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피스와 코트를 매끈하게 차려입은 두 여성이 진지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인물들의 표정, 그들 사이로 보이는 비행기, 바닥에 놓인 가방 그리고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등이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장면은 동독의 사진가 아르노 피셔가 1968년 한 패션잡지를 위해 공항에서 찍은 사진이다. 작가는 패션 사진을 스튜디오가 아니라 현실의 공간에서 찍었다. 독특한 연출이 더해진 그의 사진들은 일반적 패션 사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관람자들은 모델들의 차림새 너머 또 다른 이야기를 찾게 된다.
피셔는 독일 사진계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독일의 2차대전 직후 상황, 분단 과정과 그 이후의 동독 그리고 통일의 현장을 생생히 목격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또한 독창적 패션 사진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작가의 렌즈는 극적인 사건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향했다. 피셔의 사진들은 빼어난 조형미를 갖춘 데다,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주변의 사물을 통해 개인은 물론 시대의 분위기를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서울 신문로2가 성곡미술관에서 오는 21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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