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대통령이 전격 사임했다. 국가부도 등 극심한 경제난으로 불만이 커진 시민들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나섰기 때문이다.
9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은 TV 성명을 통해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보장하겠다”며 13일 사퇴를 공식화했다. 라닐 위크레메싱게 스리랑카 총리도 같은날 사임 의사를 밝혔다. 대통령과 총리가 모두 사임하면 스리랑카 헌법에 따라 아베이와르데나 국회의장이 임시대통령으로 취임한다. 라자팍사 대통령의 임기는 2024년까지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해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스리랑카는 지난 5월 공식적으로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한 상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주요 수익원인 관광산업이 침체하며 외환위기를 맞았다. 올해 초에는 식료품 에너지 등 필수재를 구입할 자금이 없어 하루 13시간 동안 단전 조치가 이뤄지기도 했다.
1948년 독립 이후 최악의 경제난에 시민들은 곳곳에서 ‘대통령 퇴진’ 시위를 벌였다. 국제통화기금(IMF)과의 구제금융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더 커졌다. 급기야 시위대 수천 명이 대통령 집무동과 관저에 난입했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이들의 거센 목소리에 라자팍사는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시위대는 위크레메싱게 총리 자택에도 진입해 불을 질렀다.
라자팍사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라자팍사 가문의 통치도 막을 내렸다. 라자팍사 가문은 최근까지 형 마힌다 라자팍사 전 총리 등과 함께 스리랑카 정부의 요직을 장악했다. 경제난으로 퇴진 요구가 거세지면서 지난 5월 마힌다 라자팍사 총리가 사임했고 라자팍사 가문 출신의 장관 3명도 모두 물러났다.
이번 사태가 신흥국 줄도산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경제위기를 막기 위한 외부 완충장치가 줄어들자 외화보유액이 적은 저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해 저소득 국가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투자자 이탈과 자금 유출 가속화로 이들의 몰락은 더 빨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러시아와 스리랑카 다음으로 취약한 나라로 엘살바도르 가나 이집트 튀니지 파키스탄을 꼽았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