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이 발사됐을 때 경호원이 이에 반응하고 아베를 엎드리게 했으면 살았을 텐데."
총기 폭력 사건이 극히 드문 일본에서 8일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유세 연설 도중 총격으로 사망한 가운데 현장 경호원들의 미숙한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날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산한 영상에는 유세 현장의 모습, 첫 번째 총격과 두 번째 총격의 소리까지 생생히 담겼다. 해상자위대원 출신인 야마가미 데쓰야가 첫 번째 총격을 가하자 펑 소리에 놀라 경호원들은 일제히 뒤를 돌아봤고 아베 전 총리 또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두 번째 총탄 소리가 들렸다. 아베 전 총리는 두 번째 총격 이후 자리에 쓰러지고 경호원들은 그제야 야마가미를 제압하는 모습이다.
첫발이 울렸을 때 경호원들이 아베 전 총리에게 장막을 치거나 하다못해 엎드리게라도 했으면 목숨을 잃지 않았으리라는 아쉬움이 터져 나왔다.
네티즌들은 경호원들이 일제히 정면만 응시하고 있었던 점에도 주목했다. 경호 시에는 사방을 살펴보며 범죄 징후가 없는지 살폈어야 하는데 영상에 따르면 후면을 지켜보는 경호원이 없어 야마가미가 총을 두발 쏘고 나서야 상황을 뒤늦게 파악했다.
첫 번째 총격에 경호원들이 범인을 즉시 제압했다면 생명은 건졌을 텐데 그러지 못했고 약 3초 뒤에 있었던 흉부를 겨냥한 두 번째 총격이 치명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호 매뉴얼에 따르면 피습 상황에서는 경호원들이 인의 장막을 치며 VIP를 보호하고 대피시키는 것이 최우선이다. 일본 경호원들이 현장에서 그런 기본을 지키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의혹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NHK 방송 등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용의자가 범행에 사용한 총은 쇠 파이프로 추정되는 두 개의 원형 통을 검은색 비닐 테이프로 돌돌 묶은 특이한 형태였다. 사진으로 볼 때 산탄총보다는 짧고 권총보다는 조금 긴 형태로 제작됐다.
아사히신문은 총기에 정통한 전문가를 인용해 “3D 프린터를 사용하면 이런 총기를 단시간에 간단히 제작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어 “강화 플라스틱과 고무 등 재료 삽입도 쉽다”며 “금속포 부분과 3D 프린터 부품을 조합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해 일본 이바라키현에서도 한 남성이 3D 프린터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있었다고 전했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총기 규제가 강하며 총기 범죄도 적은 나라다.
민간인의 경우 사냥과 스포츠 사격 등 극히 일부 목적에만 산탄총과 공기총을 소지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평균 1년 정도 소요되는 까다로운 면허 취득 절차를 거쳐야 한다. 면허를 가진 총기 소지자는 탄약 구매 때도 경찰 허가받아야 하고 총기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반드시 지정된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 CNN에 따르면 2019년 일본 인구 1억2500만 명 중 민간인이 소지한 총은 31만400여 개에 불과했다.
그런 만큼 일본 내 총기 폭력 범죄율도 상당히 낮은 편이다. 미국 CBS 방송에 따르면 2019년 미국에서 10만 명당 네 명이 총기 사고로 사망한 데 비해 일본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이런 상황이라 경호원도 아베 전 총리가 총격당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야마가미는 41세로 2002년에 해상자위대에 입대했다가 2005년에 제대했다고 알려졌다.
아베 전 총리의 연설 장소는 그 전날 밤 확정된 것으로 전해져 야마가미가 어떻게 사전 파악했는지에 수사의 초점이 모일 전망이다.
아베 전 총리 총격 당시 경호원들이 멍하게 서 있는 영상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자 네티즌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에서 소주병 테러를 당했을 당시 여성 경호원의 침착하고 발빠른 모습과 비교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지난 3월 대구에 내려간 박 전 대통령을 겨냥해 40대 남성이 소주병을 던지자 경호원들은 병이 날아오는 순간부터 "피습이다", "엄호해"라고 외치고 움직여 박 전 대통령을 온몸으로 방어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