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 24일 역사적인 한·중 수교가 이뤄졌다. 수교 후 어느덧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양국 간 무역액은 수교 당시 64억달러 수준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해 2011년 2000억달러, 2021년 3000억달러를 돌파했다. 30년 만에 48배나 급증했다. 한국의 대(對)중국 투자는 1992년 1억4000만달러 수준에서 지난해는 67억달러에 육박했다. 2만 개 이상의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진출했고, 샤오미·DJI 등 중국 혁신기업들도 한국에 입성했다. 한국이 체결한 글로벌 자유무역협정(FTA) 혜택을 누리기 위한 중국 M사의 그린필드형 투자도 나왔다.
그동안 한·중 경제교류는 전체적으로 우상향 성장 일로를 달려왔지만, 그 과정에 하나의 변곡점이 존재한다. 그 변곡점은 ‘레세페르 레세파세(laissez passer)’와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로 양분할 수 있다. 레세페르는 ‘일하도록 놓아두라’는 뜻으로 일과 생산의 자유를 뜻하고, 레세파세는 ‘통과하도록 놓아두라’는 의미로 통상과 비즈니스의 자유를 뜻한다.
초중반의 한·중 관계가 레세페르 레세파세 속에서 거칠 것 없이 탄탄대로를 달려왔다면 최근의 한·중 관계는 갈수록 기브 앤드 테이크 관계로 흘러가고 있다.
전자의 한·중 관계가 상호보완적 협력의 관계였다면, 후자의 단계에서는 실리주의적 경쟁의 관계가 한층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도 각 방면에 걸쳐 철저히 실리를 따지고 주고받는 이른바 ‘프레너미(frienemy)’ 관계가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기업이 모두 진출한 중국은 생존을 위한 각축전이 벌어지는 전쟁터이자 ‘중원축록(中原逐鹿)’, 즉 넓은 벌판에서 한 마리 사슴을 쫓듯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이다.
선의의 경쟁은 기업 및 제품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요소다. 경쟁은 시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중요한 것은 경쟁 때문에 한·중 간 협력의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런 전제 아래 앞으로 한국은 중국과의 경제협력 구조를 고도화함으로써 그간의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의 경제발전 전략에 따른 부품 자립화에 대비해 중간재 수출 비중을 낮추고 소비재와 자본재 비중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 시장 변화에 따른 맞춤형 진출 방안 수립도 중요한 과제다. 위드 코로나 시대 주요 소비층과 트렌드의 변화, 내수 활성화를 통한 중산층 확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친환경산업 육성, 디지털 전환에 따른 디지털 경제의 발전, 심각한 고령화로 인한 실버산업 성장 등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관찰하고 대응해야 한다. 또한 한·중 FTA 서비스 투자 후속 협상을 마무리해 고부가 서비스 분야 무역투자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올해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발효로 경제 영토가 확대된 15개 역내국 간 오밀조밀한 공급망 매트릭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우리의 전략을 새로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30년 전의 중국과 지금의 중국은 천양지차이기 때문에 중국을 보는 우리의 시각과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한·중 양국 간의 산업구조 변화, 중국의 시장 수요 및 기술 경쟁력 변화에 따른 우리 산업의 적응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우리의 변화 없이 중국 시장의 가치와 중요성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고 했다. ‘이립’의 연륜은 나이 서른에 이르러 비로소 어떠한 일에도 움직이지 않는 신념이 서게 됐다는 뜻이다. 30년의 시간 동안 한·중 관계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발전해왔다.
앞으로의 30년 동안 양국 관계가 한층 더 발전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협력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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