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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 대만행에 긴장 최고조 된 '이 해협'…292만명 지켜봤다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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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선택을 마주한 상황에서 2300만 대만 국민에 대한 미국의 연대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지난 2일 자정을 17분 남긴 저녁 11시 43분. 대만 수도 타이베이의 쑹산국제공항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탄 미 공군기 한 대가 착륙했습니다. 분홍색 정장을 입은 펠로시 의장은 비행기에서 내린 뒤 준비한 성명문을 읽고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려는 확고한 약속에 따라 대만에 왔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직격합니다. 펠로시 의장은 "시 주석이 집권을 강화하면서 인권과 법치에 대한 무시를 지속하고 있다"며 "대만과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계속된 위협을 방관해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어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염두에 둔듯 "중국은 일국양제 약속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고 덧붙였습니다.
中의 고강도 반발, 2시간 길어진 비행
펠로시 의장이 탄 미 공군기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7시간의 비행 끝에 타이베이에 도착했습니다. 통상 쿠알라룸푸르에서 타이베이까지 걸리는 비행 시간보다 2시간이 더 걸린 것인데요. 이 전용기는 남중국해를 가로지르는 짧은 직선 항로 대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넓게 우회하는 항로를 택했습니다. 중국이 사실상 전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상공의 항로를 의도적으로 피한 것입니다. 항공편 추적 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24에 따르면 해당 항공편은 292만명이 실시간으로 추적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7시간의 비행 시간 동안 미·중 양국 간 군사적 긴장감은 최고조로 올랐습니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군사적 대응까지 예고해왔습니다. 지난 2일부터 남중국해와 발해만(보하이해), 3일부터는 대만과 인접한 동중국해에서 실탄 사격을 포함한 군사훈련에 돌입했습니다. 특히 말레이시와 대만 사이 직선 항로 아래의 남중국해에는 항공모함 '산둥함'까지 떴습니다. 해당 전용기가 대만의 비행정보구역에 진입한 즉시 SU-35 전투기까지 대만해협으로 발진시켰습니다.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이 차이잉원 총통을 만나는 등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중국 군용기 27대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했습니다.


중국은 4일부터 오는 7일까지는 대만을 둘러싼 6개 해역과 공중에서 군사훈련도 진행합니다. 대만 섬을 완전히 포위한 상태로 전방위적인 군사훈련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민간 선박과 항공기가 해당 6개 해역과 공역에 진입하지 말라는 통보도 내립니다.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대만해협 일대를 관할하는 동부전구는 "이번 행동은 최근 대만 문제에서 미국의 부정적인 움직임이 중대하게 심화한 상황에 맞서서 엄중한 공포 조치를 취해서 대만 독립 세력의 독립 도모 행위에 엄중한 경고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남중국해에 머물던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을 포함해 4척 이상의 군함을 대만 동부 해역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일본 NHK방송에 따르면 해당 전용기의 경호를 위해 오키나와 가데나 미 공군기지에 머물던 미군 전투기 8대와 공중급유기 5대가 대만 쪽을 향했습니다. 대만을 사이에 두고 미·중 양국의 군사 전력이 밀집하며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간 것입니다.
차이잉원 이어 TSMC 회장도 만났다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찾은 것은 1997년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 이후 25년 만입니다. 25년만에 대만 땅을 밟은 미국의 최고위급 인사인 펠로시 의장은 만 하루도 채 안 되는 짧은 일정 동안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의 면담 및 오찬을 갖고 입법원(의회)과 인권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차이 총통과의 면담에 이어 중국 반체제 인사들과의 면담까지 가졌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차이 총통과의 면담에서는 중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오래된 우정이 자랑스럽다"면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대만에 대한 미국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말하며 미국과 대만의 우호 관계를 강조했습니다. 이어 "그것이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가져온 메시지"라며 "대만과 세계 다른 지역의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미국의 결의는 여전히 철통같다"고 강조합니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 강력 반발하고 있는데 대만과의 '우정'을 강조한 것이죠.

차이 총통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차이 총통은 펠로시 의장을 '친구'라 지칭하며 "대만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보여주며 대만을 방문해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민주대만이 침략받으면 모든 인도·태평양지역의 안보는 거대한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펠로시 의장과 차이 총통과의 면담 자리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의 류더인 회장도 동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미국 의회는 반도체 연구개발(R&D)에 총 520억달러(약 68조1700억원)를 투입하는 반도체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반도체법에는 미국에 반도체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는 기업에 총 390억달러를 지원하고 25%라는 파격적인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이 포함됐습니다. 핵심 반도체 업체들의 대중(對中) 생산 관련 투자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죠.


TSMC는 지난 2020년 5월 미국 애리조나주에 5㎚ 공정 반도체 공장 신설을 발표한 뒤 총 120억달러(약 15조7000억원)를 투입했습니다. 내년 말 완공 예정인 이 공장의 설비 확대와 관련한 논의도 오갔을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중국은 첨단 반도체 대부분을 현재 TSMC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면담에서는 칩4동맹에 대한 논의까지 오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칩4는 미국이 자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을 만들어 중국을 배제시키기 위해 반도체 생산 능력 상위 3개국과 결성하려는 사실상의 기술동맹을 말합니다. 반도체 설계에 강점이 있는 미국과 생산 능력을 갖춘 한국·대만, 소재·부품·장비 역량을 갖춘 일본을 하나로 묶는 것이죠.

칩4동맹 참여를 일찌감치 확정지은 대만, 일본과 달리 한국은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짓지 못한 상황입니다.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대중 수출 의존도 때문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 1280억달러 가운데 대중국 수출액이 502억달러였습니다. 전체의 39%에 달합니다. 한국이 홍콩을 통해서 우회 수출하는 규모를 포함하면 60%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30%가 넘습니다.

특히 삼성전자는 현재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공장과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입니다. 이 중 시안 공장은 삼성전자의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절반을 담당할 정도로 규모가 매우 큰 공장입니다. 코로나19 초창기에 이재용 부회장이 전세기 타고 가서 화제되기도 했죠. SK하이닉스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우시에 D램 메모리 공장, 충칭에는 패키징 공장, 다롄에는 인텔에서 인수한 낸드플래시 공장을 두고 있습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으로 인해 미·중이 반도체를 두고 정면 충돌할 가능성이 가시화되자 지난 3일 삼성전자 주가는 개장 초에 1.13%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외국인들의 매물이 일시적으로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크게 출렁인 세계 증시
대만해협에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로 올라가자 세계 증시도 휘청였습니다. 지난 2일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1.23% 떨어진 3만2396.17에 마감했습니다. S%P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도 전날 대비 각각 0.67%, 0.16% 떨어졌습니다.


아시아 증시에 가해진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닛케이225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42%, 상하이종합지수는 2.26%, 홍콩 항셍지수는 2.4%, 선전성분지수는 2.37%, 대만 가권지수는 1.56% 떨어졌습니다. 특히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양국 간 경쟁에 TSMC 주가도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TSMC 주가는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도착한 지난 2일 2.45% 급락했습니다. 또 다른 대만의 반도체 업체인 유나이티드 일렉트로닉스와 미디어텍의 주가도 각각 3%, 1.6% 떨어졌습니다.


환율도 출렁였습니다. 펠로시 의장이 탄 비행기가 대만을 향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외환시장에서 원달러환율이 크게 오른건데요. 닷새 만에 다시 1310원을 돌파했습니다.


원-달러 환율 상승엔 미중 갈등 장기화 우려로 달러화 가치 상승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이 확정되고 대만해협에 미중 양국의 전략자산들이 총출동하면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펠로시 의장이 탄 비행기가 대만을 향하기 시작한 지난 2일 오후부터 올랐습니다. 미중 대립이 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안전자산 선호를 자극하고,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를 위축하는 게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문제는 시장에 대한 충격이 펠로시 의장의 아시아 순방이 끝난다고 일단락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이번 펠로시 의장의 순방은 반도체 공급망 등을 둘러싼 본격적인 미·중 패권경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뿐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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