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쏘의 길처럼 토레스도 나아가야
1993년 등장한 쌍용차 무쏘의 개발 코드명은 'FJ'였다. 'F'는 미래를 의미하는 퓨처(Future), 'J'는 SUV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짚(Jeep)'을 의미한다. 1990년부터 4년 동안 3,200억원이 투입돼 개발된 무쏘(Musso)는 코뿔소를 의미하는 우리말 '무소'에서 이름이 만들어졌다. 그만큼 강력하고 단단한, 그러면서도 프리미엄 SUV의 성격이 강했다.
제품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쌍용차는 1993년 8월 '무쏘 아프리카 대륙 횡단'을 시도했다. 탐험전문가와 서비스 요원으로 구성된 10명이 세네갈 수도 다카르를 출발해 4개월 동안 모리타니, 나이지리아, 카메룬, 자이레, 앙골라, 나미비아를 거쳐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도착하는 2만㎞의 여정이었다. 이른바 1989년부터 해오던 '코란도 훼미리 오지 탐험'의 무쏘 버전이었던 셈이다.
험난함에 대한 도전 의지는 지옥의 랠리로 연결됐다. 1995년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아프리카 세네갈 다카르에 이르는 1만㎞ 코스의 다카르 랠리에 6대를 출전시켜 3대 완주에 성공했다. 지구에서 가장 험난한 '지옥의 랠리'에 참가해 내구성은 물론 도전 정신을 내세우며 주목받았다.
그렇다고 무쏘의 4WD 오프로더 성격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무쏘는 국내 최초 스페셜 에디션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1996년 모두 500대의 한정판 '무쏘 스페셜 에디션 500 리미티드' 제품이 대표적이다. 배기량 3,200㏄ 휘발유 엔진에 4WD 방식, ABS, 에어백 등을 기본 탑재하고 천연가죽 시트 등의 최고급 품목을 넣어 희소성을 높였다. 국내에는 100대만 판매됐고 나머지 400대는 해외로 수출됐다. 무쏘 자체가 프리미엄 SUV로 여겨질 때이니 고급화도 중요한 상품 덕목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중화를 위한 이코노미 트림도 마련됐다. 1997년 당시 가장 고가였던 IL63200 가솔린 가격은 3,200만원이었던 반면 602 이코노미 디젤은 1,774만원에 판매됐다. 최고와 최저의 차이가 상당히 넓게 책정해 다양한 소비층을 공략했다. 이어 밴(VAN)과 7인승이 추가됐고 연식 변경을 거치다 2005년 단종될 때까지 국내에 32만6,000대, 수출은 8만4,000대의 기록을 남겼다.
무쏘의 뒤를 이은 차종은 카이런이다. 2005년 등장해 2011년까지 존재했지만 무쏘에 대한 기억이 워낙 강렬해 일부 해외 국가에선 '무쏘' 차명이 그대로 사용됐다. 하지만 카이런은 쌍용차 역사에서 별다른 의미를 남기지 못했다. 경쟁 제품이 많아진 데다 디자인에 대한 호불호가 너무나 엇갈렸던 탓이다. 카이런 디자인을 맡은 영국 왕립예술학교(RCA)의 켄 그린리 교수가 무쏘와 2세대 코란도 디자인 성공에 심취해 후속 차종을 지나치게 파격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쌍용차 위기의 단초가 디자인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래서 액티언 후속 차종은 다시 '코란도'가 됐고 카이런은 2011년 단종 이후 이름 자체가 사라졌다.
최근 쌍용차가 토레스(Torres)를 내놓자 시중에서 무쏘 후속이라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적지 않다. 과거 '무쏘-코란도'에서 '카이런-액티언'으로 이어진 후 다시 '코란도'만 살아났으니 이번 토레스를 무쏘의 부활로 인식하는 셈이다. 1.5ℓ 가솔린 터보 엔진을 얹어 최저 2,600만원에서 최고 3,040만원에 판매되는데 첫날 계약이 1만2,000대에 달했을 정도로 디자인과 가격에 만족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20년 전 무쏘 가격이라며 이게 가능하냐고 묻기도 한다. 그만큼 '무쏘'를 잊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그래서 무쏘의 좋은 기억을 토레스에 투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영국에서 여전히 무쏘 차명이 사용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니 말이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