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두세 가지 색을 칠했을 뿐인 마크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왜 사람들은 눈물이 나온다는 걸까.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길쭉하고 앙상한 인간 조각상은 왜 가격이 1000억원을 훌쩍 넘을까. 현대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현상이 그저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무식한 탓인가 싶어 관련 자료를 검색해봐도 반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책이나 평론은 지나치게 어렵고 현학적이고, SNS에 올라온 일반인들의 감상문은 내용 없이 “멋지다”는 감탄으로만 점철돼 있기 때문이다.
《인생, 예술》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현대미술 해설서다. ‘하퍼스 바자’와 ‘보그’에서 오랫동안 문화 저널리스트로 일하다 지금은 갤러리 디렉터로 뛰는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가 썼다. 저자는 “학술 서적들은 진입 장벽이 지나치게 높고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은 주관적인 감상평 위주라 보는 사람이 공감하기 쉽지 않다. 적당한 깊이의 지식과 과하지 않은 감성으로 현대미술의 매력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책은 우고 론디노네와 유영국 등 28명의 국내외 현대예술가와 그 대표작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의 제작 배경, 이와 얽힌 저자의 경험담과 감상을 종횡으로 엮어 나가는 솜씨가 능숙하다.
예컨대 저자가 애니시 커푸어의 설치작품 ‘쓰리’를 보고 숨이 멎는 감동을 받았던 경험담에는 현대미술이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세계적인 작가 양혜규가 무명 시절 자신의 ‘안 팔리는 작품’들을 모아 만든 개념미술 ‘창고 피스’(2004)를 통해서는 작가들의 도전정신과 현실적인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작가들의 내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는 점도 독자를 끌어당기는 요소다. 미술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저자가 작가들과 오랜 기간 함께 일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를 정리한 것. 2005년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에 역대 최연소 작가로 선정되며 스타덤에 오른 문성식이 이후 오랜 슬럼프를 겪은 사정 등이 대표적인 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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