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자산업을 이끄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연이어 중국 부품사 제품 채택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산 품질이 과거에 비해 향상된 데다 막강한 가격경쟁력까지 확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정보기술(IT) 기기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면서 삼성전자와 애플은 수익성 방어를 위해 중국산을 적극적으로 가져다 쓸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부터 디스플레이 패널까지…중국산 채택
4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달 공개하는 폴더블(접히는) 스마트폰 갤럭시Z4 시리즈 배터리 공급사로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 중국 ATL을 선정했다.그동안 삼성전자는 폴더블폰 배터리 초도 물량을 삼성SDI에서 공급받아 왔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물류난에 따라 공급망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LG엔솔과 ATL 제품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특히 ATL 선정엔 가격경쟁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삼성전자와 ATL은 과거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 때 거래가 끊긴 적이 있다. 하지만 이후 삼성전자는 중저가 갤럭시A·M 시리즈에 ATL 배터리 공급을 재개했고 지난해 출시된 갤럭시S21 시리즈 제품 일부에도 ATL 배터리를 탑재했다. 수익성 확보를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의 중국 부품 사용은 디스플레이 패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최근 미국 IT 전문매체 '샘모바일'은 "내년 출시 예정인 갤럭시워치6와 차기 플래그십 갤럭시 스마트폰에 중국 BOE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이 탑재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최근 삼성전자는 갤럭시워치6용 OLED 패널 견적요청서(RFQ·Request For Quotation)를 중국 BOE와 CSOT, 삼성디스플레이 등에 보냈다. 견적요청서에는 납품가와 공급량이 포함됐다. 이달 10일 공개되는 갤워치5까지는 삼성디스플레이의 패널이 적용됐다.
삼성전자는 저가 모델에 이어 중급 이상의 스마트폰에도 중국 디스플레이 탑재 비중을 늘리고 있다. 갤럭시M 시리즈에 BOE와 CSOT의 OLED 패널을 시범 적용한 후 갤럭시A 시리즈에서도 두 회사와 손을 잡았다.
특히 BOE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모양새다. BOE는 지난해 하반기 갤럭시M52에 OLED를 공급하며 삼성전자 스마트폰 OLED 공급사로 처음 이름을 올렸다. 내년 출시 예정인 갤Z폴드5·플립5와 갤럭시S23 등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탑재할 OLED 패널도 BOE 제품 탑재가 유력하다.
BOE는 애플 아이폰14 기본 6.1인치 모델에 쓰일 패널도 지난달부터 시양산에 들어가 다음달부터 본격 양산한다. BOE가 애플에 납품하기로 한 제품은 아이폰13 기본형과 동일한 저온다결정실리콘(LTPS) 기반 6.1인치 OLED 패널. 정확한 공급량은 전해지지 않았지만 애플의 선택에 따라 장기적으로 삼성·LG디스플레이의 애플 물량이 BOE로 넘어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애플은 지금껏 BOE 패널을 구형 아이폰에 사용하는 리퍼용으로 활용해 왔다. 지난 2월에는 BOE가 무단으로 애플의 박막트랜지스터(TFT) 회로 배선 설계를 변경한 사실이 적발되면서 애플과의 패널 공급 계약이 파기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으나, BOE는 애플 본사로 담당자를 보내 해당 사건에 대해 적극 해명했다.
결과적으로 BOE는 저렴한 단가를 강점으로 애플 공략에 성공했다. BOE의 공급망 합류를 기점으로 애플은 아이폰11 시리즈부터 이어온 패널 공급선 다변화 전략을 더 강화할 방침이다. BOE가 합류하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애플로부터 추가적 공급 단가 인하 압박을 받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스마트폰 성장성 둔화에 수익성 '빨간불'...대안은 중국산
삼성전자와 애플이 자사 제품에 잇따라 중국산을 탑재하는 건 원가 경쟁력 확보 때문이다.시장조사업체들은 보고서를 내놓을 때마다 올해 IT 기기 수요 전망을 경쟁하듯 낮추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지난달 발표한 올해 스마트폰 시장 전망은 전년 대비 5.8% 감소로, 카운터포인트리서치가 지난 6월 예상한 3% 감소와 비교해 한 달 새 두 배가량 감소폭이 커졌다.
완제품 업체인 삼성전자와 애플로선 원가 절감이 절실한 상황이라 가격 경쟁력 유지를 위해 중국 업계에 눈을 돌린 것으로 풀이된다.
또 중국산 기술력이 과거와 달리 수준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삼성전자와 애플이 중국 부품 사용을 늘리는 배경으로 꼽힌다. 공급선을 다변화해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가져가겠다는 경영상 전략도 강해지는 추세로 읽힌다.
실제로 노태문 사장 취임 이후 수행된 원가절감 전략은 삼성전자의 수익성에 큰 도움이 됐다. 삼성전자 MX사업부는 2021년 매출 109조2500억원, 영업이익 13조6500억원으로 2014년 이후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전자 처한 상황 녹록지 않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완제품 업체의 중국산 부품 확대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일부 소비자들은 지난 3월 출시한 갤럭시A23과 중국 샤오미가 4월 출시한 레드미노트11프로를 비교하며 삼성전자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가격은 비슷하지만 갤럭시A23보다 레드미노트11프로에 삼성전자 부품이 더 많이 들어가서다.갤럭시A23은 BOE가 만든 액정표시장치(LCD)가 탑재된 반면 레드미노트11프로에는 단가가 더 비싼 삼성디스플레이의 아몰레드 디스플레이가 적용됐다. 또 레드미노트11프로 카메라에는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가 제작한 108MP 센서가 탑재됐지만 갤럭시A23의 카메라 센서는 중국 서니옵티컬(순우광학테크)이 제조한 50MP OIS(손떨림보정기능) 메인 카메라가 채택됐다.
일부 소비자들은 중국산 부품을 늘리는 게 브랜드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럼에도 프리미엄 제품에 중국 부품을 늘리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랐기 때문에 새로운 먹거리를 개발할 때까지 향후 몇 년간 이들 업체들의 원가 절감 전략이 더 두드러질 것"이라며 "최근에는 중국 업체들의 기술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국내 부품사들의 점유율이 갈수록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