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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 대표 7인이 답한다 "내 인생 최고의 투자는?"[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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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벤처캐피털(VC) 투자는 파레토 법칙이 적용된다고 합니다. 수익률의 80% 가량이 전체 포트폴리오의 20%에서 나옵니다. 대표적인 고위험 고수익 투자이다 보니 손실을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성공 투자로 그 손실을 메꾸고 수익을 내는 겁니다. 야구로 따지면 출루율을 높이는 대신 방망이를 길게 잡고 강력한 한 방을 노린다고 할까요. 실리콘밸리의 대표 VC인 앤드리슨 호로비츠의 파트너인 크리스 딕슨은 삼진도 많지만 그만큼 많은 홈런을 양산해낸 베이브 루스에게 빗대 이를 '베이브 루스 효과'라고 불렀죠.
성공한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각자 자신의 '인생 샷'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강력한 한방'이죠. 지금 승승장구하고 있는 한국의 1세대 벤처캐피털리스트들에게 기억에 남는 인생 샷은 어떤 투자였을까요. 더불어 가장 아쉬웠던 투자는 무엇일까요? 한경 긱스(Geeks)가 들어봤습니다.


지성배 IMM인베스트먼트 대표 "기업가 정신 잊지 않았던 크래프톤"

IMM인베스트먼트는 크래프톤에 세 차례 투자했다. 블루홀 시절이던 2009년이 첫 투자다. 당시 창업 3년 차던 크래프톤은 '죽음의 계곡(데스밸리)’과 마주한 상태였다. 초기 투자 자금은 바닥을 드러냈지만, 아직 매출이 본격화되지 않아 폐업의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더구나 크래프톤은 당시 엔씨소프트와 영업비밀 유출 여부를 놓고 65억원 규모 소송을 벌이고 있었다.

크래프톤을 데스밸리에서 건져낸 건 IMM인베스트먼트를 비롯한 벤처캐피털(VC)들이었다. VC는 장병규 의장과 박용현 실장(현 넷게임즈 대표)이 이끄는 크래프톤의 ‘맨파워’에 주목했다. 결국 데스밸리에서 빠져나온 크래프톤은 2011년 엔씨소프트와의 2심에서 승소했다. 지 대표는 "장 의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급변하던 게임 시장에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능력이 탁월했다"며 "이렇게 앙트레프레너십(기업가 정신)을 잃지 않는 CEO와는 계속해서 '함께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 대표는 아쉬웠던 투자로 하이브를 꼽았다. IMM인베스트먼트는 BTS가 연습생 시절이던 2013년 당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투자했다. 초기 투자자로 참여했지만, 펀드 만기가 곧 돌아오며 전환사채(CB)를 상환받았다. 그는 "CB를 상환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BTS가 데뷔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며 "시기적으로 미스매치된 부분이 아쉬웠다"고 회상했다.

지 대표는 '긴 호흡'을 강조했다. 벤처투자 시장 자체가 장기적인 과정인 만큼 단순 악재들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호랑이처럼 노려보고 소처럼 뚜벅뚜벅 걷는다는 '호시우보'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며 "결국 호흡을 길게 가져가되 기회가 오면 바로바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세를 갖추는 게 스타트업 업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라고 설명했다.
김창규 다올인베스트먼트 대표 "인내심 '갑'이었던 배달의 민족"


다올인베스트먼트(옛 KTB네트워크)는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초기 투자자로 참여해 잭폿을 터뜨렸다. 23억원을 투자했는데, 이보다 30배나 많은 금액에 엑시트(회수) 했다.

김 대표가 우아한형제들에 주목한 점도 역시 대표의 역량이었다. 김봉진 의장이 가진 인내심에 '혀를 내둘렀다'는 게 그의 말이다. 김 대표는 "어려운 고비마다 그걸 참아내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고, 바쁜 와중에도 매번 열심히 독서를 하는 등 끊임없이 노력하는 CEO의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초기 단계 스타트업은 무조건 위험하기만 하다는 인식뿐이었는데, 이 투자를 계기로 훌륭한 CEO가 있다면 초기 회사도 과감히 투자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아쉬웠던 투자로는 하드웨어 업체 P사 사례를 꼽았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ITO(산화인듐주석) 글라스를 만드는 회사였다. 김 대표는 "몇 년 전 당시 그 회사는 삼성전자에 납품할 정도로 유망한 회사였지만 삼성 쪽에서 납품 기준을 바꾸면서 다른 거래처를 찾지 못해 쇠퇴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벤처투자 시장에 "아직 겨울이 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가 떠올리는 가장 추운 겨울은 2008년께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시기다. 지금은 주변 우려에 의욕을 잃지 말고 꾸준히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할 때라는 얘기다. 다만 '옥석 가리기'는 시작된 만큼 기존 밸류에이션에 심취해 있던 대표들은 현실 감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종필 KB인베스트먼트 대표 "일찌감치 '룬샷' 선보였던 에이블씨엔씨

김 대표는 한국투자파트너스에 몸담던 시절인 2000년대 초반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 '미샤'로 잘 알려진 에이블씨엔씨에 투자했다. 15억원을 투자해 200억원 넘는 금액을 회수했다. 수만 원을 넘나들던 화장품 시장에서 저렴한 제품을 주력으로 내세우며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회사다. 김 대표는 "대박 투자의 물꼬를 트게 해 준 거래"라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사피 바칼의 '룬샷'이라는 책을 떠올렸다. 룬샷은 일종의 '미친' 아이디어다. 본질을 꿰뚫어 보고 위기를 승리로 이끈 것은 결국 룬샷이라는 괴짜 같은 아이디어라고 설명한다. 그는 "에이블씨엔씨는 15~20년 전 화장품 업계에서 룬샷을 이끌었던 회사"라며 "거창할 필요 없이 새로운 시도를 통해 끊임없이 발전하는 회사가 결국 혁신 기업"이라고 말했다.

아쉬웠던 투자는 카카오였다. 한국투자파트너스 재직 시절인 2011년 박영호 당시 심사역(현재 라구나인베스트머트 대표)과 김동엽 심사역(현재 한국투자파트너스 CIO)이 발굴한 딜이었다. 김 대표는 당시 CIO를 맡고 있었다. 김 대표는 "1차 투자는 의미 있는 지분을 얻었지만, 실적 개선을 목전에 뒀던 2차 증자 기회에 참여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며 "조금 더 큰 규모의 투자를 할 수 있었다면, 해외 투자자들만큼 브랜드 파워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위축된 벤처투자 시장엔 솔직한 위로를 건넸다. 그는 "상투적인 말이지만, 겨울이 없는 봄과 추수의 가을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나"라며 "모두 힘내시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나 스스로에게도 던지는 위로다"라고 했다.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하이브"


LB그룹 내 투자사인 LB PE와 LB인베스트먼트는 나란히 하이브에 베팅해 '대박'을 쳤다. LB인베스트먼트는 2012년 하이브의 성장성을 내다보고 일찌감치 투자해 20배가 넘는 금액을 회수했다. 박 대표는 "음악에 있어서 주변국이었던 한국의 K팝을 세상의 중심으로 만든 게 하이브"라며 "21세기 비틀즈로 성장한 BTS의 모습은 VC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느끼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체 분위기가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 분야에 집중되고 있어 딥테크 분야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서지 못한 점이 아쉽다는 설명이다. 그는 "큰 흐름을 보면 기술 변화에 큰 변곡점이 나타날 수 있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며 "딥테크 분야를 확대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박 대표는 최근의 시장 상황을 '자연스러운 조정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닷컴 버블이나 금융 위기 등 거대한 격변기에도 스타트업들은 새로운 방향을 찾고 성장해 왔다"며 "지금은 장기적인 우상향 그래프 속에서 자연스럽게 옥석을 가리는 시기고, 이 시기를 버티는 스타트업들이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VC들은 긴 호흡을 갖고 최소 3~5년 이후를 바라보며 스타트업 곁에서 파트너로서 해야 할 역할을 다한다면 조정기 이후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며 "스타트업들은 현금 관리에 집중하면서 '모방형 성장'이 아닌 자신만의 핵심 경쟁력을 키우면 자연스럽게 투자가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 "비메모리 IC국산화 달성한 퓨리오사AI"


인공지능(AI) 반도체 칩 설계 스타트업인 퓨리오사AI는 설립 초기인 2017년부터 DSC인베스트먼트의 러브콜을 받았다. DSC인베스트먼트가 주목한 건 이 회사가 가진 잠재력이었다. 삼성전자, 퀄컴, AMD 등 유수의 글로벌 반도체 회사에서 몸담았던 창업 멤버들이 눈길을 끌었다. 윤 대표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비메모리 시스템반도체 분야의 회사들은 원 컴퍼니 원 아이템(One Company, One Item)이 대부분이라 잠시 타올랐다가 금방 꺼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퓨리오사AI는 꾸준히 성장해 칩 성능이 엔비디아를 위협할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투자로 글로벌 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AI 칩을 국내에서도 개발할 수 있게 되면서 관련 산업이 성장할 뿐만 아니라 일자리가 창출되는 등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고 했다.

아쉬웠던 투자로는 모바일 미디어 스타트업 A사를 사례로 들었다. 한때 유니콘으로 거론되기도 한 회사다. 그는 "경영진과 조금 더 세밀하게 회사를 관리하고 인수·합병(M&A)한 회사와의 시너지 창출에 노력을 기울였다면 좋은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는데 대단히 아쉽다"라고 회상했다.

위축된 벤처투자 시장에 대해서는 "지금은 현금을 비축해야 할 시기"라며 "무리하게 외형 확장 전략을 취해 온 플랫폼들은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스스로 수익성을 증명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학범 컴퍼니케이파트너스 대표" 벤처투자는 사람이 전부임을 증명한 넷게임즈"


김학범 컴퍼니케이파트너스 대표는 2013년 온라인 게임회사 넷게임즈(현 넥슨게임즈)의 설립 때부터 투자하며 '컴퍼니 빌딩'에 참여했다. 박용현 대표가 이끄는 개발팀을 믿고 시작한 투자였다. 하지만 당시 애니팡의 등장으로 벤처투자 시장의 관심은 온라인 게임에서 모바일 게임으로 조금씩 옮겨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VC업계의 반응은 싸늘했지만 김 대표는 멈추지 않고 총 세 번의 투자를 이어가며 박용현호를 지원했다.

김 대표는 “고민 끝에 처음 가보는 길이었지만 모바일 게임으로 사업모델을 피봇(전환)하기로 했다”며 “박용현호 개발팀이 1년을 쏟아 부은 덕분에 2015년 여름 ‘히트(HIT)’라는 최초의 모바일 액션 RPG 게임을 선보였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고 말했다.

총 60억을 투자했던 컴퍼니케이는 보유 지분을 넥슨에 780억원에 매각하면서 13배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김 대표는 “넷게임즈 투자를 통해 벤처투자는 사람을 보고 투자하는 게 진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며 “대표가 능력이 있으면 아무리 시장이 불리하게 변화해도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아쉬웠던 투자는 전 세계 전자기기 회사들이 CDMA GSM 등 갖가지 핸드폰을 출시했던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대표도 당시 핸드폰 제조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하지만 출시한 신제품이 잘 팔리지 않게 되자 사업이 어려워졌고 컴퍼니케이는 손해를 보고 지분을 매각했다.

김 대표는 "장이 좋을 때 실수가 나온다"며 "다른 핸드폰 회사들이 잘 나가니깐 이 회사도 잘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성공한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기준으로 투자했던 게 폐착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투자를 검토할 때는 ‘이 회사가 속한 시장이 레드오션은 아닌가’ ‘이 회사가 정말로 독창적인 기술과 서비스를 확보하고 있는가’를 꼼꼼하게 살피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승운 스톤브릿지벤처스 대표 "유니콘이 희귀하던 시절, 5조원 몸값으로 데뷔한 넥슨"

유 대표는 소프트뱅크벤처스에 몸담았던 2005년 모바일 게임 회사인 엔텔리젼트에 투자했다. 이 회사는 몇 달 뒤 넥슨에 인수됐는데, 이 과정에서 소프트뱅크벤처스가 갖고 있던 지분은 넥슨의 지분으로 교환됐다. 이후 넥슨은 2011년 일본 증시에 상장하면서 5조원 이상으로 몸값을 평가받았다. 유니콘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시절 이뤄낸 쾌거였다. 유 대표는 "지금은 일본의 주요 상장 게임사 중 시가총액 2위로 성장할 만큼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대표하는 게임 회사가 됐다"고 설명했다.

아쉬웠던 투자는 이동통신 기지국 장비 제조사인 H사였다. 기술력은 인정받았지만, 거래처와 관계 형성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당시 H사 대표님과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기울였는데,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펑펑 우는 모습을 봤을 때 나도 울컥했다"며 "열정과 자금, 기술을 모두 쏟아부어도 될까 말까 한 게 사업인데, 그런데도 묵묵히 그 어려운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게 대표의 역할이란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회상했다.

유 대표는 "시장이 어려울수록 더 비장한 각오로 지치지 않고 묵묵히 상황을 이겨내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다만 이렇게 투자 겨울을 보내면서 스타트업들엔 현금 창출 능력과 이익 실현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것이므로 이에 대한 깊은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종우/허란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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