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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도 아닌데 노세일?"…토종 브랜드가 '대박' 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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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패션전문기업 한섬은 매출액 규모에서 국내 여성복 1위 기업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타임·마인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앞세워 꾸준히 펼쳐온 ‘고급화 전략’이 코로나19 장기화로 시작된 해외 명품과 수입의류의 공습 속에서도 빛을 발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한섬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지난해보다 17.4% 증가한 3915억원,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0.7% 불어난 59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창사 이후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패션업계 최대 성수기라 할 수 있는 4분기가 아닌 1분기에 이 같은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이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1분기 온라인 거래액도 지난해보다 28.6% 증가하며 1000억원을 넘어섰다. 타깃별로 온라인몰을 세분화해 운영하는 버티컬 커머스 전략을 전개한 것이 주효했다. 이외에도 웹드라마를 제작하거나 화장품 사업을 새로 시작하는 등 신규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적극 실시하고 있다.
상황 1 고가 수입의류 수요 급증
도전 1 고급화 전략 강화로 대응
코로나19 초기였던 2020년 위축됐던 패션업계는 지난해 보복소비 흐름을 타고 높은 성장세를 이뤘다. 해외 여행이 줄면서 명품이나 수입 의류로 소비가 쏠린 탓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패션상품 비중이 높은 한섬의 호실적은 이례적이었기 때문에 업계의 눈길을 끌었다. 한섬은 지난해 매출 1조 3874억원, 영업이익 1522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모두 창사 이후 최대 실적이었다.

한섬은 ‘고급화’ 전략을 펼치는 대표적인 패션회사다. 국내 브랜드에서는 유일하게 ‘노세일’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가격이 아니라 디자인 경쟁력과 품질로 소비자에게 다가가겠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 덕에 ‘한섬 옷이라면 믿고 산다’는 생각을 가진 소비자 팬덤이 형성됐고, 한섬이 국내 여성복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원동력이 됐다.

고급화 전략은 타임·마인·시스템 등 한섬의 대표 브랜드는 물론, 다른 브랜드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올 1분기 ‘더캐시미어’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30% 이상 늘었다. 랑방컬렉션·타미진스 등 수입 라이선스 브랜드와 무이·톰그레이하운드 등 편집숍 브랜드 역시 두자릿수 이상의 매출 증가율을 보이면서 호실적을 기록했다.

백화점과 유사한 수준의 우수 고객 제도를 운영하는 것 역시 고급화 전략의 일환이다. 한섬은 2012년 현대백화점그룹에 편입된 이후 꾸준히 우수 고객 제도를 선보여왔다. 2019년에는 VVIP 고객을 대상으로 드라이크리닝 서비스를 제공했다. 최근엔 이를 업그레이드한 ‘의류 토탈 케어 서비스’를 론칭했다. 고급 원단으로 만들어진 옷을 섬세하게 드라이크리닝하고, 장기간 의류를 보관해주는 서비스다.

한섬은 자체 오프라인 콘셉트 스토어 ‘더한섬하우스’ 3개 점포(광주점, 제주점, 부산점)에서 VIP 라운지를 운영하며 우수 고객을 위한 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한섬 관계자는 “회사 전체 매출에서 VIP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성장하고 있다”며 “VIP 고객들의 구매는 한섬이 2019년부터 3년 연속 영업이익 1000억원 이상을 달성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상황 2 온라인 패션 시장 급성장
도전 2 버티컬 커머스 전략 펼쳐
코로나19 확산 이후 비대면 소비가 늘며 ‘옷은 무조건 매장에서 직접 입어 보고 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졌다. 이와 함께 주요 패션기업의 전체 매출 가운데 온라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한섬은 온라인 소비자를 겨냥해 ‘버티컬 커머스’ 전략을 펼치며 온라인몰을 타깃별로 세분화해 3개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더한섬닷컴’은 타임·마인 등 한섬의 프리미엄 브랜드 전문몰로, ‘H패션몰’은 타미힐피거·캘빈클라인 등 수입 브랜드 중심으로 타사와 유사한 패션 전문몰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EQL’은 10~20대를 겨냥한 모바일 편집숍이다. 이는 LF몰, SI빌리지, SSF샵 등 온라인 몰을 1개만 운영하고 있는 국내 대기업 계열 패션회사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온라인 시장을 강화한 한섬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한섬의 전체 매출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12%에서 지난해 21%로 두 배 가까이 확대됐다. 올해 1분기 온라인 매출 비중은 22%를 넘어섰다.

온라인 사업이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보이자 한섬은 투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달에는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에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스마트허브 e비즈’를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 물류센터는 온라인 물량만 전담하는 센터로, 국내 대기업 계열 패션기업 중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도입한 건 최초다. 한섬은 ‘스마트허브 e비즈’에 약 500억원을 투자해 패션기업에 특화된 첨단 자동화 물류 시스템을 대거 도입했다. 이를 기반으로 패션업계에서 차별화된 배송 서비스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물류센터 확대와 함께 한섬의 올해 온라인 매출이 4000억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상황 3 패션업계 경쟁 심화
도전 3 사업 다각화·MZ세대 콘텐츠
코로나19를 계기로 소비자들의 패션상품 구매 패턴이 다양해지고 MZ(밀레니얼+Z)세대가 주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온라인 패션 플랫폼, 명품 플랫폼들이 급성장했다. 기존 패션기업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경쟁 상대가 등장한 것이다.

이와 함께 대기업 계열 패션기업들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 다각화에 적극 나서는가 하면, 새로운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전개하고 있다.

한섬은 국내 여성복에 무게가 실려있던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있다. 우선, 뷰티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8월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 ‘오에라’(Oera)를 론칭한 데 이어, 최근엔 프랑스 니치 향수(고가의 프리미엄 향수) 전문 편집숍 ‘리퀴드 퍼퓸바’를 국내에 선보였다.

한섬 관계자는 “오에라와 리퀴드 퍼퓸바의 유통망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물론, 화장품 사업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며 “앞으로도 기존 타임·마인 등 프리미엄 브랜드로 구축해 온 고품격 이미지를 리퀴드 퍼퓸바와 오에라에 그대로 접목해 뷰티 사업을 차별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에는 2007년 국내 독점권 및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랑방의 라이선스권을 활용해 새 골프웨어 브랜드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지난해 해외패션부문장으로 박철규 사장을 새로 영입하면서 해외패션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MZ세대를 겨냥한 새로운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웹드라마 ‘핸드메이드 러브’와 ‘바이트 씨스터즈’를 연이어 선보였는데 이는 패션업계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올초엔 MZ세대를 겨냥한 콘텐츠 다각화의 일환으로 스포츠 컬처 콘텐츠 기업인 ‘왁티(WAGTI)’에 53억 5000만원을 투자했다.

한섬 측은 “향후 MZ세대를 겨냥한 맞춤형 콘텐츠를 개발하고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며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골프웨어 브랜드의 고객 커뮤니케이션을 협업하고 모바일 편집숍 EQL 내 스포츠·스트릿 콘텐츠도 함께 기획해 나간다는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한섬의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고급화’다. 앞서 언급한 VIP 케어 서비스를 포함해 온·오프라인 노세일 전략과 배송 서비스 차별화, 럭셔리 스킨케어와 니치향수 판매 등 고가의 제품을 앞세운 뷰티 사업 모두 기존 프리미엄 브랜드를 통해 쌓아온 탄탄한 소비자층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고급화 전략이다.

한섬은 2012년 현대백화점그룹에 인수된 이후 꾸준히 고급화 전략을 강화해왔다. 매출 상승세 역시 고급화 전략과 함께한다. 한섬의 지난해 매출은 1조 3874억원으로, 인수 직후였던 2012년 매출액 규모(4963억원)과 비교해 세 배 가까이 커졌다.

한섬 관계자는 “한섬의 강점인 ‘고급 이미지’를 활용해 코로나19 장기화 상황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며 “향후 패션뿐 아니라 소비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스타일 크리에이터 기업으로 발돋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소비자들이 특정 제품을 평가할 때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활용하기 보다는 매우 제한적인 정보만을 활용할 때가 많다. 이때 가장 대표적으로 활용하는 정보는 바로 “가격”이다.

사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도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값싼 제품을 좋다고 구매했다가 너무 낮은 품질을 경험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우리는 가격으로 제품의 품질을 미리 판단하곤 한다.

심지어 어떤 산업에서는 ‘더 높은 가격’이 ‘더 좋은 품질’이라는 시그널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비슷한 명품 제품군 내에서도 더 비싼 브랜드가 더 좋은 브랜드로 받아들여질 때가 있다. 이에 따라 명품 브랜드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가격을 올리기도 한다.

마케팅에서는 이를 특별히 “가격-품질 연상(price-quality association)”이라고 한다. 즉, 가격으로 품질을 추론한다. 이는 보통 소비자들이 해당 제품, 서비스를 자주 경험하지 못하였거나, 혹은 직접적인 정보만으로 해당 제품의 품질을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에 많이 발생한다.

의류, 패션 산업의 경우에도 제품마다 워낙 다양한 소재가 활용되고, 브랜드 이미지, 디자인, 패션 트렌드, 점포 이미지 등 다양한 무형적 속성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그 품질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 경우 고가격,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한섬의 경우 타임, 마인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앞세워 그동안 꾸준히 고급화 전략을 펼쳐왔고, 노세일 원칙, VIP 라운지,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 프리미엄 향수 브랜드 출시 등 고급화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물론, 더 비싼 가격을 설정한다고 소비자들이 무조건 해당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고가격 프리미엄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당 제품의 고가격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그 무언가, 즉 “가치 속성(value-added features)”이 반드시 제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해당 브랜드가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확실한 실용적 가치(utilitarian value)가 있거나, 혹은 비싼 가격에 상응하는 차별적 상징적 가치(symbolic value)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제품을 사랑, 긍지, 지위, 기쁨 등을 표현하는 주관적 상징물로 바라보게 만들거나, 우리 브랜드를 구매하는 것이 곧 자아의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는 좋은 수단임을 강조할 수 있다.

결국 제품의 ‘가격’이란 소비자들이 해당 제품 구매를 통해 기대하는 모든 혜택을 얻기 위해 포기하는 모든 금전적, 비금전적 ‘가치의 합’이다. 따라서 프리미엄 브랜드 마케터는 소비자들에게 그에 대응하는 가치를 반드시 전달해야 한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 최현자 서울대 교수

우리는 다양한 문화상품을 소비한다. 공연예술을 관람하거나 영화를 보고 음악을 감상한다. 학계에서는 문화상품을 ‘인간이 시각 또는 청각을 통해 기쁨, 슬픔, 분노, 쾌감 같은 감정적 반향을 경험하게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라고 정의한다.

보통 사람들은 문화상품이라고 하면, 대중문화를 떠올린다. 오페라, 발레, 클래식음악회같은 고급문화보다는 오락영화, 인기가수의 콘서트나 음반 등 대중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대중문화상품을 평균보다 많이 소비하는 ‘대중문화 선호집단’이 고급문화상품을 평균보다 많이 소비하는 ‘고급문화 선호집단’에 비해 두 배 정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급문화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해서 일 것이다. 고급문화는 배경지식이나 학습이 필요하지만, 대중문화는 그런 것이 없어도 즐길 수 있다.

한섬은 1987년 설립된 이래 고가 패션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져왔다.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는 해외 패션 브랜드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고급 이미지를 구축했다. 문화상품으로 치면, 고급문화상품이라 할 만하다.

케이스스터디 기사에 따르면, 한섬은 온라인 패션 시장 급성장에 대응해 온라인몰을 타깃별로 세분화해 3개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버티컬 커머스 전략은 기존의 ‘고급화’는 유지하면서 새로운 소비자층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급문화 선호집단’에 더해 ‘대중문화 선호집단’을 비롯한 나머지 집단까지 자사 고객으로 삼으려는 의도다. 국내 대기업 계열 다른 패션회사들과는 대조적으로 집단의 특성에 맞춰 온라인몰을 따로 운영하는 점은 일단 성공적이다.

대중문화를 즐기던 사람에게 고급문화를 향유하는데 필요한 배경지식을 제공하는 것처럼, 패션 소비자들이 다른 집단의 상품에 쉽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용한 정보와 혜택을 제공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스타일 크리에이터’라는 고급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패션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할 넛지는 무엇일까. 한섬의 마케터가 시작해야 할 또 다른 고민일 듯하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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