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참전 16개국에 의료와 물품을 지원한 나라까지 합치면 60여 개 국가가 한국을 도왔습니다. 우리가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국격을 높이는 길입니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79·사진)은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1월 미국 비영리단체 6·25재단 고문으로 합류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6·25재단은 50년 넘게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구성열·김창화 씨 부부가 2018년 설립했다. 6·25전쟁에 참전해 목숨을 잃은 미군을 추모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참전 군인의 고향과 학교 도서관에 해당 용사의 이름으로 5000달러씩 기부하는 게 대표적이다.
김 고문은 구씨와 경기고 57회 동창이다. 김 고문은 “친구가 자기 돈을 써가며 귀한 일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 십시일반으로 돕고 싶었다”며 “한국산 제품을 홍보하는 것보다 이런 활동이 미국인들의 기억에 훨씬 남을 것”이라고 했다.
6·25재단은 버몬트주 리즈보로초등학교에 고(故) 리처드 볼로냐니 상병 이름으로 기부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미국 11개 주 학교에 기부했다. 김 고문은 “미국 50개 주 전역에 전사자들의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게 하는 기부를 하는 게 목표”라며 “영국, 캐나다, 튀르키예(터키) 군인에 대한 보은 활동도 벌이고 싶다”고 했다. 이어 “참전 16개국 중에선 에티오피아 같이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도 많다”며 “국가보훈처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지만 민간 차원에서 참전국에 기념비를 기부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고문의 주도로 6·25전쟁 72주년을 맞은 지난 25일엔 서울 용산 일대에서 ‘리버티 워크(Liberty Walk·자유의 걸음)’가 열렸다. 미국 참전용사를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을 출발해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약 4㎞를 걷는 행사다. 참가자들이 걸을 때마다 성금을 모으는 것으로 일반 시민과 주한미군 등 1000여 명이 참가했다. 부영그룹이 후원한 10만달러를 비롯해 행사에서 모인 성금은 6·25전쟁 참전 미군이 살았던 지역의 도서관 건립 비용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김 고문은 “미국에선 2018년부터 리버티워크를 매년 열었는데 국내에선 코로나19 사태로 이번에 처음 열었다”며 “처음엔 경기고 동창생끼리 하려고 했지만 의미가 있는 일인 만큼 일반 시민에게도 알리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김 고문의 노력 덕분에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과 김영우 전 국회의원도 6·25재단 고문으로 위촉됐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6·25전쟁은 여전히 낯설다. 김 고문이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어릴 때 현충일마다 국립묘지(현 서울현충원)에 가서 묘비를 닦는 봉사활동을 했다”며 “그때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처럼 어릴 때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나은행장(1997~2005년)과 하나금융 회장(2005~2012년)을 지낸 김 고문은 하나학원 이사장으로도 일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