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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꿈꾸며 고교 자퇴한 '수포자'…수학천재들도 손든 난제 10개 풀어

입력 2022-07-05 20:07
수정 2022-07-06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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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이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필즈상 수상은 노벨상 수상에 필적하는 성과다. 아시아에서 노벨상 최다 수상국(29명)인 일본도 그간 필즈상 수상자가 3명에 불과할 정도다. 한국계 수학자가 필즈상을 받은 것은 세계수학자대회 126년 역사상 처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축전에서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 수상은 수학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음을 각인시켜준 쾌거”라며 “인간 지성의 한계에 도전해 수학의 토대가 확장되도록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허 교수의 노력과 열정에 찬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중학교 3학년 때 수학경시대회에 나가려다가 선생님으로부터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말을 들었다. 수학 자체는 재밌었지만 입시 수학 공부에선 기쁨을 느끼기 어려웠다는 허 교수는 한동안 자신을 ‘수학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시인이 되겠다며 고등학교를 돌연 자퇴하는 ‘사고’를 치기도 했다. 그러나 천재들의 무덤이라는 수학계에서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르는 반전 드라마를 썼다. 허 교수의 인생 스토리를 톺아봤다.
수포자에서 세계 최고 수학자로
허 교수는 198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부친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와 모친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과 명예교수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때다. 두 살 때 부모님과 한국으로 돌아온 뒤 초등학교부터 한국에서 다녔다. 초등학교 때에는 수학 문제집 뒤페이지에 있는 답지를 베끼다 혼나던 ‘수포자(수학 포기자)’였다고 한다.

기형도 시인의 작품을 무척 좋아한 그는 등단 시인을 꿈꾸며 고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쳤다. 시와 수학의 공통점에 대해서 그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언어로 소통하는 시도가 시라면, 땅으로 끌어내리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을 수와 논리로 표현하는 것이 수학”이라고 말했다.

고교를 자퇴한 뒤엔 정작 허송세월했다. 학교를 안 가고 교문 앞에서 하교하는 친구들을 기다렸다가 같이 PC방에 갔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몰두한 끝에 2002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진학했다. 한때 과학기자를 꿈꿨던 그는 수억 년 전 우주 멀리서 출발한 빛과 별을 연구한다는 것에서 가슴이 뛰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작 학부 생활은 그가 생각한 것과 거리가 멀었다. 연구실 선후배 동료들은 복잡한 실험 기구와 씨름하는 인생이었다. 방황하며 4년짜리 학부과정을 6년이나 거쳤다.

학부 마지막 학기에 일본 출신 세계적 수학자로 필즈상을 받은 히로나카 헤이스케 하버드대 명예교수의 서울대 방문 수업을 계기로 수학에 대한 재능을 발견했다. 그는 히로나카 교수와 학생회관에서 매일 점심을 같이 먹으며 대수기하학의 특이점 이론에 대해 토론했다. 대학원 재학 시절 리드 추측을 풀어내는 데 이때 쌓은 지적 경험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반도체, 정보통신기술 등에 활용
허 교수가 연구하는 조합 대수기하학은 서로 전혀 다른 두 분야인 조합론과 대수기하학을 융합한 학문이다. 조합론은 경우의 수를 구하는 것이다. 여러 물건을 배열하는 방식이나 한 번 지나간 선으로 지나가지 않고 모든 선을 이어 그리는 한 붓 그리기 등이다. 대수기하학은 1·2차 방정식으로 직선·쌍곡선 같은 도형을 표현하는 것이다.

허 교수는 2010년 미국 일리노이대 박사 과정 1학년 때 조합론과 대수기하학을 이용해 1968년 이후 난제로 있던 리드 추측을 해결했다. 리드 추측은 여러 개의 꼭짓점을 선으로 연결하고, 연결된 점들끼리 각각 다른 색으로 칠하는 경우의 수와 여기에 사용된 색의 개수를 함수로 표현하는 방법과 관련된 문제다. 허 교수의 성과에 대해서 미국의 과학전문매체 콴타는 “18살에 테니스 라켓을 잡고 20살에 윔블던 우승한 격”이라고 극찬했다.

리드 추측을 증명한 뒤 미국 미시간대로 적을 옮긴 허 교수는 이후에도 ‘호가(Hoggar) 추측’, ‘로타(Rota) 추측’, ‘오쿤코프(Okounkov) 추측’ 등 10여 개의 난제를 더 해결했다. 대부분 수학자가 평생 하나도 해결하기 힘든 난제들이다. 허 교수의 연구 성과는 정보통신, 반도체 설계, 교통·물류, 인공지능(AI) 기계학습, 통계 물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허 교수는 ‘천재들의 산실’로 불리는 미국 고등연구소 연구원, 스탠퍼드대 교수를 거쳐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와 프린스턴대 교수를 겸직하고 있다. 뉴호라이즌상, 사이먼스 연구자상, 삼성 호암상 등을 수상했다. 허 교수는 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할 예정이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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