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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스터 성지'에 자리잡은 미니멀리즘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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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은 공장지대였다. 인쇄소, 대형 정미소, 가죽 공장, 부품 공장에서 종일 기계 작동음이 흘러나오던 곳. 몇 년 사이 성수동은 ‘힙쟁이(힙스터)의 성지’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개성이 강한 브랜드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대형 프랜차이즈와 기시감 있는 건축물은 이곳에선 설 자리가 없다. 소셜 벤처와 예술가들, 독립 카페, 개성 넘치는 음식점이 창의력으로 무장한 채 성수동 시대를 열었다.

요즘 성수동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가장 먼저 향하는 공간은 ‘LCDC 서울’이다. 서울지하철 2호선 성수역 3번 출구에서 9분 정도 걷다 보면 마주치는 건물이다. 처음 방문하면 이 건물의 정체를 알기 어렵다. 땅의 질감을 띤 외벽에 가려진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 바로 알기 어렵다.

용기를 내 안으로 한 발짝 들어가 봐도 마찬가지다. 입주한 업체명이 쓰여 있기는 하지만, 어떤 곳인지 짐작할 수 없다. 휴대폰을 꺼내 들어 SNS를 검색한다. 아는 사람만 찾아 들어가는 비밀의 공간이랄까.

LCDC 서울은 원래 PS모터스라는 자동차 정비소였다. 서승모 사무소효자동 소장의 손끝을 거쳐 새로운 공간 플랫폼이 됐다. 저마다 스토리를 가진 크고 작은 브랜드가 모였다. 1층 야외에는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팝업 공간, 1층 내부에는 크고 넓은 카페가 있다. 2층에는 패션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숍, 3층에는 다양한 스몰 브랜드 숍, 그리고 4층에는 다이닝 바가 들어섰다. LCDC 서울을 설계한 서 소장과 커피 한 잔을 나누며 공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니멀리즘의 이유…건축의 주인공은 사람

‘미니멀리즘’. 이 큰 건물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다. 흙색 외관을 지나 실내로 들어가면 차분한 무채색의 내부 공간이 펼쳐진다. 창을 내 밖을 보여주는 것 말고는 그 어떤 변형이나 요란함이 없다.

“건축물은 일상의 배경이 되는 곳이에요. 건축물이 주인공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공이고, 그 뒤를 벽과 바닥, 천장 등이 둘러싸고 있는 것이지요.” 건물 안에서 형태가 강한 오브제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조경에서도 미니멀리즘이 느껴진다. 화려하기보다는 편안한 느낌의 조경이 1층 정원 정면에 펼쳐져 있다. 생명력 가득한 정원을 꾸렸을 법도 한데, 키가 큰 나무는 오직 한 그루. 울창하기보다는 소박한 느낌의 왕벚나무다.

그는 미니멀리즘의 근본을 절제라고 표현했다. “아이디어를 발산하기는 쉽지만, 아이디어의 원형만을 적당히 남기는 작업은 굉장히 어려워요. 요란하게 맛있는 반찬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한 밥을 해내고 싶거든요. 정원도 ‘비어 있는 공간’처럼 꾸미려고 애썼어요.”

공중에 떠 있는 ‘중정’도 보기 드문 특징이다. 본래 자동차 정비소로 쓰이던 ‘ㄴ’자 건물을 ‘ㅁ’자의 큰 외벽으로 둘러쌌다. 이 중정은 벽을 기둥 없이 들고 있다. 기존 건물의 외관을 정돈하는 동시에 3개 동에 일체성을 부여한다. 공중에 부피감 있는 중정이 떠 있다 보니 오히려 1층이 투명하게 느껴지는 효과도 있다. 중정을 설치하며 기존 벽으로부터 생겨난 틈도 계단실, 테라스 등 사람이 드나드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해가 진 뒤 풍경은 전혀 다르다. 실내외에 설치한 조명이 다양한 방식으로 건축 요소들을 표현한다. 밤이 되면 조명을 통해 벽의 질감이 강조된다. 계단에는 핸드레일을 따라 빛이 방향을 안내한다. ‘메가베이터’라고 불리는 엘리베이터도 재밌다. 메가베이터는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이 미국의 파크 애비뉴 아르모리를 리노베이션하면서 선보인 개념. 최대한 큰 스케일의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LCDC 서울의 메가베이터는 가로보다는 세로로 길어 낯선 즐거움을 선사한다.
안에서 밖을 보는 동양의 건축미

서 소장은 197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다. 경원대를 졸업한 후 도쿄 예술대 건축학과에서 미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 서울에서 독립한 뒤 2010년 사무소명을 사무소효자동으로 개칭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주거, 호텔, 업무시설 등 설계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LCDC 건축 디자인을 맡아 업계의 주목을 받은 이후 최근에는 프리미엄 전시 ‘2022 더 메종’과 함께 진행한 ‘2022 디자인살롱 서울’에서 상업 공간에서의 건축 역할을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서양 건축물은 외관이 화려해요. 안에서 밖을 보기보다는 건물 외관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동양 건축을 보면 건물 자체가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건물 안에서 바깥 풍경을 보는 게 황홀하죠. 서양 건축물이 구심적이라면, 동양 건축물은 원심적인 거죠. 에너지가 밖으로 향한다는 말이에요. LCDC 서울 역시 건물 자체보다는 밖의 상업 공간으로 에너지가 몰린다는 데서 다분히 동양 건축 같아요. 절제되고 정리된, 동양 건축물들이 공유하는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서 소장은 LCDC 서울이 ‘반짝’ 재미있는 공간이 되기보다는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2~3층에 돌아다니며 즐기고, 1층에서 쉬다가, 해가 지면 4층 바에 가는 상상을 했다. 각층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됐으면 했다. 그래서 건물 가운데 중앙 계단을 만들었다. 층마다 들어서 있는 콘텐츠는 달라도 건물 내 유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단순히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라 비일상적 경험을 제공하고 사람 간에 소통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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