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한 조명기업은 정년을 다 채우고 지난 3년간 촉탁직으로 일한 기술직 직원의 고용 연장을 최근 포기했다.
올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신체기능 약화로 인해 사고 위험이 높은 고령의 직원을 재고용하는 데 대한 부담이 커진 결과다. 이 업체 사장은 “가뜩이나 고숙련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사고가 나면 대표이사로서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처벌 중심의 기업 규제로 인한 산업 현장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기업인들을 교도소 담장 위로 걷게 하는 규제가 산재한 탓에 기업 경영이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처벌 피하려 공장장에게 대표 맡겨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로 인한 인명 피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게 핵심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은 처벌 수위다. 더욱이 규정까지 불명확해 현장 혼란이 심화하고 경영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정한성 신진화스너공업 대표는 “안전사고의 60~70%는 작업자의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는데 이에 대한 면책조항이 너무 부족한 게 현행 제도의 문제”라고 말했다.사업주의 책임을 대폭 강화해 산업재해를 예방하려는 취지도 현실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올 1분기 재해율(근로자 100명당 재해자 수)은 0.15%로 작년과 동일했다. 오히려 재해자 수는 같은 기간 4.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창웅 건설기계정비협회장은 “정비업 종사자의 90% 이상이 50대 이상”이라며 “산업재해의 가장 큰 요인인 현장의 고령화를 막아야 하는데도 사업주 처벌부터 강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의 한 공장장은 “책임 회피를 위해 서울 본사에서 현장 공장장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권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현장직은 대부분 퇴직을 각오하고서도 책임을 뒤집어쓰는 대표이사를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위헌까지 다투는 형사처벌 조항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도 다른 나라에 비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당노동행위는 노동조합법상 보호되는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행사를 사용자가 방해하는 행위다.한국산업연합포럼에 따르면 한국은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할 경우 2년 이하 징역에 처해진다. 반면 일본은 약 50만원 이하 수준의 과태료만 부과한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위반에 대해서도 미국은 아예 처벌하지 않고 일본은 6개월 이하 징역에 처하지만 한국은 2년 이하 징역으로 다스리고 있다. 최저임금 위반도 한국은 3년 이하 징역에 처하고 있지만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등은 벌금이나 과태료만 부과하고 있다.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위반의 형사처벌은 위헌 여부까지 다투고 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이 2019년 제기한 위헌 소송이 헌법재판소에 계류돼 있다. 김태훈 한변 명예회장은 “최저임금 위반 등의 처벌은 국가가 사적 계약관계에 부당하게 개입해 헌법상 계약자유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형벌 과잉’ 공정거래법
기업의 경영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형벌조항은 경제법령에도 만연한 상황이다. 가령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의 경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등의 지정 때 정부로 하여금 회사에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자료 제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역에 처하도록 한 것은 과잉 규제”라고 지적한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현직 관료들 사이에서는 공정거래법의 처벌조항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권오승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열린 한 정책 세미나에서 “공정거래관련법들은 ‘형벌조항 과잉’ 상태”라며 “공정거래관련법 위반행위에 대해 형사적 제재가 증가해 과잉 범죄화에 따른 기업활동 위축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정거래관련법 집행에서 형사적 제재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경진/김소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