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세계 반도체 수탁생산, 즉 파운드리 점유율 순위가 최근 발표됐는데 대만 TSMC가 여전히 53.6%로 선두고 삼성전자가 16.3%로 그다음을 차지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SMIC, 화훙그룹, 넥스칩 등 3개 중국 기업의 점유율이 10%를 넘었다는 점이다. 팹리스에서도 중국 업체가 세계 10위권에 오르는 등 최근 반도체산업에서 중국의 약진이 눈에 띈다.
중국은 일찌감치 반도체 굴기를 선언했으나 미·중 무역분쟁으로 한동안 기업의 성과가 부진하고 관련 기업의 국가 지분이 증가하는 등 국유화 분위기로 돌아가는 면을 보이며 반도체산업 투자 동력이 약해졌다. 그러나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 금지를 우리나라가 해당 소재·부품·장비 기술을 국내에서 개발하는 계기로 삼았듯, 중국 역시 미국의 대중 기술·무역 제재에 맞서 국산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산업화, 특히 빠른 디지털 사회 전환에 발맞춰 중국 내수에서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고사(枯死)가 아니라 오히려 성장했다. 문제는 이들의 기술 혁신이다. 갈라파고스 제도처럼 고립돼 중국 기업은 자력 구제 방식으로 성장하려니 시행착오로부터 얻는 노하우는 있겠으나 글로벌 반도체산업 구조를 본질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혁신에는 성공하기 힘들다.
파운드리산업은 설계-생산-조립 및 검사로 이어지는 구조이고,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으로 불리는 설계 특허 보유 기업, 이들에게 라이선스를 구입해 실시료를 내고 설계도면을 이행하는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인 팹리스, 그리고 디자인하우스, 수탁생산자로 우리나라 삼성전자가 참여하고 있는 파운드리업체, 그리고 조립과 검사를 담당하는 기업들로 구성된다. 물론 인텔처럼 IP부터 조립·검사까지 모두 이행하는 종합 반도체 기업도 있다.
IP 기업과 팹리스는 대부분 미국과 영국 기업이다. 중국의 하이실리콘이 올해 팹리스 10위권에 들었고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고 성장하고 있으나, 동시에 미·영의 중국 견제에 대항하고자 IP 기업-팹리스와는 완전히 반대 방식으로 접근하는 오픈소스형 반도체 설계 구조인 ‘리스크 파이브(RISC-V)’를 추진하고 있다.
리스크 파이브는 예전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항해 만들어진 오픈소스 방식의 리눅스처럼 미국을 중심으로 학계에서 결성돼 이른바 관련 학자들의 협업으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그동안 미국에 유학 가거나 미국 과학기술계에서 경력을 쌓은 중국인 이공계 학자의 풀 규모를 생각해보면 중국이 오픈소스로 설계구조 기술력을 보완하려는 접근 방식은 매우 가능성이 큰 전략으로 판단된다.
물론 리스크 파이브의 기술이 단시간에 고성장해 종합 반도체 기업인 인텔이나 IP 기업을 대체하더라도, 이를 실제로 설계 공정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반도체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 분야는 미국이 절대적으로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 기업이 아닌 반도체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 기업들에 중국으로부터의 전략적 제휴나 인수 등의 제안이 뒤따를 전망이다.
이를 막기 위한 미국의 반격도 예상된다. 현재 리스크 파이브 기술로는 비교적 단순한 칩 코어 설계가 가능하다. 이 기술을 사용한 제품은 사물인터넷(IoT), 증강현실, 웨어러블 기기 등이 있다. 이들 제품군은 최근에 부상했기 때문에 해당 기술에 대한 국제표준이 시장에서 확립되지 못했거나, 자리 잡지 못했다. 따라서 중국의 이런 경로창출형 기술 획득 전략에 대해 미국과 기존 이해관계자 국가 및 기업들은 기존 IP 기업-팹리스 경로를 장악하는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국제표준이 만들어지게 유도,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산업은 한국의 기간산업이다. 글로벌 시장은 숨 가쁘게 돌아가는데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국가 기술 전략을 점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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