정성을 자체적으로 파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들은 능동적 투자자의 말을 그대로 수용합니다.] 이것이 제가 그들을 ‘무임승차자’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10명이 1천 명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는 격입니다.
하지만 펀더멘털 분석을 수행하는―능동적 투자를 하는―투자자의 수가 1천 명에서 500명, 100명, 50명, 10명으로 감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제 1천 명이 10명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는 상황이 전개됩니다. 주가와 공정 가격 간의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며 무임승차가 과거처럼 간단하거나 위험이 배제되지 않습니다. 제가 사람이 빠진 투자(Investing Without People)에서 지적한 것처럼 능동적 투자는 딱히 이로울 것이 없으며 수동적 투자가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 아이러니입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능동적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만 그렇습니다.
교수님은 난제를 언급하셨습니다. 이것이 난제입니다. 즉 능동적 투자자가 줄어들면 주가와 가치 간의 격차가 벌어지는 정도가 확대됩니다. 이론상 저가 매수 기회와 고평가 주식을 판별하기가 쉬워지므로 능동적 투자의 수익률이 상승합니다. 따라서 이것이 아이러니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또 다른 사실로서, 이 심포지엄에 참가하신 모든 분들이 앞으로 10년 동안 증시에 투자하는 돈을, 예를 들어 인덱스 펀드나 ETF를 통해서, 전액 S&P 500 주식에만 투입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연히 S&P 500 주식의 주가는 아마도 적정 수준 이상으로 상승할 것이고 그 외의 다른 모든 주식은 하락할 것입니다. 펀더멘털 측면에서의 현실을 감안할 때 지수에 포함되지 않은 기업의 주가는 지수에 포함된 기업에 비해 확연하게 낮으므로 틀림없이 더 나은 수익률을 올리기 시작할 것이며 그 시점이 되면 능동적 투자자가 시장 수익률을 상회하게 되고 경계선에 놓인 일부 투자자는 수동적 투자를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재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재귀성이란 시장 참가자들의 행동이 성공에 이르는 공식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자리에서 그에 관해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PS: 발견의 사슬로 다시 돌아가서, 만약 이처럼 확대되는 기계화 경향이 혁신이 일어나는 중추에서 자본의 전달과 배분에 영향을 미친다면 분명히 사회에 피해를 입히게 됩니다. 논쟁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러한 위험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수동적 투자의 무임승차를 비판하는 동시에 능동적 투자가 추가로 부담하는 비용을 분담하게 해야 하는 걸까요?
HM: 물론 그런 조치를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산 가격을 비밀에 부치고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징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메모 사람이 빠진 투자(Investing Without People)는 세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섹션은 현 시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수동적 투자와 인덱스 투자에 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섹션은 현 시점에 가벼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알고리즘 및 시스템 투자에 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섹션은 아직까지는―투자에 있어서―실질적인 영향이 없는 AI와 머신러닝 투자에 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수동적 투자는 수익률에 있어서 능동적 투자를 상회하고 있으므로[그리고 현재 주식 투자자산의 상당 부분을 운용하는 데 이용되고 있으므로] 그에 관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르네상스 펀드 같은 시스템 및 알고리즘 펀드는 과거의 패턴으로부터 예외를 찾아내는 기술에 주로 기반을 두고 빼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으며 굉장히 높은 수익률을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으로 접어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제가 메모에서 제기한 물음 중에는 “컴퓨터가 5가지 사업안을 분석한 후 그 중 어떤 안이 다음 번 아마존이 될 것인지 판단할 수 있을까요?”와 “컴퓨터가 5명의 CEO와 마주앉아 그 중 누가 다음 번 스티브 잡스가 될 것인지 판단할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컴퓨터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사업안이나 CEO의 핵심을 완벽하게 데이터로 변환하여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컴퓨터가 그처럼 정성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을 최상위에 위치한 사람들보다 정확하게 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나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업안을 눈앞에 펼쳐 놓고 아마존을 가려내지 못합니다. 오직 소수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거기에 투자를 했습니다. 클라이너 퍼킨스(Kleiner Perkins)일 수도 있고 세쿼이아(Sequoia)일 수도 있으며 벤치마크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누구한테나 가능하지는 않지만 소수에게는 가능합니다―물론 그것이 운이었는지 실력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컴퓨터 역시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메모의 주된 결론은 컴퓨터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지만 최상위에 위치한 사람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최상위에 위치한 사람들에게는 능동적 투자의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제 어머니가 말씀하시던 것처럼 규칙을 증명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PS: 회장님, 고견을 들려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언젠가는 팬뮤어 하우스에 직접 모실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희망합니다. 제 질문지에는 아직 여쭤 보지 못한 질문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다른 기회에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HM: 아주 좋습니다, 패트릭. 좋은 질문들에 감사드리며 오늘 토론을 진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과 동료분들이 원했던 내용이었기를 희망합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