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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문 열고 OK 없이 'PGA 룰'대로 치면 몇 타 더 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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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돌이입니다.”

누가 기자의 핸디캡을 물으면 항상 이렇게 답했다. 실제로는 10번 라운드 나가면 절반은 80대 중후반 스코어를 적어내면서도 그랬다. 일종의 겸손함(?)이었고, 혹시 스코어가 잘 안 나올 때를 대비한 것이기도 했다. 어려운 골프장에 가도 90타 안 쪽으로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다 진짜 스코어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지난달 30일 경기 이천 블랙스톤GC에서 열린 ‘스릭슨 브레이브 챔피언십’ 예선 최종 4차전. 한국프로골프(KPGA)코리안투어 KB금융 리브 챔피언십이 끝난 뒤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 대회는 아마추어들만 출전하지만, 프로 1부 대회 코스 세팅을 그대로 유지하고 경기위원까지 초빙한다. 2018년 시작해 지금까지 5000명이 넘게 몰린 인기 대회. 순수 아마추어에게만 문호를 개방하는 만큼 선수 출신들은 철저한 검증 절차를 통해 걸러낸다.

진짜 프로 대회처럼 열리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OK(컨시드)’는 당연히 없다. ‘뒷문’도 열고 친다. 그 홀의 규정 타수의 2배 이상을 치면 더 이상 스코어를 세지 않는 ‘더블 파’도 없다는 뜻이다.

기자는 4차전 마지막 조에 배정됐다. 출전 선수는 총 120명. 이 중 30명 안에 들면 10월경 열리는 본선 출전 기회를 얻는다. 우승 상금은 500만원, 준우승 300만원, 3위 200만원이다. 다행히 블랙스톤GC는 한 번 쳐봤던 곳. 당시 ‘일파만파’ 없이 91타를 적어낸 그 곳이었다. 입상은 못해도 컷 통과는 할 걸로 자신했다. 스릭슨 관계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성적보단 ‘도전과 성장’에 큰 의미를 두세요.” 그렇게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말로만 듣던 ‘PGA 룰’대로 경기
경기는 10번홀(파4)에서 시작했다. 분명히 와 봤던 곳인데 낯설었다. 야디지 북을 보니 406m가 적혀 있었다. 화이트 티(357m)보다 약 50m 뒤였다.

다섯 클럽 차이는 코스를 완전히 바꿔놨다. 일단 그린이 잘 보이지 않았다. 티잉 에어리어로부터 220m쯤 떨어져 있는 페어웨이에 있는 두개의 왼쪽 벙커도 위협적이었다.

“어딜 보고 쳐야하나요”라고 캐디에게 물었더니, “말씀 드릴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대회는 형평성을 위해 캐디는 클럽을 가져다주는 정도의 도움만 줄 수 있을 뿐 경기 관련 조언을 할 수 없다는 걸 그 때 알았다. 거리 측정기는 최근 프로대회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이번에는 앞선 대회(1~3차전)이 개정된 룰이 적용되기 전에 시작 사용할 수 없었다.

결국 야디지 북에 의존해야 했다. 다행히 티 샷은 잘 맞아 페어웨이에 안착했다. 그런데도 홀까지 170m나 남았다. 지난번엔 8번 아이언을 잡고 친 이 홀에서 하이브리드를 꺼내 들었고 겨우 그린 왼쪽에 공을 보냈다.

지금까지 친 골프는 ‘진짜 골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 ‘멘탈의 붕괴’는 동반자로부터 왔다. 한 참가자가 티샷을 잘 보내고도 두 번째 샷이 감기면서 코스 밖으로 공을 내보냈다. OB(아웃오브 바운즈). 졸지에 네 번째 샷을 하게 된 그의 공이 또 왼쪽으로 감겼다. 이를 본 캐디가 말했다. “그 자리에서 다시 하나 놓고 치셔야할 것 같아요.” 이 동반자는 여섯 번째 샷만에 그린에 공을 올렸다.

이 때만해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있었던 것 같다. 머릿 속엔 세 번째 샷을 붙여 파만 하자는 생각 뿐이었다. 다행히 세 번째 어프로치 샷이 홀 옆 약 3m 지점에 붙었다. ‘파’를 머릿 속에 그리고 퍼트. 들어가진 않았지만 홀 옆 30㎝에 있었기 때문에 보기는 무난하다고 여겼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분명 톡 쳤는데 홀을 반바퀴 두르더니 주르륵 흘렀다. 메이저 우승을 눈 앞에 두고 30㎝ 퍼트를 놓친 김인경의 심정이 이랬을까. 캐디는 “그린 스피드가 3.1m(스팀프미터 기준)인데 조금 더 빠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다시 1m 더블보기 퍼팅으로 이어진 순간.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 뒤 겨우 공을 밀어 넣었다.

◆‘뒷문’ 열고 치니 셉튜플 보기
더블보기는 악몽의 시작에 불과했다. 두 번째 홀인 11번홀(파4)에선 규정 타수의 두 배를 적어내는 ‘더블 파’를 쳤다. 티샷은 좌측으로 감기면서 6번만에 공을 그린에 올린 탓이다.

시작부터 코너로 몰리다보니, 정신을 추스를 겨를이 없었다. 더블보기와 트리플 보기, 쿼드러플 보기가 속출했다. 첫 홀에서 OB를 두 번이나 내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봤던 그 골퍼가 이번엔 기자를 위로했다. “이 대회에 종종 나오는데요.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게 많아요. 골프 앞에서 사람이 참 겸손해지더라고요.”

16번홀(파3)에선 ‘더블 파’가 넘는 스코어를 적어냈다. 티 샷이 나갔고 다시 친 세 번째 샷을 그린 위에 올렸다. 핀은 2단 그린 위에 꽂혀 있었다. 내리막 경사에서 약 1.5m 보기 퍼트. 친구들이라면 ‘오케이’를 줄만한 거리였다.

고개를 드니 모두 기자의 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살짝만 갖다 대자고 했는데 공이 멈추질 않았고 계속 경사를 타고 흘러내렸다. 10m 거리에서 친 다섯 번째 샷은 다행히 2단 그린을 이겨내고 다시 홀 옆 1m 지점에 섰다. 그리고 2퍼트 추가. 파3홀을 7타로 끝냈다.

‘대형사고’는 후반 2번홀(파4)에서 터졌다. 홀까지 거리는 384m로 그리 길지 않은 편이었다. 첫 티샷이 우측으로 휘어 나갔다. 벌타를 받고 친 세 번째 샷이 또 우측으로 휘자 눈 앞이 하얘졌다. 주말 골프였다면 멋쩍게 웃고 저 앞 OB티에서 치면 될 일. 하지만 동반자들은 “다시 천천히 치라”며 독려했다.

다섯 번째 샷마저 OB 구역으로 나가자 온 몸에 힘이 풀렸다. 한 홀에서 티샷을 세 번 친 것도 처음이고, 세번 다 OB를 낸 것도 처음이었다. 네 번째 스윙이자 7타째를 준비했다. 어느새 뒷 팀이 와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 군대에서 수류탄을 던질 때 이후로 가장 많은 신경을 손 끝에 쏟았던 것 같다. 결국 페어웨이에 겨우 공을 올렸고, 결과는 셉튜플(+7) 보기. 재작년 우즈가 마스터스 12번홀(파3)에서 적어낸 그 스코어다.
◆공 다 써 ‘실격’ 위기 겪기도
블랙스톤은 그로기 상태에 빠진 기자를 계속 두들겨 팼다. 골프 규칙대로 하면, 갖고 온 공을 다 쓰고 같은 브랜드의 공이 없으면 실격되는데, 너무 힘들어 이를 바랄 정도였다. 공을 2더즌(24개)이나 챙겨왔는데 남은 건 4개 뿐이었다. 아직 7개홀이나 남았으니, 이 상태로 치면 모자를 게 뻔했다. “공이 없네…”라고 중얼대자 동반자들이 “내 공을 빌려주겠다”며 했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동반자들들의 얘기에 ‘전우애’가 느껴졌다. 이번 대회 참가자들은 모두 스릭슨 공을 사용했다.

이후 남은 7개홀에서 42타를 더 쳤다. 최종 스코어는 119타. 전체 참가자 120명 중 꼴찌였다. 컷 통과 기준(85타)에 근처도 못갔다. 기자의 ‘라이프 베스트’라고 믿고 있던 81타보다 무려 38타가 많았다. 회사 동료들에게 “119타를 쳤다”고 하니 “불 나면 네게 전화하겠다”는 비아냥이 돌아왔다. 이번 대회 슬로건을 ‘도전’과 ‘성장’을 내세운 스릭슨의 관계자는 "원래 성장통이 아픈 법이다. 다음 대회에선 꼭 컷 통과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천=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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