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스터리’라고 불러야 할까.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 정부(2009~2017) 시절 흑인들의 삶은 최악이었다. 그의 재임 시절 경제가 바닥으로 추락한 탓이다. 오바마 이전 60년 동안 3.4%를 기록한 미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오바마 8년 동안 1.47%로 뚝 떨어졌다. 일자리와 소득 감소의 피해는 흑인들이 다수를 차지한 저소득층에 집중됐다. 오바마가 ‘최고·최대’ 기록을 세운 것도 없지는 않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족 휴가 비용(8500만달러, 약 1100억원)을 가장 많이 쓴 것도 그중 하나다.
‘트럼프 패러독스’라고 해야 할까. ‘백인 우월주의자’ 소리를 들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2017~2021) 시절 흑인들의 삶은 최고로 향상됐다. 흑인 빈곤율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20% 밑으로 떨어졌고, 흑인 실업률도 1972년 이후 처음 6% 아래로 하락했다. 임금 수준도 저숙련·저학력 계층이 중·상류층보다 더 크게 오르면서 계층 간 소득격차가 줄어들었다. 트럼프 치하의 경제 성적이 기대 이상이었음은 집권 마지막 해 여론조사 결과로도 뒷받침된다. “4년 전보다 사는 게 나아졌다”는 응답률(56%)이 조지 W 부시(45%)와 오바마(44%)의 4년차 때 응답률을 압도했다.
흥미로운 것은 트럼프가 “흑인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주겠다”고 공언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오바마는 달랐다. 틈만 나면 약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겠다며 “우린 더 잘할 수 있다(We can do better)”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던 이유가 뭘까. 정책의 차이다. 오바마는 ‘모두를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복지 수혜 기준을 낮추고는 재원 조달을 위해 법인세와 소득세를 끌어올렸다. 환경 및 약자 보호를 내세워 산업 전반에 걸쳐 규제를 늘렸다. ‘역대 가장 좌파적인 정부’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국가 개입 강도를 높였다. 의욕을 잃은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자 일자리가 급감했고, 몇 푼의 복지에 기대는 빈곤층이 늘면서 구직을 단념한 경제활동인구가 5500만 명으로 급증했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경제생태계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한 배경이다. 그에 따라 내놓은 감세와 규제 완화가 기업 투자와 소비를 되살렸고, 저학력·저소득층의 삶을 가장 크게 개선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경제성장의 낙수효과를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꼼짝 못할 반증을 해주는 것이 두 정부의 극단적인 정책 차이와 그 결과다. 말이 아닌 정책의 결과로 자신들의 삶을 구원해준 트럼프에게 저학력·저소득층 지지가 높아진 것은 당연하다. 온갖 ‘밉상’ 행동 탓에 트럼프가 2020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낙선하기는 했지만, 4년 전보다 더 얻은 700만 표 가운데 상당수가 흑인과 히스패닉에게서 나왔다.
이런 사실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한국의 민주당 당권 도전에 나선 이재명 의원이 “저학력, 저소득층에 (보수여당인) 국민의힘 지지자가 많다”고 말한 것은 놀랄 일도, 문제 발언이라고 할 것도 없다. 정작 제대로 짚어야 할 발언은 그다음에 나왔다. “(저학력·저소득층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인데, 언론 환경 때문”이라는 대목 말이다. 두 가지 진단이 다 틀렸을뿐더러 심각한 왜곡과 악의를 담고 있어서다.
한국의 저학력·저소득층이 ‘서민과 약자 보호’를 강령으로 내세운 민주당이 아니라 보수정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게 안타깝다는 얘기라면, 실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실토일 뿐이다. 민주당 정부 5년 동안 노동약자들의 현실을 무시한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규제 결과 아파트 경비원과 식당·편의점·PC방 종업원 등 저소득층 일자리를 무더기로 날려버리고, 그들의 삶을 파괴한 사실을 그새 잊은 건가.
정작 안타까운 것은 국민의힘이 설움 많은 노동약자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 만한 정당인가 하는 점이다. 민주당 정권이 이들을 곤경으로 내몬 노동악법과 제도를 쏟아낼 때 장단을 맞춰준 방조자가 국민의힘이다. 표방하는 자유시장경제의 이념과 원칙을 걸핏하면 내팽개친 채 한 줌의 정치 기득권을 놓고 내분으로 지새며 지지자들을 질리게 하는 게 이 당의 진면목이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의 자유·보수 원칙에는 충실한 미국 공화당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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