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는 쌀밥 한 그릇, 야채볶음 두 접시, 구운 생선 한 토막. 우유는 4일에 한 잔, 달걀은 13일에 한 알, 구운 고기는 14일에 한 접시.
최근 일본 농림수산성이 제시한 식단의 예다. 식료품 수입이 끊겨 자국산 식료품으로만 일본 전국민이 필요한 열량을 채워야 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밥상이다. 아침과 점심은 더 조촐하다. 아침은 쌀밥 한 그릇, 장아찌와 낫또가 전부다.
점심은 우동 한 그릇과 샐러드, 사과 5분의 1조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런 식단을 유지하면 비타민B2, 나트륨, 칼슘, 크롬, 비오틴 부족이 우려된다고 후생노동성은 분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식료품 가격이 세계적으로 급등하면서 일본의 식량안보가 위협받고 있다. 일본의 식량자급률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낮다.
17일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2020년말 일본의 식량자급률은 37%(열량 기준)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식량자급률이 73%에 달했던 1965년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일본의 식량 사정은 G7 가운데 단연 꼴찌다. 2019년 기준 캐나다 미국 프랑스의 식량자급률은 100%를 넘고 독일도 95%로 식량 대부분을 자급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식량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영국과 이탈리아의 자급률도 68%와 59%로 일본을 크게 웃돈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5.8%다.
일본은 쌀(자급률 98%)을 제외하면 자급이 가능한 곡물이 없다. 일본 정부는 자급 가능한 곡물을 늘리기 위해 논을 밀 경작지로 전환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밀 자급률은 15%에 불과하다.
쌀 조차 일본 국내소비 감소로 인해 1998년 연간 생산량이 1000만t을 처음 밑돌았다. 2020년에는 814만t까지 줄었다. 일본인이 즐겨 찾는 소바는 주원료인 메밀가루 거의 대부분을 수입한다. 메밀가루를 주로 수입하는 중국에서 생산량이 줄자 올들어 일본의 소바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야채 자급률은 76%로 안정적이지만 섬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어패류 자급률은 51%까지 떨어졌다. 축산물과 식물성 기름의 자급률도 16%와 3%에 불과하다.
빵과 면류의 재료인 밀가루와 사료의 주원료인 옥수수 대두는 수입국 편중이 과제로 지적된다. 옥수수는 99%를 미국과 브라질, 밀가루는 85%를 미국과 캐나다 2개국으로부터 수입한다. 대두는 미국 수입 의존도가 75%에 달한다.
이 때문에 "주요 수입국들이 이상기후나 재해, 분쟁에 휘말리면 일본이 식료품을 안정적으로 조달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지적했다.
식량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2035년까지 식량자급률을 45%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일본의 고령화가 식량자급률 개선을 가로막고 있다.
1990년 849만명이었던 일본의 농업종사자는 2021년 136만3000명으로 줄었다. 30여년 새 농업인구가 84% 급감했다. 경작면적도 1990년 800만헥타르(ha)에서 2021년 435만ha로 줄었다.
버려진 농지가 태양광발전 부지로 이용되면서 농촌지역에서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산케이신문은 "부족한 농업인구를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하고 있지만 일본은 임금이 갈수록 싸지고 있기 때문에 곧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