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자보험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보험료가 낮아 부담은 적은데 상해·질병으로 인한 의료비, 휴대품 파손·도난, 손해배상 책임 등에 대비할 수 있어 해외여행 시 '필수품'으로 떠오른 결과다. 단
국내 보험사 해외 여행자보험의 경우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한 의료비 외 자가격리에 따른 숙박비, 식비, 항공권 변경 비용 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유의해야 할 요소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여행 일정 변경 및 해외 자가격리 가능성이 커진 만큼, 국내 보험사들의 보장범위 확대가 추진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4일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상위 5대 손보사의 올해 1~4월 중 새로 체결된 해외 여행자보험 계약 건수는 5만7298건(단체보험 제외)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1만9644건) 대비 191.7% 급증한 수치다. 특히 업계 1위 삼성화재의 지난 4월 해외 여행자보험 신계약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약 7배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해외 여행자보험 시장이 올여름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면서 보험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KB손해보험은 지난달 해외여행 중에 상해와 질병으로 현지 병원에서 치료받을 경우 발생하는 의료비 보장 금액을 기존 3000만원에서 최대 5000만원으로 확대했다. 입원 시 하루 3만원씩 180일 한도로 보장하는 해외 상해 입원 일당도 신설했다. 사망, 배상책임, 휴대품 도난·파손, 항공기 및 수하물 지연 비용, 식중독, 전염병, 여권 분실 후 재발급 비용, 중대사고 구조송환 비용 등도 보장한다. 여행 출발 전엔 언제든지 상품 철회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 코로나19 확진으로 급하게 여행을 취소해야 하는 경우에 대비토록 했다.
현대해상은 이달 초 다이렉트 해외 여행자보험 개정 작업을 거쳐 코로나19 확진 등 해외에서 의료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우리말 상담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탑재했다. 할인율도 오프라인 대비 25%에서 30%로 확대해 보험료 부담을 줄였다. 삼성화재도 올해부터 우리말 도움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행 중 건강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현지 의사와 상담이 이뤄지도록 유선 도움을 제공하고 현지 병원에 대한 안내·진료 예약, 여행 중 분실품 발생 시 추적·조치 사항에 대한 안내도 지원한다. 만약 코로나19 확진 등 요인으로 여행 일정에 변경이 생긴 경우라면 해외 현지에서 계약 연장을 요청할 수도 있다.
현재 국내 보험사가 보유 중인 해외 여행자보험은 코로나19 확진에 따른 치료비, 입원비를 주로 보장한다. 해외 의료비 특약은 여행 중 상해 및 질병으로 현지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았을 때 보상하는 것으로, 자기부담금 0원 설정 시 해외에서 낸 의료비 전액을 보상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해외 자가격리에 따른 숙박비, 식비, 항공권 변경 비용 등은 일절 보장하지 않는다. 코로나19 확진 시 자가격리 기간은 나라별로 차이가 있으나 통상 5~10일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여행자보험에 가입했다 하더라도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수백만원까지 비용 부담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보험사들의 해외 여행자보험 보장범위 확대가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미국 악사(AXA) 등 다수의 해외 보험사는 여행자보험 계약자의 여행 취소 시 돌려받지 못하는 여행 경비를 일정 한도까지 보장하는 '여행취소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이 보험은 일반 여행자보험 대비 보험료가 40~60%가량 높은 편이다. 그러나 여행 취소 시 여행 경비의 50~75%를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만큼 보장범위가 넓어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스페인에 본사를 둔 보험 상품 판매대행사 헤이몬도의 여행자보험은 코로나19 확진 시 자가격리에 따른 숙박비와 귀국 항공권 비용 전체를 보장하고 있다. 헤이몬도는 최근 한국인의 보험 상품 가입이 늘면서 손해율이 높아질 것이 우려되자 국내 판매를 중단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여행자보험 시장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을 위해 국내 보험사의 유연성 제고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현재 국내 보험사의 여행자보험 중 코로나19 확진에 따른 여행 취소, 중단, 기간 연장에 대응할 만한 보장은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보장범위가 미비한 실정"이라며 "코로나19 장기화로 여행 중 일정 변경을 요하는 변수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만큼, 시장 내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국내 보험사들의 보장범위 확대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