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벤처들이 미국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아예 본사를 옮기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SV인베스트먼트의 미국 진출이 K바이오의 글로벌 진출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배경이다.
K바이오, 美 전진기지 구축 러시
국내 바이오벤처의 미국 진출은 트렌드가 됐다. 단순 임상에 그치지 않고 연구개발(R&D)과 기술이전 등을 함께 추진하는 전진기지로 삼기 위해 미국 법인을 앞다퉈 세우고 있다.레고켐바이오는 최근 미국 보스턴에 현지법인 ACB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항암 약물이 암세포를 정확히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약물 전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법인은 레고켐바이오가 보유한 신약후보물질의 미국 임상과 함께 현지 글로벌 제약사와 바이오기업 등에 기술이전을 타진하는 업무도 맡는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보스턴에 항암제 후보물질 발굴 기능을 하는 디스커버리센터 조직을 두고 있다. 티움바이오도 2020년 보스턴에 항체 신약을 개발하는 자회사를 세웠다. 신테카바이오 역시 작년 8월 뉴욕에 기술이전과 R&D를 맡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올릭스는 샌디에이고 자회사에서 화학 합성의약품 R&D를 하고 있다.
아예 본사를 미국에 두기도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지놈인사이트는 지난 3월 샌디에이고로 본사를 이전했다. 세계 최대 유전체 분석장비 기업 일루미나를 비롯해 유전체 관련 바이오벤처들의 본사가 몰려 있는 곳이다.인슐린 자동 주입 펌프를 개발한 이오플로우는 인슐린 외 다른 약물을 몸에 자동으로 주입하는 패치 사업을 미국에서 벌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관련 업무를 실리콘밸리 법인인 이오플로우USA로 일원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 본사의 자회사(파미오)를 미국으로 옮겨 현지 법인인 이오플로우USA 자회사로 전환할 방침이다. 미래 신사업을 아예 미국에서 발굴하고 개발하겠다는 전략이다.
처음부터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3월 설립된 로스비보는 노승일 네바다주립대 의대 교수가 미국에서 창업한 회사다. 마이크로 리보핵산(miRNA)을 활용한 당뇨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진에딧은 UC버클리 출신인 이근우·박효민 박사가 실리콘밸리에 창업했다.
“풍부한 인적·물적 네트워크 활용 기대”
K바이오가 미국에서 R&D를 하려는 이유는 국내보다 여건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우수 연구 인력 확보가 용이하고 글로벌 최고 수준의 대학, 종합병원과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이정석 지놈인사이트 대표는 “미국은 유전체 분석부터 정밀의료까지 산업 밸류체인(가치사슬)이 갖춰져 있다”며 “투자자의 이해도도 높아 사업 확장에 유리하다”고 했다. 이 회사는 나스닥시장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대형 제약사와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 의사소통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했다.R&D 인력 확보도 수월하다. 김훈택 티움바이오 대표는 “글로벌 제약사 근무 경험이 있는 인력이 바이오벤처에 합류하는 일이 보스턴에선 흔하다”고 했다. 티움바이오의 보스턴 법인 직원 10명 중 8명은 현지 채용 R&D 인력이다.
국내 바이오벤처의 위상이 미국에서 인정해줄 만큼 높아지고 있는 점도 배경이다. 미국 머크(MSD)가 블록버스터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동반자로 삼으려는 바이오벤처를 국내에서 찾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키트루다와 함께 사용해 암 치료 효과를 높일 목적으로 임상에 쓸 키트루다를 MSD로부터 무상 제공받는 K바이오는 메드팩토, 지아이이노베이션, 티움바이오 등이다. 그만큼 성공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나스닥 우회상장 노리기도
미국 진출 타진은 자금 조달 목적도 있다. 코스닥시장 상장이 좌절된 피에이치파마는 나스닥 우회상장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와 합병 계약을 했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최근 스팩을 설립해 나스닥에 상장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중국 제외) 바이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업을 세워 이 스팩과 합병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바이오벤처 기업공개(IPO) 시장이 위축돼 해외 우회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한재영/이선아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