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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25만원 버는데 하루 두 끼 죽으로 때웁니다"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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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살인적인 고(高)물가가 핫이슈다. 스리랑카, 페루, 파나마 등 저소득 국가에선 "먹고 살기 팍팍해졌다"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과격 반(反)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물가 폭등으로 인한 생활비 위기는 선진국을 비켜 가질 않았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선 최근 밥상 물가가 너무 치솟자 무료급식센터를 찾는 사람들이 폭증했다.

지난 주말 파이낸셜타임스(FT)에 한 영국 청년의 하소연이 담긴 편지가 실렸다. 물가가 올라 생활비 위기를 겪고 있는 일상을 상세히 기록한 글이다. 1000개 가까이 달린 댓글들에는 "물가 때문에 미치겠다" "내 삶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사실적인 글이다" "전문 작가로 전업하라"는 폭발적인 호응이 잇따랐다.

영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에 비해 9.4% 뛰었다. 석달 연속 이어지는 폭등세로, 40여년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아래는 그의 FT 글을 재구성했다. 미국, 영국, 유럽 등 잘 사는 나라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물가가 올라 고통받는 국민들의 일상은 만국공통이다.

○취미가 요트 타기인 것도 아닌데…
저는 영국 대학교에서 경호·경비직으로 일하고 있는 마흔살 청년입니다. 런던 근교에서 여자친구, 딸아이와 함께 세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저는 경호업무로 시간당 10.71파운드(약 1만6000원)를 벌어요. 하루 12시간씩 한달 동안 16번 교대근무를 서고 나면 세후 월소득은 1434.48파운드(약 225만원)입니다. 코로나19 여파로 돈벌이가 시원찮았던 2년 전엔 매달 1411.86파운드 가량 받았어요.

2년동안 임금이 쥐꼬리만큼 올랐지만, 그닥 개의치 않았습니다. 제가 취미생활로 요트를 타고 싶어하는 것도 아닌데요 뭐. 학교에서 일하는 여자친구의 월급을 더하면 한달 3452.16파운드의 세후 소득이 저희 가족 통장에 들어옵니다. 저는 항상 충분히 먹고 살만큼 적당한 돈을 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엔 매달 각종 고지서를 들고 찾아오는 우체부를 마주치기가 너무 싫습니다. 물가가 미친듯이 올랐거든요.


마트를 가보면 식료품 가격이 1년 전에 비해 평균 6% 올랐습니다. 연료 가격은 더 심각해요. 33%, 그야말로 폭등했네요. 6월달 영국 인플레이션이 작년보다 9.4% 올라 40여년만에 최고치를 찍었다는데…. 내년 어느 시점부터는 제 월급만 갖고는 삶을 버틸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지 밤잠을 설치곤 합니다.

지난 3월에 파이낸셜타임스에서 "치솟는 물가를 감당하기 힘들어 주말마다 가족과 친구를 보러 가던 일정을 포기했다"는 청소부·우편배달부 부부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워킹푸어(Working Poor·일하는 빈곤층을 뜻하는 말로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을 의미)라는 용어도 처음 접했죠. 저도 워킹푸어일까요?
○하루 두 끼를 오트밀죽으로

매달 지출 품목에서 허리띠를 졸라맬 구석이 있을지 철저히 추적해보기로 했습니다. 전력회사 Bulb가 매달 청구하는 전기요금은 44.74파운드, 가스요금은 27.47파운드 정도 드네요. 교통요금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10여년 전 자동차를 팔아치운 이후 직장 출퇴근이라든가, 딸아이와 놀이터 가는 정도는 웬만하면 걸어다니기 때문이죠.

가끔 함께 일하는 동료 샘이 일이 끝나면 집까지 태워줄 때도 있습니다. 샘이랑은 정말 친한 사이라 서로 번갈아가면서 점심을 사는데, 28.37파운드면 한나절 배고픔을 버틸 만합니다. 각각 햄버거 한 개와 나눠먹을 감자칩을 살 수 있거든요.

샘과 근무일이 겹치지 않는 날엔 점심을 싸갑니다. 시금치(1.05파운드), 땅콩(46펜스), 토마토(90펜스), 갈색 빵(1파운드), 콜먼의 겨자(1.65파운드)를 곁들여 만든 4파운드짜리 특별식입니다. 스타벅스 샌드위치보다 훨씬 저렴해서 좋아요. 요즘엔 하루 두 끼를 포리지(porridge·주로 아침식사용으로 먹는 오트밀죽)로 때울 때도 종종 있습니다. 오트밀죽을 만들 때 이젠 우유 대신 물을 넣게 됐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해요.


아 참, 담보 대출금도 있습니다. 앞으로 2년 동안 매달 656.97파운드를 내야 합니다. 갚아야 할 금액이 확정된 것은 다행이지만, 2024년에 다시 대출을 연장해야 할 때 이자율이 얼마나 올라 있을지 막막합니다.
○에너지 요금, 또 오른대요
계산해보니 그동안 제 월소득으로 대출금(23%)을 갚고 음식값(31%)을 내고 나면, 나머지 46%로는 각종 청구서 비용을 납부해왔네요. 여자친구 수입으로는 한달에 두 번 당일치기 휴가를 다녀오고, 남는 돈은 저축을 해왔습니다.

맞벌이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긴 하지만, 여행이라든가 적금이라든가 이제 조금씩 줄이고 포기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지겠죠. 지금 TV에서 '지난 4월 54% 올랐던 에너지 요금이 10월에 또 40% 이상 오른다'는 뉴스가 나오는데… 계산기를 찾으려다 그냥 뒀습니다.

누군가는 제게 "그럼 공부 열심히 해서 더 많은 돈을 버는 직업을 갖지 그랬냐"고 할 테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제 직업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직업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새 지붕과 작은 정원을 누릴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

오늘 아침 경비 업무를 서는 대학교에서 한 학생이 소화기를 던지고 문을 부수는 난동을 피웠습니다. 간신히 진정시키긴 했지만, 제 신변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보호장구를 새로 마련하기 위해 검색창을 켰습니다. 73파운드가 필요하네요. 그냥 학생들에게 항상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경비원이 되는 걸로 대신해야겠습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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