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입 돼지고기에 이어 수입산 소고기에 대해서도 관세율을 0%로 낮추는 할당관세 적용을 검토 중이다. 국내 소고기 소비량의 65%를 차지하는 미국·호주산 등 수입 소고기 가격이 1년 전보다 30% 가까이 오르며 ‘식탁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1998년 외환위기 시절 이후 24년만에 6%대 소비자물가 상승이 기정 사실화되면서 정부가 국내 축산업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수입 축산물 관세 면제라는 초강수까지 동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년만에 가격 30% 치솟은 수입 소고기
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수입산 소고기에 대한 할당관세를 연말까지 0%로 낮추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지난 5월 물가 안정 대책으로 돼지고기와 식용유(대두유·해바라기씨유), 밀·밀가루, 달걀 가공품 등 7개 품목에 0% 할당관세를 적용한데 이은 후속 조치다. 올해 미국산 소고기 관세율은 10.7%, 호주산은 16%, 뉴질랜드·캐나다산은 18.7%다. 운송, 저장 등 유통비용이 50%에 달하는 수입 쇠고기 가격 구조를 감안하면 할당관세를 통해 5~8% 수준의 소매 가격 인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분석이다.
2012년 미국을 시작으로 호주(2014년), 캐나다·뉴질랜드(2015년)등 주요 소고기 생산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서 2012년 30만t에 불과했던 소고기 수입량은 지난해 46만9000t으로 10년 만에 50% 이상 늘었다. 이는 지난해 국내 전체 소고기 공급량(71만6500t)의 65%에 달하는 수치다.
정부는 FTA를 통해 전자제품, 기계부품 등 산업재에 대한 관세는 상당부분 즉시 철폐했지만 소고기와 같은 농축수산물에 대한 관세는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단계적으로 철폐하기로 했다. FTA 이전 40%에 달했던 소고기 관세율은 15년에 걸쳐 매년 2.6%포인트씩 낮추기로 했다. 아직 10%가 넘는 높은 관세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다.
국내 축산업계의 반발이 예상되는 민감한 문제임에도 정부가 소고기를 할당관세 품목에 포함시키고 나선 것은 수입 소고기 가격의 급격한 상승이 서민층의 가계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들어 미국·호주산 소고기 수입단가는 kg당 13.6~13.8달러로 평년(9.9달러)대비 40% 가까이 올랐다. 글로벌 곡물 가격 상승에 따른 사료비 인상과 가뭄·산불 등 자연재해로 인한 목초지 감소가 맞물린 결과다.
이는 소비자가 체감하는 식탁 물가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 물가 동향’에 따르면 수입 소고기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7.9% 상승했다. 전체 농축수산물 가격은 농산물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0.6% 하락했음에도 축산물 가격이 12.1% 뛴 영향으로 4.2% 상승했다. 통계청은 소비자가 자주 구입하거나 가격 변동에 민감한 품목을 모아놓은 생활물가지수가 6.7% 상승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소고기를 비롯한 수입 축산물 가격 상승을 꼽기도 했다.
◆서민층 부담 줄이려 고심 끝 결정
이에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과 기획재정부는 소고기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을 두고 상당 기간 고심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일정기간 일정량의 수입품에 대해 관세율을 조정하는 할당관세가 국내 축산업계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수입산 소고기 가격을 잡는 것이 식탁 물가 안정화의 분수령이라는 공감대가 생기면서 할당관세 적용에 신중한 입장이었던 농식품부도 전향적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소고기는 수입량의 90% 이상이 이미 무관세였던 돼지고기에 비해 할당관세 적용 효과가 높을 수 있다는 점도 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줬다. 수입 소고기는 지난해 기준 미국(53.3%) 호주(38.2%), 뉴질랜드(4.3%), 캐나다(3.6%)등 10%가 넘는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 4개국이 전체 수입량의 99%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수입 편중도가 높다. 그만큼 관세 인하가 소비자 가격 인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정부는 이번 할당관세 인하가 소비자 가격의 안정화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한우 도매 가격은 코로나19 거리두기 완화에 따른 외식업계의 재고 비축 효과가 줄어들면서 지난 1일 기준 kg당 1만8823원으로 2만원대 초반을 넘나들었던 6월 초에 비해 하락세로 전환했다. 되려 전년 6월 평균 가격(2만1737원)보다도 낮아진 수치다.
하지만 도매 가격의 안정세가 좀처럼 소비자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1등급 등심 기준 소고기 소매 가격은 100g당 1만478원으로 5월(1만864원)에 비해 거의 낮아지지 않았다. 이번 할당관세 적용으로 도매 가격 추가 하락을 유도해 소비자 가격의 전반적인 안정화까지 이어지게 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곡물가 상승세가 하반기 들어 꺾이긴 했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 정책 효과를 장담하긴 힘들다”면서도 “돼지고기 등 다른 품목에 비해선 할당관세에 따른 가격 안정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