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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현의 시각] 최저임금위원회의 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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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적용이 또 무산됐다. 경영계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으로 영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한계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며 차등적용을 본격 요구한 2018년 이후 다섯 번째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6일 오후 3시부터 밤 12시를 넘기면서까지 마라톤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를 논의했으나, 표결 끝에 결국 부결됐다. 차등적용 찬성은 11명, 반대는 16명이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노·사·공익위원 9명씩 27명으로 구성된 점을 감안하면 경영계는 전원 찬성, 노동계는 전원 반대였고 공익위원 9명 중 7명이 반대표를 던진 셈이다.
업종별 차등 논의 5년간 공회전
현행 최저임금법 제4조는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한다. 이 경우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1988년 최저임금 제도 도입 첫해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구분적용을 하지 않았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본격화한 것은 2017년 최저임금위원회가 2018년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16.4%나 올리면서다. 법적으로는 이미 업종별 구분적용이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최저임금이 시장에서 수용할 만한 수준이어서 경영계에서도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다.

16.4%라는 경이적인 인상률에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자 정부와 최저임금위원회는 2017년 9월 부랴부랴 노·사·공익위원이 추천한 전문가 18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4개월간 집중 논의를 벌였다. 하지만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해서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현시점에서 업종별 구분적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다수 의견으로 정리됐다. ‘이미 법률에 근거 규정이 있고 업종별 격차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구분적용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소수 의견도 달렸다.
이제라도 판단기준 마련해야
5년 전 이 같은 결론에도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둘러싼 논쟁과 갈등이 계속되는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와 최저임금위원회의 ‘직무유기’다. 정부와 최저임금위원회는 TF 논의 결과를 발표하며 ‘법적으로는 구분적용 근거가 있으므로 업종별 구분적용을 위한 통계 인프라, 구분판단 기준 등에 대한 중장기 논의가 지속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정부와 최저임금위원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대해 2017년 이미 결론 난 사안이라고 주장하지만, 경영계가 2017년 당시 TF가 ‘현시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제했고 이후 지속적인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노동계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정부와 최저임금위원회가 손을 놓고 있으면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둘러싼 노사 갈등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차등적용이 또다시 부결되자 “내년 최저임금은 현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업종을 기준으로 결정돼야 한다”며 인상 저지를 강력히 예고했다.

이제라도 정부는 최저임금 업종별 현황에 대한 정밀한 통계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경영계를 향해 “차등적용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를 가져오라”며 ‘목마른 자가 우물 파라’는 식의 대응은 곤란하다. 늦었지만 21일 공익위원들이 업종별 차등적용을 위한 연구용역을 정부에 권고했다. 정부가 공신력 있는 통계를 제시하고 이를 놓고 노사가 밀도 있게 논의한다면 더 이상의 논란과 갈등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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