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전용 59㎡ 아파트에 살던 30대 직장인 A씨는 올해 초 경기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으로 전셋집을 옮겼다. 3억2000만원에 맺은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자 집주인이 보증금을 1억원 이상 올려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A씨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려고 했지만, 집주인이 '차라리 직접 들어가 살겠다'고 나오는 데다 주변 전셋값도 크게 올라 방도가 없었다"며 "출퇴근 시간이 1시간가량은 늘어나고 교통비 부담도 더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A씨와 같이 치솟은 집값을 피해 서울을 떠나는 '탈서울' 행렬이 이어지며 서울 인구가 계속 줄고 있다. 9일 행정안전부 주민등록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서울 인구는 949만6887명에 그치며 950만명을 하회했다. 2016년 5월 말 1000만 인구가 무너진 지 6년 만에 950만명도 깨졌다. 아파트 분양가마저 상승이 예고되며 탈서울이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13억원 육박한 서울 집값…반값 경기도로 '이탈'
탈서울의 주요 이유는 집값이다. 서울연구원은 서울 인구가 하남, 화성, 김포, 시흥, 남양주 등 경기도의 대규모 신규 주택 공급지로 유출됐다고 설명한다. 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서울에서 경기로 이주한 사람들은 자가와 아파트 거주 비율이 대폭 상승하고 주택 면적도 늘었다. 집값이 치솟은 탓에 서울에서 양질의 주거 공간을 갖출 수 없게 되자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기도로 이주한 것이다.KB국민은행 월간 주택가격 동향 시계열 통계에서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2억7818만원으로 집계됐다. 2017년 5월 6억708만원이던 가격이 5년 만에 2.1배로 뛰었다. 같은 기간 평균 전셋값도 4억2618만원에서 6억7709만원으로 58.8% 올랐다.
이에 비해 경기도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지난달 6억2428만원이었다. 5년 전 3억2249만원에 비하면 93.5% 급등했지만, 서울과 비교하면 절반이 채 되지 않는 가격이다. 서울에서 전세를 살 돈이면 경기도에서는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지난달 경기도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3억9158만원으로 서울의 5년 전 평균 전셋값보다 저렴한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통계청 국내인구이동 자료를 보면 지난해 5월부터 지난 4월까지 서울을 떠난 인구는 53만728명으로, 이 가운데 62%에 해당하는 32만9468명이 경기도로 전입했다. 한국부동산원 매입자 거주지별 통계자료에서도 서울 거주자가 경기도 아파트를 매입한 건수가 지난 3월 1610건에서 4월 3148건으로 늘었다.
예고된 분양가 인상…집값 상승 부추길까
높아진 서울 집값에 탈서울 행렬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분양가 상승마저 예고됐다. 분양가가 오르면 주변 구축 가격도 강보합세를 보이기 마련이다. 분양가 상승이 전체 집값을 올려 탈서울 현상이 더 심화할 수 있다는 전망의 근거다.국토교통부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규제지역 내 고분양가 심사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손질하고 건축 자재비 상승분을 공사비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로 한 만큼 향후 분양가 상승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강남 등 13개 구가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국토부는 분양가 상한제 개편안에서 재건축 조합 이주비·사업비 금융이자 등 정비사업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일반 분양가에 반영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미래 개발이익을 땅값 감정평가에 반영해 택지비를 높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기본형 건축비도 최근 레미콘 등 원자잿값 급등에 맞춰 추가 인상을 논의한다.
주택업계는 이러한 개편이 모두 추진되면 현재 주변 시세의 50~60%인 분상제 지역 아파트 분양가가 80%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HUG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서울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3224만4300원이었다. 1년 전 2813만5800원에 비해 14.6% 올랐지만, 분상제 아파트의 분양가가 시세의 80% 수준으로 오르면 4000만원 돌파도 시간문제라는 인식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대출 제한, 금리인상 등의 부담으로 서울 매매, 전셋값에 대한 부담감이 커져 경기지역으로 눈을 돌리는 수요자들이 많다"며 "실수요자들의 이동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