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보통 스타트업 창업자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회사를 국내 대표 기업으로 잘 키운 경우입니다. 네이버 카카오 넥슨 엔씨소프트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두번째는 기업을 다른 회사에 적절한 시기에 고액을 받고 팔았을 때입니다. 다만 후자의 경우 매각된 회사가 이후 망했다면 창업자는 오히려 '먹튀' 취급을 받죠. 이 회사가 다른 대기업이나 빅테크 등에 넘어간 이후 기존 사업 분야와의 시너지를 통해 제대로 성장한다면 창업자에게도 찬사가 쏟아집니다.
두번째 사례의 대표적인 경우가 '김기사'로 유명한 스타트업 록앤올입니다. 김기사는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스타트업이 대형 통신사 등이 할만한 '모빌리티 앱'에 도전했다는 사실에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모았죠. 이후 입소문을 타면서 소비자들에 큰 인기를 끌었고, 카카오에 매각된 이후에는 국민 앱인 카카오 내비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성공적으로 회사를 매각한 김기사 창업 3인방은 액셀러레이터로 변신해 후배 창업자 양성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들의 후배 육성 비법은 김기사 창업만큼 도전적이고 참신합니다. 신명진·박종환·김원태 김기사랩 공동 대표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났습니다.
카카오의 모빌리티 자회사인 카카오모빌리티의 핵심 서비스 중 하나가 '카카오 내비'다. 현재 이용자(MAU)가 400만명이 넘는다. 가입자는 1600만명 이상이다. 카카오는 2015년 록앤올을 인수하고 '김기사'를 확보하면서 모빌리티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 적자였던 카카오는 록앤올 인수에 626억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 그만큼 '김기사'는 카카오에 필요한 서비스였다.
록액올을 설립한 신명진·박종환·김원태 공동 대표는 회사 매각과 함께 카카오에 합류했다. '카카오 내비'를 카카오에서 키우는 업무를 맡았다. 3년 후인 2018년 세 명 모두 카카오를 떠났다. 이들은 또다시 뜻을 모아 창업에 나섰다. 이번에는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만들지는 않았다. 대신 후배를 돕기로 했다. 2018년 액셀러레이터 김기사랩을 설립했다. 지난 4년 동안 투자한 스타트업이 40개가 넘는다. 핀테크 스타트업 빅쏠 등 일부 기업은 벌써 다른 기업에 인수되기도 했다.
김기사로 '대박'친 3인방의 2라운드
▶카카오 퇴사하기 전에 창업 계획이 있었습니까처음에는 액셀러레이터보다는 '컴퍼니빌더(company builder)'를 하고 싶었어요. 다시 사업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팀을 도와주고 투자도 하고 싶었죠. 그래서 김기사랩을 설립했습니다. 저희는 창업부터 서비스 기획과 개발, 인수·합병(M&A)까지 다 해봤거든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기업을 찾아서 성공을 도와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죠.
▶김기사랩은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요
기수를 정해서 1년에 한번 투자하고 지원할 스타트업을 선발합니다. 올해 김기사랩 4기를 뽑았죠. 공개적으로 기수를 정해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적 네트워크가 없어서 누군가의 추천을 받기 어려운 기업들이 있죠. 그런데 이런 스타트업 중에서 괜찮은 팀이 꽤 있거든요. 3개월 정도 저희 3명이 직접 멘토링을 합니다. 필요하면 업계 전문가를 강사도 초빙해 1대1 강의도 하고요. 후속 투자 유치도 돕죠
▶지원 기준은 어떻습니까
일단 법인 설립은 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온 기업을 선호합니다. 창업 후 3년 미만이 지원 조건이었는데 이 부분은 좀 유연하죠. 선호하는 사업 아이템이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잘 도와줄 수 있는 스타트업을 찾죠. 저희처럼 1500만명 이상 다운로드한 앱(김기사)를 만든 경험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앱 기획과 서비스 측면에서 창업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죠. 투자자와 창업자의 관점에서 동시에 스타트업을 볼 수 있다는 강점도 있습니다. 스타트업 업계의 내비게이션이 되는 것이 회사 설립 취지죠.
▶투자 원칙이 궁금합니다
팀 자체를 많이 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보이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심사할 때 발표한 것과 내부 상황이 다를 수 있잖아요. 대화를 자주하면서 팀을 자세히 보려고 합니다. 투자 기업을 늘리려고 했지만 3명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웠어요. 팀이 너무 많으면 멘토링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아요. 액셀러레이터 대표 중에 김기사랩처럼 스타트업 발굴에서 투자, 멘토링까지 모두 하는 곳은 국내에 별로 없을 겁니다.
'같이 일하고 싶은 창업자' 되야
▶투자 규모는 어떻게 됩니까처음에는 스타트업 당 5000만원 정도 투자했습니다. 부족해서 규모를 계속 늘렸죠. 1억원, 3억원으로 증액했어요. 최근에는 150억원 규모 펀드도 만들었습니다. 후속 투자를 하기 위해서죠. 지금은 5억원 투자도 가능합니다. 최근에 3호 펀드를 만들었습니다. 1호 펀드 때는 처음이라 3명의 자금만으로 만들었죠. 외부에서 투자 제안도 있었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거절했죠. 이번 3호 펀드는 외부 투자를 받았습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성공하신 분들이 많이 투자하셨죠. 사모펀드는 투자자 수 제한(49명)이 있어서 모든 투자금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투자 성과는 어떤가요
1기 중 한 팀은 인수·합병(M&A)으로 졸업했습니다. 핀테크 스타트업 빅쏠이죠. 김기사랩과 만난지 2년 6개월만에 다른 핀테크인 기업 세틀뱅크가 인수했습니다. 장애인 대상 고용 플랫폼업체 브이드림은 장애인 의무 고용이 필요한 업체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주변 기업 대표들을 소개해주는 등 영업 활동도 도와줬죠. 지금은 시리즈B(두 번째 기업 투자 단계)까지 투자를 받았습니다. 처음 김기사랩이 투자할 때보다 기업 가치가 60배 올랐죠.
▶M&A 등 성장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이 보이나요
저희는 M&A를 경험해봤잖아요. 우선 특정 회사에서 그 팀에 관심이 있어야 해요. '창업자와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관심 있는 회사에서 스타트업 대표를 직접 만났는데 엉망이라고 생각하면 힘들죠. 정서적인 부분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M&A도 기본적으로 사람이 결정하는 겁니다. '갖고 싶다'라는 생각을 들게 해야죠. 스타트업이 갈 수 있는 길은 보통 M&A와 상장(IPO)입니다. 매출이 별로 나오지 않지만 네이버나 카카오가 좋아할 것 같은 회사가 있거든요. 이런 회사는 M&A 될 가능성이 높죠.
▶추가 설명 부탁드립니다
올해 초에 카카오모빌리티가 인수한 '오늘의 픽업'이라는 업체가 있습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배송 시장의 대기업이 관심을 가질만한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했죠. 정보기술(IT) 기반에 밑바닥부터 시작한 기업이라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대기업의 고민을 해결한다고 모든 스타트업이 주목받는 건 아닙니다. 해당 스타트업 없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M&A할 필요가 없죠. IPO로 가려는 스타트업은 어느 정도 매출이 나와야 합니다. 계속 성장할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시장 크기도 중요합니다.
"맨토링이요? 일단 술 한잔"
▶멘토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시나요실제로 회사에 뭐가 필요한지 찾습니다. 스타트업과 투자자 사이에서 중재 역할도 합니다. 투자자의 언어가 따로 있습니다. 창업자는 투자자에게 얘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요. 우리는 창업가 출신이다보니 그런 부분들을 이해하고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죠. 후속 투자 단계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벤처캐피털(VC)이 보고싶어 하는 것과 창업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 다르죠. 창업자들은 '투자자들은 맨날 말도 안되는 질문 한다'고 한다고 토로합니다. 우리는 양 측을 잘 압니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무엇을 보고 싶은지 창업자의 언어로 스타트업에 설명해줍니다. 김기사랩에서 투자한 스타트업 60% 정도는 후속 투자에 성공했습니다.
▶창업자들이 선호하는 멘토 프로그램이 궁금합니다
저녁에 술 한잔 하는 거요. 창업자는 외롭습니다. 고민을 토로할 곳이 별로 없어요. 코로나19 확산 전에는 많이 만났죠. 김기사랩 1기때는 자주 모였어요. 업계 선배의 얼굴 보고 술한잔 하는 것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됩니다. '나도 저렇게 돼야지' 좋은 기운을 받아가는 거죠. 초기 기업 입장에서 시리즈A, B 투자받은 회사도 정말 하늘 같거든요. 그런 자리를 계속 만드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김기사를 개발할 때 선배를 보고 싶어도 그런 자리가 없어서 많이 아쉬웠거든요.
▶최근 경기 악화로 투자 기준이 바뀌었나요
이전보다 성장성을 더 중요하게 봅니다.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을 보죠. 후속 펀딩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입니다. 처음부터 플랫폼 사업 하겠다는 회사는 잘 안 봅니다. 카카오택시는 가입자가 많으니까 플랫폼 효과가 나오는 겁니다. 플랫폼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해서 잘 될 수는 없죠.
▶앞으로 김기사랩은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가요
회사를 더 키울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처럼 연간 10개 정도 스타트업에 신규 투자하고 지원하는 것이 좋아요. 김기사랩 출신들이 성공해서 이들이 출자한 투자 펀드를 만들고 싶어요.
▶예비 창업자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유행에 민감한 회사는 오래 못 갑니다. 유행을 선도하는 회사들은 성공하죠. 반면 유행을 추종하는 기업은 성과는 상당수 좋지 않습니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깊게 파고들고 시장을 선점하는 업체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죠
참, 한가지 더
당근마켓·리턴제로·슈퍼진이 김기사랩과 닮은 점은?
김기사랩 대표들처럼 카카오가 인수한 스타트업 출신들이 다시 창업에 나선 경우가 계속 나오고 있다. 대부분 카카오 초창기 멤버들이다.
김재현 당근마켓 공동대표는 카카오가 2012년에 인수한 소셜커머스 스타트업 씽크리얼스를 설립하고 대표까지 맡았다. 씽크리얼스는 소셜커머스 모음 사이트 ‘쿠폰모아’, 여성의류 쇼핑몰 정보를 제공하는 ‘포켓스타일’ 등을 운영했다. 김 대표는 카카오 초창기의 성장에 힘을 보탰다.
전화 통화 내용을 문자로 변환해주는 서비스 '비토'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리턴제로의 이참솔 대표, 정주영 최고기술책임자(CTO) 등도 두번째로 창업했다. 앞서 이들은 2011년 다른 동료와 모바일 소셜커머스 서비스인 로티플을 설립했다. 로티플은 설립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카카오에 매각됐다. 리턴제로의 창업 멤버들은 카카오에 합류해 카카오 초창기의 각종 서비스를 만들었다.
페이스북 기반 게임으로 글로벌 이용자 1억명을 확보한 슈퍼진의 나영채 공동대표도 비슷한 경우다. 카카오가 2013년에 인수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타트업 써니로프트 출신이다. 나 대표도 카카오 초창기에 다양한 서비스를 담당했다. 2015년에 설립된 카카오 필리핀 법인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다가 퇴사하고 슈퍼진을 창업했다.
김주완/김종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